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명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민주당에서 제안한 무상복지에 대해 전 사회적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나 중요한 세 가지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미래가 결정된다
한국 사회는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를 성공시키면서 근대국가의 핵심적 구조 중 두 가지를 갖췄다. 한국 사회에 남겨진 두 과제는 복지제도의 완비와 국민국가 수립을 위한 통일이다. 서구의 모든 근대국가에 복지국가라는 칭호가 붙듯이 복지국가로의 진입은 근대국가의 필수 요소 중의 하나다. 박정희대통령 때 수립된 한국 복지제도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쳐 급속한 확대 경험을 하면서 복지국가의 초기단계의 모습을 갖췄다. 이후 중요한 것은 한국이 어떤 유형의 복지국가로 진입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며 여기서 결정적인 열쇠를 쥐게 될 것은 차기 정부가 어떠한 복지정책을 구사하는가에 있다. 애초에 민주당이 제안한 복지정책 내용이 차기 정권에서 한국 사회에서 관철된다면 한국은 유럽 복지국가 쪽으로 더욱 근접해질 것이다. 반대로 선별주의적 복지정책을 선호하는 세력이 집권할 경우 영미형의 자유주의형 모델 색채가 보다 강하게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즉 무상복지 논쟁 결과에 따라 한국 사회는 적어도 복지국가라는 측면에서 매우 다른 경로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복지정치가 확고해졌다
현재 무상복지 논쟁은 의료보험 통합이나 국민연금 개혁 같은 개별 정책에 초점을 둔 과거 복지논쟁과 매우 다른 특징이 있다. 학교급식에서 출발했지만 무상복지 논쟁은 개별 복지정책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한국의 복지정책 전반을 어떻게 구조화시킬 것인가라는 매우 원리적이고 철학적인 논쟁을 담고 있다. 사실 이런 논쟁은 학계에서나 부분적으로 있었지 학계를 떠나 정치권, 언론과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이 논쟁에 가담한 것은 한국 복지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과거에도 의료보험 통합 문제를 둘러싸고 모든 사회세력들이 입장을 표명한 적이 있으나 철학적이고 원리적인 부분에서 전 사회적 논쟁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국에서도 복지정책 전반을 놓고 보수, 진보 등 각 세력들이 자신들의 지향점을 명확히 하고 민주주의 선거시장에서 자웅을 겨루는 복지정치가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지담론의 정책화 가능성이 높아졌다
무상복지 논쟁의 또 다른 특징은 담론이 정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사실 과거에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사회복지 관련 구호는 ‘선거용’ 구호 성격이 강했으며 선거 이후에는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이번 무상복지 논쟁은 과거 선거용 혹은 집권용 담론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공개적 차원에서 벌어진 이번 무상복지 논쟁 결과로 인해 어떤 세력이 집권하건 자신의 담론에 맞는 정책들을 구상하고 집행해야 할 정치적 부담이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졌다. 예상컨대 한국 복지정책은 이미 어떤 복지정책이냐가 중요한 것이기 보다는 어떤 지향성을 갖는 정치세력들이 집권하는가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다.
무상복지의 개념과 쟁점
민주당이 제안한 무상복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비판이 나타났다. 여기서는 보편적 무상복지에 대한 원론적인 비판들은 제외하고 한국적인 상황에서 중요하지만 잘 부각되지 않은 쟁점들을 몇 가지 짚어 보기로 한다. 먼저 무상복지에 대한 개념 문제를 살펴보자. 무상복지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된 개념이다. 첫 번째는 사회복지를 공급하는 공급기관들이 공공부문이고, 두 번째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점에서 이용자들이 비용을 별도로 지불하지 않아야 한다. 가령 모든 의료기관이 국유화된 공공병원이고 국민들이 의료이용 시 별도의 의료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원론적 의미의 무상의료가 된다. 또한 모든 보육서비스기관이 공공부분이고 별도의 보육비용을 소비자들이 지불하지 않으면 무상보육이 된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번에 제안한 무상복지는 서비스공급기관의 국유화나 혹은 사회화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하지 않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점에서 이용자들이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게 하겠다는 정책이다. 다시 말하면 무상복지의 두 가지 요건 중 한 가지만을 갖춘 것이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의 무상복지로 보기 힘들다. 여기서 몇 가지 쟁점이 제기된다.
