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0 2010-07-10   2852

[심층2] 통합의료보험의 사회보장적 의의

통합의료보험의 역사적 의미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모든 국민에 대해 의료보장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의료보장을 제공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국, 스웨덴 등이 하고 있는 방식인데 그 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있으면 무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 재원의 대부분은 일반조세에서 조달된다. 즉 국민은 의료보험료를 별도로 내지 않고 소득세 혹은 재산세 등에서 충당되는 재원으로 의료서비스를 받게 된다. 이 방식은 흔히 ‘국영의료서비스’ (NHS, National Health Services) 로 불린다. 다른 방식은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서 시행하는 방식인데 국민을 수많은 직업군으로 나누고 (가령, 사무직, 생산직, 농민 등) 직업군에 따라 별도의 의료보장서비스를 시행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의료보장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험료 납부 여부에 의해 결정되며, 직업별로 분리된 별도의 제도를 운영한다는 점이 NHS 방식과 다른 점이다. 이 방식은 흔히 전국민사회보험 (NHI, National Health Insurance) 방식이라고 한다.

 

NHI 방식은 다시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전술한 직업별, 혹은 지역별로 별도의 의료보험제도를 만들어 운영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대만처럼 사회보험방식으로 운영하되 모든 직업군과 계층들을 하나의 제도 안에 포괄하는 방식이다. 전자를 흔히 조합방식 의료보험, 후자를 통합방식 의료보험이라고 한다. 한국은 1977년 의료보험을 처음 도입할 때 일본의 모델을 참고하여 직종, 지역별로 700여개의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하여 제도를 운영하는 조합방식모델을 채택하였다. 일본은 물론 조합방식의료보험을 세계에서 처음 도입한 독일에서도 전국적으로 하나의 제도에 모든 국민을 포괄하는 통합의료보험(단일보험자모델)을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한국과 대만만이 유일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한국은 이미 조합방식의료보험이 전국민에게 적용되는 상황에서 통합방식으로 전환한 역사적으로 유일한 예이다. 물론 이 전환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주도한 의료보험통합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세계 의료보장사에서 이처럼 아래로부터 운동에 의해 통합의료보험이 만들어진 것은 한국의 유일한 예이며, 이런 점에서 한국의 통합의료보험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통합의료보험이 기존의 조합방식보다 어떤 점에서 더 낳은 제도라고 할수 있는가? 즉 통합방식의료보험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 대략 다음과 같은 세가지 점을 들 수 있다

 

의료위험에 대한 전국민 연대의 실현

 

의료보장은 그것이 NHS 방식이건 NHI 방식이건 근본적인 목적은 각종 질병이나 건강문제에 노출되었을 때 여기서 발생하는 소득중단 혹은 소득의 예외적 지출의 위험을 줄여 가계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령 암같은 중병에 걸렸을 경우 높은 치료비용을 보험제도에서 지불함으로써 가계의 급격한 재정부담을 줄임으로서 가계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부조의 원리를 우리는 ‘사회적 연대’ social solidarity 라고 표현한다.

 

조합방식과 통합방식의 차이는 사회적 연대의 범위에서 결정적 차이가 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과거 조합방식 시절에 농촌은 군단위로 의료보험제도가 운영되었다. 농촌의 군은 보험료를 낼수 있는 소득능력이 있는 계층이 적은 반면, 의료비를 많이 쓰는 노인인구는 많아 항상 적자에 시달렸다. 때문에 군단위 의료보험조합은 매년 높은 보험료 인상을 해야 했고 지출은 많았다. 가령 군에서 거주하는 노인이 암에 걸렸을 경우 그 비용은 같은 군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낸 보험료에서 충당된다. 가령 강원도 화천군에 사는 노인이 암에 걸려 많은 치료비용이 나오면 서울이 강남구에 거주하는 부유한 사람이 내는 보험료를 쓸수 없는 것이 조합방식의료보험의 특징이었다. 즉 모든 조합이 재정을 독립채산제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의료위험에 대한 사회적 연대는 군단위 혹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 내부에서만 이루어졌다. 하지만 통합방식은 전국민을 하나의 보험제도에 포괄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제주에서 의료비가 모자라면 서울시민이 낸 의료비를 공유할수 있는 구조이다. 즉 의료위험에 대한 연대가 전국적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전국민적 연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통합방식이 시행된 이후 농촌지역의 의료비 문제는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왜냐하면 부유한 조합 (가령 삼성전자의료보험조합, 강남구 의료보험조합)의 돈이 농촌지역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조합방식 의료보험제도가 동일지역 거주자 내부의 연대, 혹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 내부의 연대만 이루어지는 반면 통합방식의료보험은 전국민이 의료위험에 나오는 소득불안정문제를 서로 도와주는 전국민적 연대가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때문에 사회보장적 측면에서 통합방식의료보험은 조합방식의료보험보다 국민통합과 계층, 지역간 의료이용의 격차를 해소하는데 우월한 제도이다. 바로 이점이 통합방식 의료보험제도가 가져온 큰 성과이다.

