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가족에 대한 원고청탁을 받고 나서,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글을 써야 할까 고민하던 중 남편의 한 마디가 생각났다. 노인과 가족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았다고 하자, 남편은 “노인과 가족, 노인은 가족이 아닌가?”라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가족은 배우자, 자녀를 뜻하는 거지”라고 응대했으나 남편의 말을 다시 곱씹어보니,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노인을 가족 일원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노인과 가족을 분리해서 사고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은연중에 우리는 노인을 가족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노인을 가족부양의 대상자, 특히 자녀가 부양해야 하는 존재로서만 바라보지 않았는가?
노인이 가족부양의 대상자임을 보여주는 경험적 근거는 노인복지론 교과서, 전국 노인실태조사 보고서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2008년 전국 노인실태조사 결과에서 노인의 74.4%와 56.9%는 각각 비동거자녀와 동거자녀로부터 경제적으로 지원받는 것으로 나타나(박명화 외, 2009) 퇴직 등으로 인한 소득상실의 어려움을 겪는 노인에게 가족은 경제적 부양의 제공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만성질환 등으로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이 있는 노인에게 간병 및 수발의 신체적 지원을 제공하는 자를 보면, 배우자 83.9%, 동거자녀 75.3%, 비동거자녀 46.8% 순으로 나타나 신체적 지원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 수 있다(박명화 외,2009). 그리고 노인이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말벗 등의 정서적 지원을 받는 자가 배우자 93.7%, 동거 자녀 79.4%, 친구ㆍ이웃 79.4%, 비동거자녀73.2%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적ㆍ신체적 지원뿐만 아니라 정서적 지원에 있어서도 배우자와 자녀 역할이 중대함을 알 수 있다(박명화 외, 2009).
그런데 앞서 경험적 근거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면, 경제적 부양을 제외하면 노인의 자녀보다는 배우자가 신체적ㆍ정서적 지원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경제적 영역을 제외하면, 배우자 역할이 자녀에 비해 더 크며 노인의 배우자 역시 대부분 노인임을 감안하면 노인을 상호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써, 다시 말해 노-노 부양이 더 일반적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노인은 경제적ㆍ신체적ㆍ정서적 지원을 다른 가족성원에게서 일방적으로 받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가족성원에게 경제적ㆍ신체적ㆍ정서적 지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정서적 지원의 경우 경제적ㆍ신체적 영역과 비교할 때 상호 호혜성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2004년 전국 노인실태조사에서 노인이 정서적 지원을 제공받는 비율이 76.1%, 반대로 노인이 다른 가족에게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는 비율이 59.2%로 정서적 지원이 쌍방 간에 교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정경희 외, 2005).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인 상호 간의 지원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노인의 가족=자녀’로 쉽게 등치시키면서 노인을 자녀로부터 부양받는 대상자로서만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필자 생각으로는 무엇보다도 자녀가 노인에게 제공하는 경제적 부양의 힘, 경제적 역학관계가 갖는 파워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즉 2004년 조사결과에서 보듯이 노인은 배우자 이외에 경제적으로 다른 가족에게 지원받는 비율이 78.1%인데 비해, 노인이 다른 가족에게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비율은 21.7%에 그친다(정경희 외, 2005). 경제적 영역에 있어 제공률과 수혜율은 약 57%나 차이가 난다. 정서적 영역의 경우 앞서 살펴본 대로 노인이 정서적 지원을 제공받는 비율은 76.1%, 제공하는 비율이 59.2%로 수혜율과 제공율의 차이가 약 17%에 그치고 있어 경제적 영역과는 대조를 이룬다.
가족하면 우리는 통상적으로 경제적인 이해관계는 따지지 않는 몰 경제적인 대인관계로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것이 제한적인 설명력을 갖지만,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전혀 무시하는 것 또한 기본적인 인간관계 특성을 이해함에 있어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가족 내에서 발언권을 가지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력(power)이 경제력과 어느 정도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노인의 자립적인 소득원, 근로소득이나 공적 이전소득과 같이 자녀에게 의존적이지 않은 소득원을 갖는 것은 노인의 가족 내 지위를 향상시키는 일일 뿐 아니라 노인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다. 경제적으로 자녀에게 의존적인 노인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가족성원에게 당당하게 요구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다음으로 필자는 자녀가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대상자로 바라보는 관점은, 사회적으로 노인의 신체적 부양에 대한 부담을 과도하게 강조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2004년 전국 노인실태 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노인의 신체적 부양은 배우자가 일차적으로 책임지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노인의 자녀 특히, 며느리가 노인의 신체적 부양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상당히 지대함을 알 수 있다. 참고로 2004년 조사 결과 노인의 간병ㆍ수발을 주로 부양하는 자로 배우자 36.1%, 장남ㆍ며느리 28.6%, 장남 이외ㆍ며느리 12%, 장녀 이외의 딸ㆍ사위 8%, 장녀ㆍ사위 6.3%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실제로 간병수발을 필요로 하는 노인이 전체 노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 조사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의 28.4%가 일상 생활수행능력 또는 수단적 일상생활수행능력에 제한받는 것으로 나타남) 전체노인이 자녀수발을 필요로하는 것처럼 인식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절대 다수의 노인은 신체적ㆍ정신적으로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노인이 병약하여 자녀의 수발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는 노인에 대한 돌봄서비스의 인식 부족 등으로 노인 수발로 인한 자녀의 부담, 스트레스가 사회문제로 자리 잡으면서 우리도 알게 모르게 노인을 부양대상자로서 바라보는 시각을 굳힌 것은 아닐까?
또한 자녀가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대상자로 보는 관점은, 우리나라 노인복지정책의 이념적 기조인 “先 가정보호, 後 사회보호”에 투영되어 있다고 본다. 이 이념은 자녀가 노인을 부양함을 이상적인 모델로 보고, 노인의 경제적ㆍ신체적ㆍ정서적 지원에 대한 욕구를 자녀가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 이념은 서울대 박경숙 교수가 지적한 대로 자녀가 노인의 경제적ㆍ신체적ㆍ정서적 지원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경우에도 노인이 자녀 이외의 다른 사회적 자원을 가질 수 없게 함으로써 노인의 권익을 오히려 침해하고 있으며, 노인을 자율성을 가진 인격체로서 바라보기보다는 자녀부양의 대상자, 의존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하면 과언일까?
노인이 가족 일원으로서 당당한 지위를 가질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또한 노인이 신체적ㆍ정서적 지원에 대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가족 이외의 자원지원에 대한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 물론 경제적 영역을 제외하면 노인이 가족 일원으로서 신체적ㆍ정서적 지원을 상호 교환하고 있다는 사실, 배우자와 자녀 역할에 대한 인식, 노인이 노인을 상호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 자녀로부터 수발을 필요로 하는 노인은 절대 다수가 아니라는 사실 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족 같지만 나를 포함한 노인복지 전문가들이 노인이 가족의 일원이자, 자율성을 가진 인격체라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가끔씩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는 작업 역시 필요하다.
참고문헌
박명화 외(2009), 「2008년도 전국 노인생활실태조사 및 복지욕구조사」.
정경희 외(2005), 「2004년도 전국 노인생활 실태 및 복지욕구조사」.
월간 <복지동향> 2011년 05월호(제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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