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객원연구원
지적장애인 성폭력과 피해자의 저항
2010년 5월, 지적장애가 있는 만 13세의 중학생을 4명의 고등학생이 성폭행하고, 이들이 피해자를 친구에게 소개하여 가해자가 16명까지 늘어났던 사건이 있었다. 피의자들은 지난 11월 말 불구속 기소되었는데, 수사 당시 경찰이 밝힌 불구속의 이유 때문에 논란에 휩싸였었다.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고 폭력이 없었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구속수사 여부에 있어 피해자의 저항여부를 언급한 것은 문제이지만, 성폭력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서 피해자의 저항이나 폭행, 협박 유무가 잣대가 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장애인준강간죄는 ‘항거불능’이라는 표현을 조문에서 명시하고 있고, 강간죄는 해석에 있어 항거불능, 즉 ‘저항의 현저한 곤란 또는 불가능’을 구성요건으로 이해한다.
이 사건에서 피의자들이 장애인준강간죄의 유죄판결을 받으려면, 피해자가 ‘장애로 인하여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었음을 이용하여 간음하였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상태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 법원은 아직 일관된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장애와 성폭력에 대한 이해의 정도에 따라 어떤 법원은 항거불능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고 어떤 법원은 좀더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기도 한다.
항거불능의 의미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의가 있는 판결은 2007년 7월 대법원 판결이다. 그 이전에는 엄격한 해석이 더 일반적이었다. 즉 장애인준강간은 장애가 원인이 되어 성적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상태로, 심리적,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해당된다는 입장이다. 형법은 심신이 미약한 사람을 위계나 위력으로 간음한 경우를 심신미약자간음죄라 하여 강간죄보다 좀더 약하게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고, 장애인준강간죄는 위계나 위력조차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좀더 장애의 정도가 심한 때에 한하여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고도의 정신장애’의 요구
장애의 정도를 판단하고 이를 통하여 ‘항거불능’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법원은 피해자의 일상생활능력, 지적능력, 학력, 성지식이나 성경험, 저항여부, 폭행·협박여부 등을 살폈다. 혼자서 버스를 탈 수 있다거나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다거나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다닌다는 점, 성교육을 받은 적이 있거나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기혼이라는 점 등은 피해자가 항거불능이 아닌 근거로 제시되었다. 또한 피해자가 거부의사를 표시하였다면 성적 자기결정능력이 있다고 본다거나 위 사건과 같이 폭행, 협박이 없었을 때에는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면서 항거불능을 부정한 사례도 있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입장으로 인하여 처벌의 공백이 생기는 예가 많다는 점이다. 장애의 정도가 미약할 뿐 피해자가 원하지 않은 간음행위가 있었다고 판단된다면 적용법조를 바꾸어서라도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이 일반인의 법감정에 부합하겠지만, 많은 경우 무죄가 선고되었다. 심한 장애를 요하지 않는 심신미약자간음죄가 적용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이는 장애인준강간죄와는 달리 피해자가 직접 고소를 하여야 하는 친고죄여서, 고소 이후 피해자가 합의를 하여 소를 취하한 때에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질적 저항가능성의 검토
엄격한 해석의 입장이 장애의 정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2007년 7월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7.7.27 선고, 2005도2994 판결)은 주변정황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항거가 곤란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 사건은 피고인이 같은 건물에 사는 내연녀의 딸을 5년간 8차례에 걸쳐 강간하고 피해자가 그로 인하여 임신중절수술을 받기도 한 사건이다. 피해자는 첫 범행 당시 13세로 지적장애 2급이었는데, 1심, 2심 법원은 피해자의 장애등급, 학습능력, 초등학교 때의 성교육 경험, 폭행·협박의 부재 등을 들어 항거불능을 부정하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평소 피고인이 피해자의 어머니와 오빠를 자주 폭행하여 피해자가 피고인을 무서워하였던 점, 첫 범행은 늦은 시각 야산 묘지 부근에서 이루어졌다는 점 등을 들어 피해자가 저항의사를 실행하기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였다고 하면서 항거불능의 상태를 인정하였다.
이와 같이 대법원은 피해자의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항거불능에 이르렀는지를 판단함에 있어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주변환경, 가해자의 행위 내용과 방법, 피해자의 인식과 반응의 내용 등도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장애인준강간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장애의 정도가 심각하여 사물을 변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으로, 장애 이외의 요소들이 피해자의 장애와 상호작용하여 성폭행에 대해 저항이 곤란한 상태를 유발할 수 있음을 인식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이후 이 판결을 인용하여 구체적 사건의 맥락을 중심으로 판결을 하는 사례가 증가하게 된다. 예컨대 피해자가 거부의사를 표시하였다고 하더라도 간단한 위협만으로 쉽게 저항을 억압하였다는 점이 저항의 현저한 곤란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보거나, 어느 정도의 일상생활능력이나 학습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관계의 사회적 의미를 이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통하여 판례의 태도가 전환되었다고 결론내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법원이 기존의 입장을 폐기하고 새로운 기준을 도입하려면 전원합의체로 판례를 변경하는 형식을 취하여야 하는데, 2007년 판결은 판례변경을 하는 대신 기존의 판결에 몇 가지 기준을 덧붙이는 형식을 취하였다. 그래서 이후의 판결들은 완화된 해석과 엄격한 해석을 동시에 적용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엄격한 해석의 입장을 취하거나 처음부터 엄격한 해석 기준만을 고수하기도 한다.
