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8-13   2267

[동향4] 병원들은 후천성 인권결핍증을 먼저 치료해야한다!

윤 가브리엘 |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를 예방하려면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예방해야한다. HIV는 주로 혈액과 정액, 질 분비물에 많이 존재한다. 그 외에 체액인 땀, 눈물, 소변 등에도 HIV가 있지만 극히 미량이어서 감염되지 않는다. HIV가 몸 안에 들어가려면 통로가 있어야 하는데 대게 그 통로는 상처이다. HIV/AIDS의 주 감염경로인 성관계 시에도 상처가 없다면 정액, 질 분비물에 있는 HIV가 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혈액을 통한 감염은 수혈, 주사기 공동사용, 주사바늘에 찔렸을 경우 등이다. 주시기 공동사용은 마약사용자들에게 많이 발생하는데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주사기를 구입 할 수 있는 나라에서 많이 발생한다.

 

주사비늘에 찔리는 경우는 주로 의료인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데 바늘에 찔리면 얼른 찔린 부위의 피를 짜내고 흐르는 수돗물에 씻기만 해도 예방이 된다. 수돗물에는 소독성분이 있어 그 소독 성분에 의해서도 HIV는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도 감염이 의심스러우면 감염내과 의사와 상담 후 HIV/AIDS치료제를 예방 차원에서 4~6주간 복용하면 된다. HIV는 몸 안에서만 살 수 있어 몸 밖에 나와 공기와 접촉하면 금방 죽는 미약한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HIV/AIDS감염인의 피가 몸에 묻어도 그 부위에 상처가 없다면 감염되지 않는다. 

 

HIV/AIDS는 유병율도 낮고, 감염 확률도 낮다. 우리나라에 에이즈가 보고 된지 26년이 흘렀지만 현재까지 감염이 확인 된 사람은 7천명이 조금 넘는 정도다. 감염 확률도 수혈이나 수직감염을 제외하면 주 감염 경로인 성관계도 1%미만 정도고, 주사바늘에 찔렸을 경우도 0.2%정도이다. 한국에서 의료인이 HIV/AIDS감염인을 치료하다 주사바늘에 찔려 감염된 사례는 단 한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위의 정보들은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에이즈 정보 사이트, 정부 지원으로 운영하는 에이즈 예방단체 사이트, 더 나아가 WHO(세계보건기구)사이트에도 다 나와 있는 정보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러한 에이즈 정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의료인들도 자신의 전공이 아니면 잘 모르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HIV/AIDS 감염인이 되어 에이즈 인권 활동을 8년 가까이 해오다 보니 가끔 에이즈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곳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온다. 몇 해 전 의대생들을 상대로 에이즈 문제를 주제로 강연을 했을 때 학생들이 가장 많이 얘기한 부분이 이런 정보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교과서 한 두 페이지에 에이즈가 어떤 병인지 간단히 소개하는 정도라는 것이었다. 이런 교육의 부재, 의료인들의 무관심, 그리고 편견과 두려움까지 더해져 HIV/AIDS 감염인의 진료를 거부하는 일이 다반사로 있어 왔다.

 

HIV/AIDS 감염인은 1, 2차 병원을 갈 수 없다. 에이즈와 무관한 단순한 감기나 피부질환, 치과 진료 등도 감염내과가 있는 종합병원을 가야만 한다. 1, 2차 병원들은 자신의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혹은 감염인을 진료한 경험이 없어서 등 온갖 핑계를 대고, 심지어는 진료를 해주지 않는 이유를 설명도 해주지 않고 큰 병원에 가보라며 돌려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1, 2차 병원에서 진료거부를 당하고 감염내과가 있는 종합병원을 갔는데 그곳마저도 수술을 거부하는 사태가 최근 벌어졌다.

 

지난 2월 서울의 Y대학병원이 수술용 ‘특수 장갑’이 없다는 이유로 HIV/AIDS감염인의 고관절 전치환술(인공관절 시술)을 거부한 바 있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이라 판단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7월 7일에 Y대학병원장에게 향후 동일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인권교육 실시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Y대학병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에서 에이즈가 보고 된지 26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런 수술거부, 진료거부는 우리 감염인들에게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1, 2차 병원에서 진료거부, 수술저부를 당하는 일이 너무 흔한 일이었기에 진료거부를 피하기 위해 당장 몸이 아파도 대기 시간도 길고, 거리도 먼 종합병원을 이용해왔다. 그런데 감염내과가 있는 종합병원에서 그것도 HIV/AIDS 감염인을 제일 많이 진료하는 병원 중에 하나 인 곳에서 수술을 거부한 일은 놀라움을 넘어 분노할 일이었다.

 

‘특수 장갑’은 당연히 필요하다. 의료인이 바늘에 찔리는 경우를 예방해야 하니까, 장갑이 없으면 구비 해놓으면 될 일이지 수술을 거부하는 건 인권의식의 부재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럼 혈액을 통해 감염되는 A형간염, C형간염도 특수 장갑이 없으면 수술을 거부 하는지 묻고 싶다.