 

의료보험의 보장성 확대 기반 마련

 

통합방식의료보험이 가져온 성과중의 두 번째는 의료보험제도가 보장해주는 수준을 높일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의료보장제도의 보장율 수준은 80% 수준을 넘어간다. 이 말은 치료비가 100만원이 나오면 80만원 정도는 의료보장제도에서 해결해주고 본인은 20%만 낸다는 얘기이다. 한국의 경우는 과거 조합방식 시절 보장율이 50% 정도에 불과했다. 즉 치료비 100만원이 나오면 50만원 정도는 의료보험조합에서 보장해주고 나머지 50만원을 본인이 병원을 퇴원할 때 병원에 지불해야 하는 구조이었다.  보장율이 높을수록 질병에 노출되었을 때 가계에 주는 부담이 적은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러한 보장율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바로 의료보장제도의 목적을 실현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보장율 수준과 통합방식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조합방식의료보험은 보장율을 높이는데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가령 보장율을 50%에서 80%로 올리려면 그만큼 보험공단에서 지출하는 재원이 커지는데 이것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올리거나 아니면 국가에서 재정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국가가 재정지원을 확대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나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보험료를 인상하여 보장율을 올리면 그렇치 않아도 높은 보험료에 불만을 품고 있는 농촌지역의 보험료를 대폭 인상해야 하고 적자상태에 빠져 있는 지역조합들은 적자 폭이 더 확대된다. 때문에 이 역시 정치적으로 쉬운 문제가 아니다. 즉 조합방식에서는 보장율을 올리기 어려운 구조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통합방식에서는 전국민이 보험료를 공유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흑자지역의 보험료를 적자지역에서 쓸 수 있다. 즉 보장율을 올려서 추가로 소요되는 비용은 흑자지역의 의료보험료로 충당될 수 있는데 이것이 통합방식이 갖고 있는 장점이다. 과거 조합방식은 적자상태에 조합도 있었고, 흑자상태의 조합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재정을 계산하면 전체적인 흑자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보장율을 확대할수 있는 재원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시적인 효과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통합방식에서는 보장율을 높이는데서 발생하는 재정부담이 전체 국민들간에 골고루 부담되기 때문에 특정지역에서 적자가 가중되는 지역간 격차 문제가 해소된다는 것이다. 즉 사회통합의 측면에서 통합방식은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정부에서 이루어진 통합방식을 바탕으로 노무현정부에서는 의료보험의 보장율을 어느 정도 높일수 있었다. 최근에는 보장율이 60% 수준까지 올라갔으며 암같은 중증질환의 보장율은 70%를 넘어서고 있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상당부분 통합방식의료보험이라는 행정체계가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조합방식에서 이정도 보장율을 높였으면 도시지역과 농촌지역의 의료보험조합의 재정적자로 상당한 사회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적어도 통합방식에서는 보장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간 격차문제는 발생되지 않았고 농어촌지역 등 취역지역의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공평한 보험료 부담의 실현

 

통합방식은 보험료 부담의 공평성을 실현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과거 조합방식에서는 보험료가 조합단위내에서 결정되었다. 예를 들어 보자.  서울시 강남구에 속한 사람들의 보험료는 직장가입자을 제외한 강남구 전체 주민들의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소득이 제일 높은 1등에서 100만등 까지 줄을 세운 다음 소득재산수준에 따라 보험료가 부과되었다. 농촌지역도 마찬가지이다. 군단위에서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 전체 군민을 분류하여 소득재산이 많은 사람은 많은 보험료를 냈고, 적은 사람은 적은 보험료를 냈다. 하지만 이것을 전국 단위에서 보면 문제가 발생한다. 가령 서울시 강남구에 30평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과 농촌지역에서 3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을 비교하면 당연히 서울시 강남구에 사는 사람의 재산이 높다. 하지만 강남구의 3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서울에서는 중산층이지만 전국 단위에서 보면 중산층 이상의 재산과 소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통합방식이 도입되면서 재산, 소득기준에 따라 전국민의 등수를 매겨 보험료를 부과했기 때에 도시지역의 부자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한 반면, 농촌지역의 보험료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즉 재산과 소득수준에 따른 보험료 부담이 관철되면서 사회보험의 중요한 원칙, 즉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부담한다는 원칙이 관철되었다. 이것은 과거 조합방식 의료보험보다 보험료 부담의 공평성을 훨씬 높인 것이다.  때문에 통합방식 의료보험은 전국민의 공평한 보험료 부담을 이전보다 훨씬 더 강화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의료공급체계의 통제 문제

 

통합의료보험은 과거의 조합방식의료보험이 갖고 있었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는 상당하다. 특히 통합방식이 밑으로부터의 사회운동에 의해 성취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남다르다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의료보험통합이 한국의 의료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의보통합은 의료보험제도 자체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큰 기여를 했으나 한국 의료보험체계의 또 다른 문제점, 즉 질서없고 비용 유발적인 의료공급체계의 개선과는 무관한 것이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의료보장제도의 개선은 비용유발적인 의료공급체계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완성된다고 할수 있다.

 

한국은 최근 몇 년간 OECD 가입국 중 가장 빠른 의료비 상승을 경험하고 있는데 연평균 20% 정도 증가하는 의료비는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한국은 미국처럼 의료비 부담으로 가계와 기업이 파탄하는 문제가 발생될 확률이 매우 높다.  의료비의 팽창은 노인인구의 증가, 소득수준의 향상, 그리고 의료공급자의 수요 유도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의 의료공급체계가 비용절약적이기 보다는 매우 비용유발적인 체계라는 점이다. 이처럼 비용유발적인 의료공급체계를 전면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통합방식의료보험의 성과는 물거품이 될 확률이 높다. 의료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통합의료보험이 할수 있는 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능성은 있다. 통합의료보험은 단일 보험자이기 때문에 보험자의 역량을 강화하면 의료비 상승폭을 적정한 수준으로 억제할 수 있다. 단일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의료비 상승을 억제할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보건복지부 역시 의료공급체계를 비용절약적으로 개편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통합의료보험은 이 모든 것을 자동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 김연명(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7월호(제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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