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가구 장일호
하루가 먹을 것 생각으로 시작해서 먹을 것으로 끝났다. 먹는 타령 하다 보면 하루가 갔다. 다른 ‘욕망’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삶이 점점 작아졌다. 지난 한 달간 달걀 60개를 먹어치웠다. 단칸방에서는 늘 달걀 비린내가 났다. 달걀은 마트와 시장에 있는 많은 식재료 중에서도 단연 싸고 활용도가 높았다.
가계부 지출은 대부분 식료품비였는데, 그나마도 싸고 질 나쁜 음식을 집어 들기 일쑤였다. 자주 통조림류나 인스턴트 식품을 장보기 목록에 올렸다. 한 달간 참치 통조림은 9개를 뜯었고, 라면은 모두 21개를 끓였다. 유기농이나 친환경 따위 마크가 붙어 있는 식재료는 고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매일 음식을 만들며 이것이 ‘건강한 삶’인지 되물었다.
최저생계비의 법적 정의는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다. 2인 가구 한 달 생활비 858,740원을 받아들었을 때, 나는 일찌감치 법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월세와 내구재 준비 등에 들어간 돈을 제했을 때 첫 날 손에 쥔 돈은 56만원. ‘문화’는 사치였다. 그저 삶이 돈에 맞춰 살아지고 있었다. 먹을 것을 제외하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만 사는 걸로 지출 기준이 엄격해졌다. 모기에 물린 손등과 발등을 긁고 또 긁다가 결국엔 멍이 들고 나서야 3000원짜리 모기약을 샀다.
그래서일까. 지난 한 달간 함께 살았던 이소영씨(21·사회복지3)와 가장 많이 했던 놀이는 “무엇 무엇 했으면 좋겠다”였다. 방법은 간단하다. 하고 싶은 일, 혹은 할 수 없는 일을 이야기 하다가 더 이상 욕망이 없는 사람이 지는, 그런 놀이. 대결은 곧잘 새벽까지 이어지곤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승부는 언제나 무승부로 끝났다.
원치 않는 지출을 유도하는 주거환경은 체험이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돈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다. 열대야가 지속되던 7월 한 달, ‘난방비를 걱정해야 하는 겨울보다 여름이 그래도 낫지 않을까’라던 생각을 고쳐먹었다. 더워서 잠 못 이루는 단칸방에서 룸메이트 소영씨는 전기세를 걱정했다.
최저생계비가 정한 2인 가구 주거비(14만8100원)보다 무려 6만원이나 비싼 월세 20만원짜리 방에서 나는 자주 뒤척였다. 집 한 채를 5개로 나눠 세를 준 방에 ‘사생활’이라고는 없었다. 벽을 타고 서로의 생활이 넘나들었다. 옆집 할머니가 거의 종일 틀어놓는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면서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내용을 대강 따라갈 수 있었다. 아랫집 노부부가 다투는 소리는 창문 넘어 생중계됐다.
재개발에 묶여 있는 마을은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겨울이면 기름 한 드럼에 20만원이 훌쩍 넘는 난방비 탓에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더 팍팍해진다. 여름이라 미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내가 살던 방에는 석유 보일러조차 없었다. 매일 찬물로 샤워를 했다. 감기 기운이 늘 따라다녔다.
그나마 수돗물도 잘 나오지 않았다. 오래된 집의 녹슨 배관 탓인지 수도꼭지를 틀면 ‘녹물’이 쏟아졌다. 덕분에 물을 끓여 먹기로 했던 애초의 계획은 포기했다. 한 달간 생수 값으로 쓴 돈은 5830원, 두 사람이 먹은 물은 모두 17ℓ였다. 따져보니 적은 돈이었지만 물을 사면서 늘 아까웠다.
내가 지금, 여기가 아닌 곳에서 누렸던 많은 것들을 확인하는 것은 당황스러웠다.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부딪친 이 어려움과 곤혹스러움이 일상이었다. 가난이 가진 통속 앞에서 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아무개’들에게 자주 미안해했고, 때때로 분노하곤 했다.
그러나 분노해도 좀체 바뀌지 않는 삶 앞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체념을 선택했다. 우리가 만난 사람 대개는 인내가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올해로 도입된 지 10년 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난의 현장에서 무력했다. 제도는 만들어져 있으나 현장에는 와 닿지 않음을 지난 한 달간 수없이 목격했다. 그 현장에서 나는 자주 인간의 존엄에 대해 물었다. ‘싸구려 음식’을 먹는 사람 앞에다 대고 “굶지 않으니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정책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5000원짜리 백반 한 번 먹는 것, 과일 한 번 먹는 것에 결심이 필요했던 날들. 장수마을에서의 한 달, 43200시간이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몸이 기억하는 가난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쉽지 않게 만든다. 두 발 뻗고 편히 잠을 자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죄책감이 들지 않을 날은 언제쯤 올까. 좁고 습한 방에서 부대끼며 우리가 한 달간 꿨던 꿈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도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이제 그 꿈을 실현하는 일은 8월31일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들의 몫으로 남겨 졌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8월호(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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