 

Y대학병원 홈페이지에 가보면 최고의 의료기술과 최첨단 의료장비를 갖춰 외국인을 많이 유치하는 동북아시아 허브병원이 되겠다며 광고한다. 그리고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병원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다 공염불이다! Y대학병원은 작년 가을 치과 건물 앞에 “우리 병원은 AIDS 청정지역입니다” 라고 적힌 배너 현수막을 내걸었다. 치과에서 시범사업으로 진료를 보러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에이즈 검사를 하여 HIV 바이러스를 걸러내겠다는 건데 이는 HIV/AIDS감염인을 진료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렇지 않아도 진료거부가 가장 심한 곳이 치과여서 감염인들이 제일 많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진료과목이다. 그래서 치과도 감염내과가 있는 종합병원을 갈 수 밖에 없는데 ‘에이즈 청정지역’이라니, 그럼 HIV/AIDS감염인들은 이제 어디를 가서 진료를 보고 수술을 해야 하는지, 더 이상 갈 곳도 없는데 말이다.

 

이런 차별의 발생보다 더 큰 인권적 문제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거부를 당한 경우에도 그것을 시정하기 위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의료법 제15조(진료거부 금지 등) ①항은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환자들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거부당했을 때 이 상황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또한 의료기관을 상대로 개인이 ‘진료거부’임을 증명하고 싸울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구제조치가 미흡하다. 이것은 단지 HIV/AIDS감염인 뿐 아니라 힘없는 모든 환자들이 당면하는 문제이다. 더군다나 에이즈로 인한 치별과 냉대로 사회적으로 위축되어있는 HIV/AIDS감염인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번 Y대학병원의 경우는 ‘특수 장갑의 미비’와 같은 구체적인 사유가 있었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HIV/AIDS 감염인을 진료해본 적이 없어서’라든지 ‘HIV/AIDS 감염인을 치료할 장비가 없어서’, ‘병실이 없어서’와 같은 불명확한 이유를 들어 치료를 거부당하였다. 항의하거나 이유를 물어도 병원이 HIV/AIDS 감염인의 의견을 무시하면 그만이고, 보건복지부에 민원을 제기하면 ‘진료거부는 위법’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더 적극적으로 용기를 내어 이번 경우처럼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하더라도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위법적인 근거를 우선하여 기각 또는 각하당하기 일쑤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고소, 고발의 형태로 법정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는 HIV/AIDS 감염인들은 에이즈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심한 우리 사회에 자신의 신원을 노출해야 하는 또 다른 사회적 위험에 내몰리게 된다.

 

HIV/AIDS 감염인들이 병원에서 당하는 차별은 진료거부 뿐만이 아니다. 감염인들이 개별적으로 병원에서의 차별에 대해 질의하거나 시정을 요구하여왔지만, 매번 HIV/AIDS 감염인들이 시정을 요구하고 시정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병원에서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과 인권교육이 필요하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한 사례에 국한된 것이라기보다 HIV/AIDS 감염인을 제일 많이 진료하는 병원에서조차 진료거부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병원에서의 HIV/AIDS 감염인 차별에 대한 심각성을 경고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또한 의료기관의 관리, 감독기구인 보건복지부는 Y대학병원뿐만 아니라 모든 의료기관에서 HIV/AIDS감염인의 진료를 거부하는 일이 없도록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올해 한국은 에이즈 26년이 되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에이즈 30년이 되는 해이다. 1981년 미국에서 처음 환자가 보고되어 인류가 에이즈란 병을 알게 되고, 함께 살아온 지가 30년이나 된 것이다. 30년의 시간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듯이 에이즈도 치료법도 없던 초기 죽음의 병에서 치료가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변하였다. 1980년대 초에는 미국에서도 의사들이 HIV/AIDS 감염인의 치료를 거부하는 일이 많았다. 당시에는 에이즈에 대한 연구가 다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의사들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에이즈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예방하는 방법과 대처하는 방법들이 밝혀졌고, HIV/AIDS 감염인의 치료거부도 줄어들었다. 1988년 미국의 의사협회는 ‘우리는 HIV/AIDS 감염인의 치료를 거부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광고까지 신문에 실었다.

 

한국의 의사협회는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큰 목소리와 적극적인 집단행동을 잘 보여준다. 2000년 의약분업 때에도 그랬고. 최근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큰 목소리를 내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다. 나는 HIV/AIDS 감염인으로서, 몸이 아프면 언제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하는 환자로서 의사협회가 이런 광고까지 내주길 ‘언감생심’ 바라진 않는다. 하지만 언제든 자신의 병원에 HIV/AIDS 감염인이 진료를 보러 올 수 있다는 걸 생각해서 어떻게 예방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관심을 가져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에서 에이즈는 후천성 면역결핍증이 아니라 ‘후천성 인권결핍증’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1년 8월호(제154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