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사단법인 한국이주민건강협회 사업팀장
다문화사회, 이주민의 건강권은 기본적인 인권
지구화의 영향으로 국제적인 인구이동은 이제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한국사회도 단일민족․순혈주의 사회에서 빠르게 다민족․다인종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이주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한 이주민은 2009년 1월 기준으로 110 만 명을 넘었고, 이주민들은 양적으로 숫자만 증가했을 뿐 아니라 체류형태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80년대 후반 유입된 산업연수생, 이주노동자들 중심의 이주민에게 절실했던 것이 노동권을 인정하는 법적지위였다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다양한 이주민(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중국(재외)동포, 이주아동, 청소년, 유학생, 난민 등)에게는 노동권을 포함한 의료, 교육, 복지 및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 사회권의 차별 없는 적용이 절실히 필요한 현실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흐름에 따라 국경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따라서 이주민도 우리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인권 및 건강권에 대해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건강권은 육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모두를 포함하며, 이주민의 건강권은 다문화․다인종 사회에로 변화해가는 한국사회가 준비해야할 사회보장의 핵심적인 문제이다. 특별히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건강권’은 ‘국민’의 권리 이전에 ‘인간’의 권리이다. 건강한 삶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데 기본적 요건이며 ‘인권’의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의 의료문제
낯선 문화와 환경에서 노동자로 살면서 가장 고달프고 힘든 순간은 바로 병이 들거나 산재를 당해 경제적인 면 뿐 아니라 심적, 정신적 고통을 당할 때일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의료기관을 찾아가서 치료를 받는 일이 쉽지 않다. 평일에 병원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을 때 도 의사전달이 어렵다. 혹 검사나 수술이라도 받게 되면 의료보험이 없어 그 많은 진료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입원을 하게 될 경우 병원비 외에도 간병의 문제, 생계의 문제가 또 다른 벽으로 다가온다. 국내거주 이주민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열악하다. 지난해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발표한 ‘2009년 고용허가제 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하루 9시간 이상 노동’하는 이주노동자가 71.2%이며, 19.15%의 노동자들이 주야간 12시간 2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다. 최근 이주노동자 및 이주민에 대한 관심과 사회보험 적용은 확대되는 추세라고는 하나 여전히 체류자격상 미등록 상태의 이주민과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이주민은 제도적 보호체계에서 소외되어 건강상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의료체계에 대한 접근성의 한계와 함께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수반하게 된다. 또한 최근 2-3년간 외국인력제도의 변화와 동반된 미등록 이주노동자 집중단속은 이들의 의료기관 방문을 기피하게 만들어 응급사례 속출을 가져 왔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그동안 민간차원에서 확대해온 무료진료나 의, 병원 연계 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진료, 치료의 기회를 포기하고 단속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 장시간 노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뇌출혈, 심근경색, 위장출혈 등으로 사망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곤 했다.
이주노동자환자를 위한 간병서비스의 필요성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고액 치료비가 발생하는 경우는 대부분 응급사례이다. 이주노동자가 응급으로 입원, 수술하게 되었을 때, 이주노동자들은 유료 간병인을 구해야만 한다. 정부에서 2005년부터 ‘소외계층 무료진료사업’을 시작했지만 간병인에 대한 지원은 없으므로 여전히 이 문제는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대부분 연고 없이 혼자 생활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생활특성상 이들이 병원 입원치료를 요하는 경우 본국에서 가족을 데려올 수도 없고 가까운 친지도 한국에 살지 않기 때문에 유료 간병인을 구해야 하지만, 최소한의 치료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간병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 이주노동자 환자의 간병문제는 의료기관이나 일선 상담소에서 더욱 절실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 환자들의 경우, 가족이나 친구들의 간병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더 불안하고, 이로 인해 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높은 의료비 부담을 겪기 때문에 간병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입원치료를 요하는 이주노동자 환자들에게 간병 서비스와 의료통역을 지원하는 일은 이주노동자 환자의 신속한 치료와 건강회복, 의료비 부담의 경감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인한 의료사고의 위험성을 줄이는 등 다방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주민간 의료서비스 지원 네트워크를 통한 이주노동자 환자들의 심리·정서적 안정에 기여와 결혼이주민들의 일자리 창출
한국이주민건강협회는 이런 현실 이해를 바탕으로 2008년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결혼이민자들에게 전문 간병인과 의료통역 교육 후 서울, 경기, 인천지역의 이주노동자 환자들에게 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8-2009년 통계를 보면 17개국 21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에게 무료 간병서비스와 의료통역서비스 제공했으며, 4개국(중국, 몽골, 필리핀, 태국) 10명의 결혼이주여성들이 간병교육과 의료통역 교육을 받고 활동하고 있다.
전문 간병, 의료통역 교육을 마친 결혼이주민들이 입원 치료가 필요한 이주노동자 환자들을 직접 간병함으로서, 실제로 이주노동 환자들의 정서적․심리적 안정을 지원하여 의료비 경감 및 빠른 사회적 복귀를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결혼이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결혼이민자 간병인들은 단순 ‘간병’ 외에 ‘의료통역서비스’를 같이 제공하여 이주노동자 환자 뿐 아니라 의료기관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결혼이민자들의 ‘이주노동자 환자 간병’은 ‘언어적 지원’ 외에도 ‘이주’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환자들의 정서적 지원을 높였고, 결혼이민자 간병인들 또한 사회적으로 약한 이들을 돌본다는 측면에서 직업 자긍심을 가졌다. 결혼이민자들은 한국에서 직업을 갖고 싶어하는 욕구는 높지만 ‘전문 직업’을 갖기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많이 있다. 간병인의 경우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 인력서비스 경쟁 치열 등으로 결혼이민자들이 선호하는 직종은 아지만 간병, 의료통역 활동을 통해 자국의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환자들이 건강해지는 모습을 통해 직업적 자부심을 갖게 되며 자립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정부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제도화의 필요성
이주노동자 환자의 현실적인 의료문제 지원, 의료기관과 환자 간의 의료통역과 소통, 결혼이민자의 일자리창출과 고용확대 등 긍정적인 파급효과가 많은 사업이지만, 민간의 시범사업으로 이 사업이 정착되기에는 많은 한계들이 있다.
간병서비스를 신청한 이주노동자 환자들은 뇌경색, 심장질환, 척추결핵, 교통사고, 화상치료, 접합수술 등으로 인해 수술과 입원치료가 불가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산재사고와 교통사고에서도 간병 급여조건이 까다로워, 양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간병인지원에서 소외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간병인 요청 의료기관 중 50%이상이 국립의료원, 포천의료원 등 지방의료원으로 보건복지가족부의 무료진료사업 수행기관임을 참고하면, 정부의 무료진료 사업의 의료비지원과 간병인 지원이 같이 이루어져야 함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사회 3D 산업현장에서 건강할 땐 고용하고, 병들거나 다치면 몰라라하는 일회용 소모품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인권을 가진 우리사회의 구성원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절실한 의료서비스가 민간의 지원을 넘어 정부차원의 공공의료역역에서 정비되고 제도화 되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결혼이민자 인적자원개발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현실에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주노동자 환자와 결혼이민자 간병인 지원’에 대한 체계적인 제도마련과 지원을 조속히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3월호(제1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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