이렇게 엄격한 해석으로 인한 처벌의 공백 때문에 장애인준강간죄에서 ‘항거불능’이라는 표현을 삭제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왔고, ‘장애를 이용한 간음’을 처벌하는 것으로 변경하여야 한다는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기도 하다. 물론 피해자의 저항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죄의 성립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은 문제이지만, 어떤 경우가 과연 저항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인지에 대한 이해가 장애와 성폭력의 특성에 대한 이해에 충실히 바탕을 두는 것만으로도 처벌의 공백은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생각된다.
장애특성을 고려한 진술 이해의 필요성
지적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사건의 재판에서 또 하나 문제되는 점은 지적장애인의 진술에 대한 이해 부분이다. 유죄가 인정되면 처벌이 부과되는 형사재판에서, 피해자의 진술은 논리적이고 주변정황과 일치하며 경험칙에 부합할수록 그 신빙성을 인정받기 쉽다. 하지만 범행 자체의 비논리성, 성폭력 상황에 처한 장애인인 여성 피해자의 입장과는 동떨어진 판사의 ‘경험칙’, 비장애인과 다른 지적장애인의 인지능력 등으로 인하여 지적장애인의 진술이 믿을 만하다고 여겨지기는 매우 어렵다.
우선 지적장애인의 진술은 장애특성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예컨대 숫자개념이나 선후관계, 인과관계 개념이 미약하고 추상적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장애특성이 있다면 피해자는 범행의 정확한 날짜나 순서, 횟수, 가해자의 수 등을 인식하고 표현하기 어렵고 수사기관과 법정의 추상적 언어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피해자의 집과 같은 동일한 장소에서 여러 명의 가해자가 여러 날에 걸쳐 피해자를 성폭행하였다고 가정할 경우, 각 범행을 장소로써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가해자별로 정확한 날짜가 확인되어야 하겠지만 장애로 인하여 그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날짜에 대한 진술에 혼동이 있거나 각기 다른 날의 범행이 같은 날 발생한 것처럼 표현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경우 법원의 판단은 재판부마다 편차가 크다.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장애특성으로 인하여 혼동이 일어날 수 있는 부분에서 진술의 불일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범행의 방법에 대한 진술의 구체성의 정도, 주변정황과 피해자의 진술이 부합하는지 여부 등을 기준으로 진술 전체의 일관성을 판단하여 범행을 인정한 예도 있다.
추상적 표현의 사용도 오해의 소지가 큰 부분이다. 예를 들어 가해자와 ‘연애를 했다’라는 피해자의 표현은, 드라마에서처럼 가해자와 식사를 같이 하거나 손을 잡고 걷는 특정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피해자에게는 가해자의 폭력과는 별개로 인식된다. 하지만 성폭력의 맥락에서 이와 같은 표현은 지적장애인이 가해자와 동의하에 성관계를 한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동일한 사실관계에서 상반된 결론이 나오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지적장애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지적장애인 피해자에 대한 절차상 특례
성폭력 사건의 재판은 오랫동안 남성중심적 시각이 반영되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적장애인 피해자에 대한 성폭력 사건은 또한 비장애인중심적 시각으로 인하여 한층 더 왜곡되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고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및 형사피해자 관련법에 절차상 특례가 마련되어 있으나 이러한 절차들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피해자의 절차보조인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행법은 성폭력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기 위하여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피해자를 신문할 때 신뢰관계자를 동석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인 때에는 원활한 의사소통에 대한 보조가 더욱 중요해지며,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신뢰관계자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피의자, 피고인의 경우 형사소송법 및 소년법 등에서 보조인 규정을 두고 있지만 피해자의 보조인에 대해서는 훈령이나 지침 수준의 규정에만 머무르고 있어 법률상의 근거가 뚜렷하지 않고 실무에서도 잘 활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각장애, 청각장애 등과 같은 신체적 장애와는 달리 정신적 장애의 경우 보조인이 장애인의 개인적 장애특성을 이해하고 라포를 형성하는 과정이 더욱 필요하다는 점에서, 지적장애인의 보조인은 절차의 전반을 아우를 것이 요청된다. 따라서 성폭력과 지적장애에 대한 이해를 갖춘 보조인이 사건의 발생에서 최종심급의 재판에 이르기까지 계속성을 가져야 하며, 수사기관 및 법정과의 의사소통을 확보하는 진술보조인의 역할과 지적장애인 피해자가 형사절차에서 최소한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참여보조인의 역할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진술녹화의 취지에 따른 실효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장애인인 때에는 진술녹화를 의무로 하도록 하고 있으며, 따로 문자조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문자조서를 기본으로 하고 피해자 진술을 받아 조서를 작성하는 전과정을 녹화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조서작성을 병행하는 진술조사에서는 장애특성에서 비롯된 진술, 신체언어 등을 놓치기 쉬우며 이를 심층분석할 수 있는 자료가 바로 영상녹화물이라는 점에서 진술녹화가 갖는 장점을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 요청된다.
셋째, 장애인 피해자의 보살핌 지속 방안이 필요하다. 현행 피해자 보호 제도는 피해자가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거나 일시적 보호가 필요한 경우를 기본으로 한다. 평상시에는 보호가 필요하지 않지만 특수한 경우에 보호받아야 하는 피해자가 모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델은 상시적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상시적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특수한 경우에 보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보호의 중단이 곧 위험요소가 되며, 성폭력에 대처하거나 성폭력 피해를 주장할 수 없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따라서 지적장애인 피해자의 피해 주장과 동시에 새로운 일시적/지속적 보호의 연계 필요성을 검토하고 즉각 연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12월호(제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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