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필자는 모 방송사의 고발 프로그램을 자주 시청한다. 주로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시청해 오면서 두 가지 사실에 놀라곤 한다. 우선, 사실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울 만큼 철저한 인권박탈의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우리 이웃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방송 소재가 마르지 않을 만큼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들이 적지 않다는 것 또한 놀랍다. 그러나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사연 속의 주인공들을 인권 진공상태에 방치한 책임자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운 모습의 사회복지사가 어김없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모자이크 처리된 모습의 사회복지사들은 예의 그 변형된 목소리로 변명하곤 한다. ‘돌봐주는 사람이라 그냥 믿었죠’, ‘어떻게 일일이 확인을 해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생계비는 꼬박꼬박 지급했는데요’. 모두들 한결같이 그들의 삶에 무관심했음을 인정한다. 그들의 인권유린이 자신들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자막에 또렷이 새겨진 그들의 또 다른 이름 ‘사회복지사’.
사회복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무릎을 치게 했던 답변은 ‘누군가의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이었다. 사회복지는 궁극적으로 사회 구성원의 사람다운 삶을 향유할 권리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라는 명제로 수렴된다. 수많은 이름의 복지정책과 제도들이 종국에는 장애를 지닌, 노인이 된,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권리를 위해서 마련된 장치들이다. 대상자들과 관계형성을 위해 지켜야 하는 여러 이름의 원칙들 또한 그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강구된 기술들이다. 그런데 정작 사회복지정책과 실천의 일선에 선 사회복지사들이 대상자의 인권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 절절이 살아 있어야 할 인권의 말초신경들이 무디어진 것이다.
고통 받고 소외된 사회 구성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전문성을 동원하고 사회를 향해 항변하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공식적 이미지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이미지에 매료되어 사회복지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회복지사의 모습이 국가로부터 제공된 급여를 이곳저곳으로 전달하는 택배기사와 동일시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올 해도 약 28000명의 수험생이 사회복지사 1급 시험에 응시했다.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한편 씁쓸한 것은 이들이 어떤 모습의 사회복지사를 가슴에 품고 시험에 응시했는가 하는 것이다. 사회의 그늘에서 자신의 권리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권리에 민감한 인권의 말초신경이기를 희망하는 것인지, 혹은 박한 임금과 쌓여 있는 일거리를 방패로 서류 뒤에 숨어 눈 감고, 귀 막은 정규직 노동자를 꿈꾸는 것인지.
사회복지사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의 습득을 통해 양성된다. 그러나 전문성은 사회복지사에게 필요한 조건일 뿐이다. 사회복지사의 기본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애정, 인간으로서 그들이 가진 권리에 대한 관심이다. 새로 여는 한해, 사회복지사들이 인권에 대한 민감성을 다시금 일깨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2월호(제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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