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희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돌봄의 가족화 정책이란 부․모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하지 않고 가족구성원을 돌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일컫는 것으로(윤홍식, 2010), 단순히 부모와 아동이 함께 있는 시간의 증대 뿐 아니라 부모가 아동을 돌볼 수 있는 권리, 아동이 자신의 부모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가족화 정책은 가족의 재생산 기능의 가치를 인정하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Kimberly and Kathrin, 2003).
최근 일-가족 양립 연구에서는 노동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정 내 젠더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진정한 젠더 평등의 달성이 어렵다는 생각이 지지를 얻고 있다. 이는 가족화 정책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바로 가족화 정책은 젠더 평등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화 정책은 누가 아동을 돌볼 것인가 즉, 가족내 돌봄의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가족 내 젠더 구조화를 정책적 이슈로 제기한다.
이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바람직한 부모상 혹은 돌봄에 있어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관념이 가족화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Olsen(2000)은 가족화 정책의 대표적인 제도라 할 수 있는 부모 휴가 제도의 틀은 무엇이 표준적이고 바람직한 모성, 부성, 부모역할인가에 대해 결정짓는 것을 도와준다고 지적하고 있다(Rostgaard, 2002 재인용). 부모 휴가는 단순히 부모가 아동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것 뿐 아니라 무엇이 좋은 부모 역할인지에 대한 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부유럽 국가들의 가족화 정책들은 어떠한 부․모 상을 반영하고 있을까?
노동시장과 사회 전반적인 정책에서 젠더 평등을 중심 가치로 지향하는 북유럽국가에서 지향하는 부모상은 젠더 평등적일까? 북유럽 국가들은 젠더 통합적 부모 역할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정치적 합의를 하였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법률 체계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정치적 합의와는 별개로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젠더 관계(부.모 역할의 관계)의 구조화는 국가마다 상이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가족(부모)의 가족화를 지지하는 가족화 정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함의를 던져준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부모 중 누가 아동을 돌볼것이가의 문제가 대두되는 가족화 정책은 젠더 평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즉, 북유럽 국가들의 가족화 정책의 상이점은 이들 국가들에서 지향하는 젠더 역할의 상이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의 가족화 정책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부모휴가(아버지 할당제도: daddy quota)와 아동가정양육수당제도에 나타난 부모의 역할 중 특히 아버지 역할 상(像)을 중심으로 비교해 볼 것이다.
① 스웨덴: 현대적 아버지상의 강조
스웨덴의 경우, 1974년 부모휴가가 도입되었고, 1994년 아버지들의 부모휴가 사용을 독려하고자 아버지 할당제가 도입된다. 스웨덴에서는 돌봄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가 꾸준히 정치적 논쟁이 되어왔고, 사회전반적인 합의를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스웨덴 사회는 새로운 아버지 상을 제시하는데 바로 ‘현대적 아버지 상’이다. ‘현대적 아버지 상’에는 아동과 초기 친밀한 관계 형성을 위해 돌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버지의 권리를 강조하고, 아버지 휴가 권리를 지지한다. 또한 아동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은 아동에게 뿐 아니라 아버지 자신의 인격 발달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긍정적인 권리로 인식되어진다. 이러한 아버지상을 기초로 스웨덴의 부모휴가 사용에 있어 아버지 참여율은 2002년 70%에 육박할 정도로 높으며, 아버지 할당제도 기간이 확대되게 된다.
② 노르웨이: 좋은 아버지상의 강조
1980-1990년대 노르웨이에서는 새로운 아버지상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바로 좋은 아버지 상이다. 새로운 아버지 상은 아버지의 자녀 돌봄은 ‘사랑의 힘’이며 이는 가족과 자녀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좋은 아버지상’이다. 노르웨이는 부모휴가에서 남성의 참여를 증가시키기 위해 부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데, 돌봄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적 측면보다 의무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되는 휴가제도와 소득 대체율의 높은 수준은 아버지의 휴가 사용을 독려했고, 이러한 강압적 요소는 아버지들의 행동 변화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휴가 사용에 있어 고용주와 협상이 용이해진 것은 그동안 아버지 돌봄 참여의 걸림돌이었던 고용환경의 제약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시사하는 것이다. 노르웨이 ‘좋은 아버지 상’은 스웨덴의 현대적 아버지 상과 차이점이 있는데, 젠더 평등적 관계에 초점을 두었던 스웨덴과 다르게 노르웨이는 아버지와 아동의 관계에 보다 초점을 두고, 특히 새로운 부모상이 남성다움을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③ 덴마크: 돌봄에 있어서의 아버지상의 부재
덴마크에서의 가족화 정책에서 중요 이슈는 바로 여성의 노동권이었다. 즉, 부모휴가 제도는 여성이 평등하게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고, 상대적으로 아버지가 자녀를 돌볼 수 있는 권리는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덴마크의 아버지 할당제는 아버지의 권리 차원이라는 의식의 변화에 영향을 주지 못했고, 2002년 폐지된다. 덴마크의 가족정책은 양육자로써의 아버지 권리를 옹호하지 않으며, 부성을 기반으로 한 권리가 거의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와 다르게 돌봄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는 상대적으로 약했음을 알 수 있다.