공공부분 복지공급자의 확충 필요성
사회복지의 일부 제도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가령 병원, 보육시설, 그리고 노인요양시설 등 사회복지 공급자가 과도하게 이윤추구 행위를 하게 되면 필요 이상의 재원이 들어갈 수 있다. 즉 무상복지는 공급자의 합리적 행동이 보장되면 상관없지만 공급자가 민간기관 이주의 구조이면 서비스 이용 시점에서 이용자 부담을 무료화하는 경우 필요 이상으로 복지재원이 과대하게 소비될 가능성이 있다. 복지국가로 불리는 대부분 나라에서 의료기관, 노인요양기관, 그리고 아동보육기관 등의 복지공급자는 공공기관이거나 아니면 종교단체 등 비영리기관에서 운영하는 단체들이다. 그러나 한국은 대부분 사회복지 공급자들이 강력한 이윤추구 동기를 추구하는 민간기관적 속성이 있다. 의료기관 경우 약 90%, 보육시설 약 95%, 그리고 노인요양시설 약 97%가 영리성을 강하게 띄는 민간의료기관이다. 이처럼 사회복지 공급자 구조가 압도적으로 민간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구조에서 무상복지 확대는 공공부분에서 가격통제기능(보육료 상한제가 일례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아니면 가격을 왜곡됨에 따라 자원배분 효율성이 저하되고 과도한 재원이 소비되어 큰 부담으로 남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민간 우위의 사회복지 공급구조를 공공부문 우위로 바꾸자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걱정해야 할 것은 너무 적은 공공부문이 가져오는 여러 가지 폐해이다. 따라서 공공부문 복지공급자를 어느 정도까지 확충해야 하는데 그동안 논의된 ‘공공의료 30% 확보’, ‘공공보육시설 30% 확보’정도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쉽지 않지만 사회복지공급체계 전반에서 최소한의 공공부분의 비중을 확보해야 장기적으로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때문에 복지재원이 확보된다면 우선적으로 공공복지시설의 확충에도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 완화
서구에서 보편주의적 복지국가가 성립될 수 있었던 토대 중 하나는 노동시장에서 소득분배나 노동조건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은 90년대 이후 나타난 노동시장 양극화 때문에 노동자 간, 업종 간 노동조건 차별이 극심하게 나타났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월급의 50%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됐으며 각종 사회보험제도나 기업복지에서 대부분 제외됐다. 이런 상태에서 1차 노동시장에서 벌어지는 극심한 소득불균형을 조세와 사회복지제도로 완화하는 데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1차 노동시장에서 오는 불평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노동정책, 산업복지정책, 조세정책과 동시에 추진해야 무상복지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는 나타나는 1차적 불평등을 복지제도로 모두 막을 수 없으며 그런 방식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무상복지 확대와 더불어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각종 노동정책이나 노동입법 등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목적세보다는 일반조세로
무상복지의 최대 쟁점 중 하나는 재원조달 문제이며 여기서 증세논란이 벌어진다. 무상복지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될 것이며 현재보다 더 많은 국가재원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감세정책의 철회, 4대강 사업의 전면적 재검토 등으로 상당 부분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 주장인데, 이 주장은 논리적으로 문제는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 증세를 할 것인가의 문제는 무상복지 시행과정에서 차근차근 풀어나갈 수 있다. 단계적인 재원조달 문제는 현실 정책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중장기적 증세 계획 역시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어떤 방식의 재원을 조달할 것이며, 어떤 방식의 증세인가 하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무상복지 재원으로 부유세 혹은 사회복지세 등 목적세 방식으로 재원조달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목적세 방식은 부자에게서 돈을 걷어 중산층과 하층에게 재원이 집중되는 방안으로 재원의 부담자와 서비스 수혜자가 분리되는 문제가 있다. 이 방식은 재원부담자의 정치적 불만을 발생시키고 소비자는 낙인감을 느끼는 방식으로 해당 제도의 정치적 지속가능성이 약화되기 때문에 보편주의적 무상복지의 재원조달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보편주의적 재원조달은 의료보험에서처럼 내는 사람과 서비스를 받는 사람을 일치시키는 전략이다. 이런 방식은 복지제도의 정치적 지지기반을 높여주기 때문에 견고한 복지국가를 수립하는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목적세 방식의 재원조달방식은 재검토될 여지가 상당히 많다.
월간 <복지동향> 2011년 03월호(제1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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