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규숙
경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9월 10일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고 다가오는 초고령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종합대책으로 발표된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11~15)은 공청회가 열리기도 전부터 이미 육아휴직제 개선방안의 부적절성에 대한 각계의 비판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인사청문회 등 굵직굵직한 보도거리들이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판이라 사안에 부합하는 충분한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터무니없이 낮은 기초노령연금을 인상해 달라고 어르신들이 탑골공원에 모여 노인대회를 열었다는 소식에 양식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공분을 느꼈을 법하다. 기본계획과는 전혀 무관한 사안인 듯이 건강관리서비스법이 슬그머니 의제화되면서 의료민영화에 뒷문을 열어주는가 하면,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전반적인 급여수준을 낮추기 위한 정부차원의 검토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국정감사과정에서 밝혀지는 등 정부가 과연 고령사회로의 진입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하게 하는 일련의 정책적 실수들이 이어졌다. 저출산, 고령화가 국가의 백년대계와 관련된 사업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이 정부가 토목사업에 갖는 관심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표현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이 글은 제2차 계획의 고령사회 및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대책에 포함된 모든 과제들을 개별적으로 논의하기 보다는 위 대책의 정책방향과 과제 간 상호 연관성, 그리고 1차 기본계획과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사회경제정책으로서 저출산 고령사회 대책에 대한 고민이 없다.
먼저 2차 기본계획이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도래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구조적 변화를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위주의 발전국가 전략으로는 타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얼마나 의식하고 만들어진 정책인지 의심스럽다. 기본계획이 언급하는 OECD수준의 출산율 달성 등 짜깁기식 정책과제 나열을 통해 저출산과 고령화의 충격이 해소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앞으로 감내해나가야 할 급격한 사회구조적 변화의 충격을 경시하는 처사로 여겨진다.
저출산, 고령화 그리고 성장동력이라는 정책 분야는 세 개의 영역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과제들로 구성되어 있을 때에는 매우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2차 기본계획의 구도는 1차 계획에서 추진해 온 정책과제 중 그나마 고령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추진된 기초노령연금, 장기요양보험 등의 기초적인 제도들의 내실 있는 추진을 위한 재정적 청사진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정부가 정책의 주요 대상을 베이비 붐 세대까지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현 세대의 노인들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할 복지혜택들조차 줄여가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고령화 대책을 세웠다는 의구심이 생겨나는 것이다.
1차 기본계획과 2차 기본계획을 비교한 <표1>을 보면 1차 기본계획에서 4개의 중범위로 분류되었던 정책과제는 2차 기본계획에서는 3개 영역으로 조정되었고, 이 중 잠재인력 활용기반 구축 및 인적자원경쟁력 제고라 일컬어지는 정책과제가 바로 저출산 및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전반적 고용수준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대책을 내포하고 있어야 하는 영역이다. 알 수 있듯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고용정책 분야의 주안점이 직업훈련, 일자리 창출 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보다는 잠재인력을 활용하는 쪽에 맞춰져 있고, 그나마도 1차 기본계획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부처의 명칭을 고용노동부라고 변경하면서까지 추진해 온 정책이라고 보기에는 그 내용이 심히 빈약해 보인다.
[표1]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비교
구분 | 1차계획 | 2차계획 | ||
중범위과제 | 소범위과제 | 중범위과제 | 소범위과제 | |
고령사회대책분야 | 안정적인 | 공적연금제도내실화 노후소득보장사각지대해소 사적소득보장제도 확충 | 베이비붐 세대 고령화 대응 체계 구축 | 다양한노동기회 제공 – 기업고령자 친화적 임금피크게 활성화 및 시니어 창업지원 다층적 노후소득보장체계확립- 퇴직연금제도의 조기정착 및 활성화 사전예방적 건강관리체계 구축 노후생활설계강화 |
건강하고 | 노후건강관리기반조성 노인요양보호기반확충 평생건강증진을 위한 생활체육 활성화 | 안정되고 활기찬 노후생활보장 | 일자리 사업 내실화 – 노인일자리 단계적 확대 노인빈곤예방을 위한 소득보장방안 마련 – 농지연금 도입 건강한 노후생활 및 의료비 지출 적정화 – 노인질병 특성에 따른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다양한 사회참여, 여가문화 제공 – 고령자 자원봉사 활동의 전문화 등 | |
안전하고 | 안전한 주거공간확보 고령친화적 교통환경 조성 활동적인 노인사회참여여건조성 | 고령친화 사회환경 조성 | 고령친화적 주거·교통 환경 조성 – 고령자용 임대주택 단계적 확대 노인권익증진 및 노인공경 기반 마련 – 독거노인 보호강화 | |
성장동력분야 | 여성 고령자 등 잠재인력 |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촉진 고령인력활용을 위한 생산적 고령화시스템구축 외국적 동포, 외국인력의 활용, 사회통합기반 조성 | 잠재인력 활용기반 구축 및 인적자원 경쟁력 제고 | 여성의 경제활동 촉진 –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 실효성 강화.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 여건 개선 외국적 동포·외국인력 활용 – 개방적 이민허용을 통한 해외 우수인력 유치 직업능력개발체계 확립 – 학교의 취업지원 기능 강화. 일과 학습 병행 |
인력자원의 경쟁력 및 | 선순환적 직업능력 개발 및 평생학습체계 확립 산업재해예방을 통한 노동력 손실방지 | |||
고령사회의 금융기반 | 역모기지제도 활성화 자산운용산업의 활성화 장기국채시장 육성 | 인구구조변화에 대응한 경제사회 제도개선 | 교육분야 제도개선- 교원양성 및 수급계획 재수립. 대학구조조정 등 주택 및 금융분야 제도 개선 – 중장기 주택수급 계획 수립. 장기 금융시장 활성화 재정분야 제도 개선 – 의무적 지출에 대한 재정준칙 도입 및 재정건전성 관리시스템 개선 | |
고령친화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 | 고령친화산업육성인프라 조성 고령친화제품기술개발 촉진 고령친화 제품표준화 확대 | 고령친화산업 육성 | 산업경쟁력 확보 – 고령친화제품 사용성 평가시스템 개발 및 고령친화 관련 R&D 투자 확대 국내외 시장 활성화 – 지역밀착형 전시·체험과 운영. 해외시장 선점을 위한 인프라 확충 | |
조금 더 나아가 저출산 고령사회대책의 추진을 위해 필요한 재원마련을 위해 세제의 개편이나 사회보험제도의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보완대책 등을 기대했지만 이 분야의 내용은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선언적인 정책과제 이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반면, 주택시장이나 금융시장과 관련된 제도 개선이나, 고령친화산업의 육성과 같은 분야에 대해 직접적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업들을 열거하고 구체적인 사업의 전시 및 시행가능성 등을 제시하는 것을 볼 때, 정책 주안점이 시장이 자생적으로 해결해야 될 제도들을 정책적 지원을 통해 활성화시키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이 결코 우리 미래의 사회구조 변화에 대한 국가차원의 고민의 결과라 보기 어려운 이유이다.