④ 핀란드: 보조적 아버지상
1990년 경제 위기 이후 핀란드의 가족화 정책은 전통적 젠더 분업적 모델인 남성 소득자/ 여성 일시적 돌봄자(male-earner/temporary female homemaker)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부모휴가와 아동가정양육수당제도의 도입과 확대를 통해 아동 돌봄의 주된 책임자는 어머니이고 이러한 어머니를 보조하기 위한 아버지 상은 점차 강조 유지 된 것이다. 이러한 핀란드의 가족화 정책은 가정내 부모 역할의 변화와 돌봄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와 역할 변화를 전혀 옹호하지도 않고 오히려 전통적 젠더 분업 모델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표 1> 북유럽 4개국의 부모휴가와 아동양육수당제도
부모휴가 | 아동가정양육수당 | |||||
제도 도입 | 아버지의 권리 | 아버지 할당제 도입 | 전개 | 제도 도입 | 전개 | |
스웨덴 | 1974년 | 1986년 | 1994년 (4주간) | 2002년 아버지 할당제 8주로 확대 남성의 휴가 사용율 70% | 1994년 | 1995년 폐지 (제도 도입 6개월 후) |
노르웨이 | 1978년 | 1978년 | 1993년 (4주간) | 남성의 휴가 사용율 80% | 1998년 | 1999년 2세까지로 대상자 확대 |
덴마크 | 1980년 | 1984년 | 1997년 (2주간) | 2002년 모성, 부모, 아동 양육휴가가 통합됨(총 52주) 아버지 할당제 폐지 | 1992년 | 2002년 아동양육휴가가 부모휴가로 통합됨 |
핀란드 | 1980년 | 1991년 | 2000년 (1~12일) | 1990년대 이후 부모휴가의 기간과 급여율이 감소 남성의 휴가사용율 4-5% | 1985년 | 1990년대 이후 급여와 대상자 확대됨 |
그렇다면, 북유럽국가들의 이러한 경험이 우리 사회에게 주는 함의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족화 제도는 산전휴가와 육아 휴직이 있다. 산전휴가가 모성의 보호와 연관된 제도적 특징을 보인다면 육아휴직은 젠더 중립적 제도이다. 하지만 육아 휴직의 남성 참여율을 살펴보면, 전체 이용자수의 2% 미만으로 남성의 참여가 부재한, 여성만을 위한 정책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유럽 국가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아동 양육 관련 휴가 정책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젠더 관계, 부모 역할 태도 등 다차원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역할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제도로 아버지 할당제에 관심이 필요하다. 현재 아버지 할당제의 도입은 보류되고 있는데, 북유럽 국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제도를 통해 남성을 휴가제도에 끌어 들일 수 있는 유인책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아버지 할당제를 설계해야할까? 다양한 북유럽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덴마크의 예를 통해 젠더 평등을 지향하는 사민주의 국가에서도 아버지 할당제가 실패로 끝날 수 있음을 주목해야한다. 덴마크의 아버지 할당제는 2002년 사실상 폐지되었는데, 그 이유는 덴마크가 가진 아버지 할당제의 방식과 기간은 다른 국가들과 상이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덴마크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아버지 할당제 도입에 있어 새로운 아버지 상 만들기에 실패했다. 즉, 새로운 부모 역할 특히 아버지의 인식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덴마크의 이러한 경험은 아동 관련 휴가 정책들이 제도상 어느 정도 형식을 갖추고 있음에도 여전히 낮은 이용율을 보이고 있는 한국 사회에 중요한 함의를 던져준다. 단순히 제도의 형식적 완결성만으로 아버지들의 행동에 변화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노르웨이 예를 통해 전통적 성별 분업 모델이 강했던 노르웨이에서 아버지 할당제의 도입으로 남성의 휴가 사용이 비약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노르웨이의 경험은 전통적 부모역할의 변화를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 뿐 아니라 노동시장의 개입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동시에 권리보다 강한 차원의 돌봄에 대한 의무가 강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전통적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권리를 강조하는 스웨덴의 경험보다 더 강제적인 요소를 정책적 도구로 사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셋째, 제도의 설계, 젠더 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성장 외에 중요한 것은 바로 새로운 부모 상의 변화이다. 스웨덴,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제도의 구성이 아니라 바로 부모휴가에 어떠한 아버지 상이 반영되었는가이다. 변화된 아버지 상이 부재했던 덴마크와 핀란드에서 아버지 할당제가 폐지 되거나 남성 사용율이 저조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아버지 상은 무엇일까? 아버지 역할을 통해 개인의 발전을 강조한 스웨덴의 현대적 아버지 상일까, 아니면 자녀에 대한 의무를 강조하는 좋은 아버지 상일까? 성별 분업에 근거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되는 우리 사회에 적용 가능한 예는 스웨덴 보다 노르웨이 방식이 아닐지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가정내 돌봄 노동에서 젠더 평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선은 돌봄노동에 대한 남성의 참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기간 할당 방식에, 가족에 대한 특히 자녀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아버지상의 강조가 필요하지 않을까?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6월호(제140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