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재
한신대 교수,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지방선거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천안함 사건의 여파로 정책적 이슈가 실종되고 있다. 천안함 사건 자체가 초유의 일이라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벌써 영구 미제 사건이 될 가능성도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여러 가지 설만 남무하다 정확한 원인 규명 없이 유야무야될 지도 모르겠다. 무릇 세상의 모든 일이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지만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인명 사고를 동반한 전투함 파괴 사고는 지방선거의 모든 쟁점을 압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시장을 통한 성장과 분배를 금과옥조같이 내세우면서 4대강사업 등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리고 있다. 그 결과 자연 파괴는 물론이고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질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선거는 주민들이 원하는 정책을 선택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철은 각종 정책 공약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 동안 선거에서 사회복지 정책이슈는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되지 못했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따른 삶의 질 악화는 사회복지 공약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제고시키고 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제기한 무상급식 이슈는 우리나라에서 복지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훌륭한 사례라 생각된다. 무상급식 이슈에 이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이 주창한 보편적 복지서비스 이슈 역시 이번 지방선거의 주요 이슈가 될 수 있다.
관련해서 최근 미국 건강보장 개혁과정은 복지정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국가차원의 보편적 건강보장제도가 없는 거의 유일한 선진국인 미국에서 일반 국민들의 건강보장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까지 갔고, 이에 미국 정부는 건보개혁을 공식의제화 하였다. 건보개혁을 두고 국가의 책임 범위를 더 확대하려는 민주당과 진보적 시민단체를 한 축으로, 이를 반대하는 공화당과 보수적 시민단체를 다른 한 축으로 치열한 정치적 전투를 전개하였다. 양 진영은 여러 차례 타협과 충돌과정을 거치면서 1차 개혁안을 만들어냈다. 여전히 개혁법안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과 관련된 복지이슈가 얼마나 중요한 정치의제가 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아울러 미국에서 건강보장 이슈가 중앙정부차원에서 공식 의제화될 수 있었던 것은 생활임금 이슈 등 지역차원의 여러 가지 경제정의 의제가 기폭제 역할을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1994년 미국의 볼티모어시는 지역단체들의 연대투쟁을 통해 생활임금을 조례로 규정하였다. 조례를 통해 시간당 6.10달러 최저임금을 보장하였는데, 이는 당시 연방정부가 정한 시간당 4.25달러보다 1.85달러가 더 많은 액수였다. 1994년 이래 200개 이상의 연대모임이 결성되어 요구운동을 지속하였고, 그 결과 140개 새로운 생활임금 조례가 만들어졌다. 그후 생활임금 이슈는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지로 확산되었다. 이와 같은 지역의 변화는 2007년 연방하원에서 최저임금액 인상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경제정의 운동의 결과로 2008년 대선에서 보편적 건강보험 법안이 공약으로 등장한 것이다.
중앙정부와 비교해서 지방정부의 역할은 주민들의 삶의 질의 보장에 더욱 강조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선거에서 사회복지공약은 상대적으로 더 큰 중요성을 갖는다. 특별히 생활 여건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점에 오히려 사회복지분야 예산은 줄어드는 모순된 현실에서 맞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복지정치가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높아 졌다. 시민들은 직접 선거 혹은 비례 대표를 통한 지방 정치에의 직접 참여는 물론이고, 각종 정책공약 개발과정 혹은 공약 평가과정에의 참여를 통해 선거과정에 관여할 수 있다.
사회복지공약을 준비하면서 4년전 선거에 만들었던 공약을 살펴보았다. 새롭게 제기된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 경제 영역을 제외하고는 지역 주민 참여 확대, 지역복지 전달체계 정비, 대상자별 사회복지서비스 확대, 사회복지실무자 처우 개선 공약 등은 과거와 별반 차이가 없다. 4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는 중앙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수행 하는 것 외에 지방정부의 고유한 복지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고유한 한계때문인지 아니면 단체장들의 정책지향때문인지 모르지만 비슷한 공약을 4년 후에도 그대로 제시해야 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지역주민들의 주인의식이 약하다는 사실이다. 4년에 한번씩 오는 선택의 날에 우리의 권리를 공중에 날리지 말고, 누가 정말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공복인가를 가려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의식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현실의 부조리에 분개하고 현실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번 지방선거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본인에게 주어진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누구도 그의 권리를 대신 찾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5월호(제139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