실효성 있는 고령사회대책의 부재
– 현세대 노인도 미래의 노인도 만족하기 어렵다.
2차 기본계획의 고령사회대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1차 계획 중 확대와 제도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 부재한다는 점이다.
기초노령연금제도는 국민연금제도와 재구조화하겠다고 언급만 되어있을 뿐 대상확대 및 급여수준 인상에 대한 별다른 대책이 마련된 흔적이 없다. 지난 10월 5일 국회에서 민주당의 한 의원이 복지부 산하‘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통합 및 재구조화 소위원회’가 이미 2월부터 두 연금의 통합 및 급여 수준 하향 조정에 대한 정책 방안을 마련해 제출했음을 밝히면서, 이번 2차 기본계획과는 별개로 또는 배후에서 전반적 연금수준을 낮추기 위한 검토가 이미 진행되고, 기초노령연금의 재원을 국민연금과 통합시키면서 정부의 재정부담도 덜기 위한 검토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된다. 현 세대 노인들의 빈곤율이 45.1%로 OECD 평균보다 거의 세배 이상 높은 것을 감안할 때, 기초노령연금조차 지급대상과 급여수준을 조정하지 못하고, 이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는 고령사회대책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 대책이 과연 어떤 형태로 제시될지 가치 짐작할 수 있겠다.
장기요양보험제도의 경우에도 현재 매우 제한된 범위 안에서 지급되고 있는 요양서비스를 유지하면서 등급 외 판정을 받은 노인세대에 대한 서비스 확대에 대해 이렇다할 계획이 마련되지 않았다. 현재 3등급 판정을 받은 노인에게까지만 지급되고 있는 요양보험 서비스를 4등급 이하의 노인들에게도 확대하여 대상자를 넓히고, 등급별 요양서비스의 수준도 높이는 것에 대한 고려는 차후의 계획으로 미루어져 있다. 이는 1차 기본계획의 주요 성과 중의 하나인 장기요양보험제도의 정착에 대한 의지가 부재함을 의미한다.
노후소득보장의 근간을 이루는 국민연금제도의 지속적인 개선에 대한 의지도 실종된 것으로 보인다. 약 500만 명에 달하는 국민연금 사각지대의 해소방안 없이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을 통해 다층적 노후소득보장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선언은 앞서의 국민연금 급여 축소방안 검토와 더불어, 노후 소득보장에 대한 공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를 너무나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행여 퇴직연금이나 임금피크제, 개인연금 등 사적 소득보장제도의 확충이 현 세대 노인이 아니라 베이비 붐 세대의 노후보장을 위한 장기적인 정책과제라고 변명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이들 제도들이 모두 생의 일정기간동안 안정적인 고용상태를 유지해 온 중고령자의 경제적 안정에만 기여할 수 있을 뿐임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근속연수가 OECD 평균에 비해 현저하게 짧을 뿐 아니라,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시장에의 진출입을 반복하는 근로자들의 비중이 급증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책의 주요대상 설정에서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적 돌봄의 유기적인 연계 없는 저출산 고령사회 대책은 허구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서로 맞물려 있는 현상이다. 출산율을 OECD 수준으로 올리는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고령화 현상에 대처할 수 있는 충분한 대책이 없이는 반쪽만의 처방이 될 수밖에 없다. 두 현상은 가족을 중심으로 한 세대간 부양과 돌봄이 더 이상 사적인 책임으로만 해결되기 어렵고 사회적 돌봄 체계의 전반적 재구성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한편으로는 근로가능인구의 인력풀의 저변을 넓히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가족을 부양하고 돌보는 데에서 오는 시간적, 경제적, 심리적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사회적 돌봄 지원체계의 획기적인 확대가 필요하다. 진부한 것처럼 들릴지 몰라도 우리보다 인구규모는 훨씬 작지만, 국민소득 등의 모든 지표에서 앞선 북구의 복지국가들이 이미 적극적인 고용창출과 이를 기반으로 한 사적인 돌봄 책임의 공유를 통해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를 무리 없이 해결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면 한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10월호(제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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