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0 2010-03-10   1112

[칼럼] 고단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내일

류혜정 변호사


며칠 전 언론보도를 통해 게임에 빠져 3개월 된 딸을 굶겨 사망에 이르게 한 부부가 수개월 간의 도피 끝에 검거, 구속되었다는 소식과 30대 후반의 미혼여성이 모텔 방에서 혼자 출산을 하고 난 직후 영아를 목 졸라 살해했다는 소식을 동시에 접했다.


사건의 본질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기사들의 횡간을 읽어 사후적으로 사실관계를 종합해보면, 결국 ‘빈곤’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아이를 영양실조로 사망에 이르게 한 젊은 부부는 처갓집에 얹혀 살다가 독립한 후에도 지하 월셋방 월세조차 제때 마련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출산 직후 아이를 살해한 여성은 20대에 성폭행으로 출산한 아이를 살해한 죄로 1년간 복역하였고 그 무렵 가출하여 십 수년간 일정한 주거 없이 모텔방과 찜질방 등을 전전하며 생활하다가 결국 모텔방에서 혼자 아이를 출산하였다고 한다. 


물론 빈곤하다고 해서, 당장 수중에 돈이 없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참혹한 범죄에 연루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그 가해자가 어머니이고, 피해자가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영아인 다음에야……어떠한 변명을 늘어놓더라도 쉽게 용납이 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그 가해자들에게서는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힘의 우위를 과시하려는 그런 폭력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스스로 정확히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극히 무기력해 보였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이에게 차마 입에 담기도 참혹한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고단한 삶에 지쳐 마음마저 황폐해져 버린 사람들이 아닐까, 문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앞서 그 문제를 보고도 못 본 척 하거나 그 문제를 눈 앞에서 치워버리는데 급급해서 결국 그런 결과가 초래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보면 그들의 무기력함이나 자신이 초래한 결과에 대한 무관심, 무책임함이 다소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삶을 짓누르는 문제로부터 도망치고 가능하면 외면하고자 했던 그런 경험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한계다.  문제를 현실로 인식하고 어떻게든 해결을 도모하는 사람들은 별 문제 없이 이 사회에 적응하게 되겠지만 사회가 용인하는 범위를 넘어서 문제를 방치하다 보면 자칫 범죄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어릴 때 미국의 빈민가 청소년의 꿈은 딱 두 가지, 연예인 또는 스포츠스타가 되는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진심으로 의아해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의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장래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80년대 미국 빈민가 청소년과 동일한 대답이 돌아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학생 1인당 사교육비가 최저생계비의 절반을 초과하는 나라에서, 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이 연간 최저생계비 합계를 초과하는 나라에서 무소득 또는 저소득 가정의 자녀가 꿀 수 있는 꿈은 어떤 것이 있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먹는 것의 문제인, 무상급식에 대해서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단정적으로 비난하는 사회에서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것은 그 자체로 죄악이라고 할 만 하다. 


그렇게 성인이 되기 전에 미리 좌절하고 꿈이 현실이 되는 성취감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면 또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마음이 답답해진다. 


오늘의 삶이 고단하더라도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으면 사람은 살 수 있다.  또 우리 사회에는 그렇게 묵묵히 애쓰면서 오늘을 견뎌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문제는 내일의 희망이 점점 빛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일찌감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살아갈 기력을 되찾아주는 것이야말로 ‘복지’의 소명이 아닐까.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3월호(제1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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