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5 2025-08-01   15851

[기획4] 좋은 돌봄일자리 없이는 지속가능한 돌봄도 없다

윤자영 |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우리 사회는 지금 돌봄의 위기를 맞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의 빠른 진입과 함께 돌봄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돌봄을 제공하는 종사자들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다. 마치 건물의 기둥이 썩어가는데도 그 위에 더 무거운 짐을 올려놓는 격이다. 돌봄의 책임은 여전히 가족, 더 구체적으로는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다. 국가는 제한적으로 개입할 뿐이고, 공공 돌봄서비스는 지역마다 편차가 크고 민간위탁에 의존하고 있다. 그 결과 돌봄의 부담은 비공식화되고, 돌봄노동은 저임금·저지위의 비가시적 노동의 덫에 빠져 있다.

이 글은 돌봄 일자리를 단지 노동시장 주변의 복지 영역으로 보지 않고,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떠받치는 핵심 기반으로 새롭게 정의하고자 한다. 특히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한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와 ‘돌봄 경제(Care Economy)’ 개념을 중심으로, 돌봄노동의 구조적 저평가가 어떻게 사회 전체의 재생산 기반을 위협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나아가 돌봄을 비용이 아닌 생산적 투자로 재위치시키고, 공공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돌봄 경제로의 전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저평가된 노동 : 돌봄노동의 현실

돌봄노동은 한국 노동시장에서 낮은 수준의 임금, 불안정한 고용, 높은 이직률의 대표 직종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여성, 특히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주된 노동력이며, 최근에는 이주여성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단지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일자리’의 문제가 아니다. 돌봄노동의 가치가 낮게 평가될수록 돌봄의 질은 저하되고, 서비스 이용자와 가족의 신뢰도 역시 떨어진다. 결국, 돌봄 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게 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좋은 돌봄일자리(Decent Care Jobs)’의 조건으로 적절한 보상(임금), 안전한 노동조건, 사회보장 접근, 노동권의 보장, 기술 개발과 교육의 기회 등 다섯 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1 돌봄노동은 인간의 존엄성과 연대를 기반으로 한 윤리적 책임이자 사회경제 시스템을 지탱하는 필수 기반이다. 돌봄은 교육, 보건, 사회복지 분야의 모든 노동자뿐만 아니라 가사 노동자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영역으로,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돌봄노동자들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은 돌봄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이다. 돌봄노동자의 처우가 열악하면, 직무 만족도가 낮아지고, 이직률이 높아지며, 소진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불안정한 노동 환경은 돌봄노동자가 서비스에 온전히 집중하고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돌봄서비스의 질이 저하되고, 돌봄을 받는 이들의 만족도와 안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돌봄노동자의 ‘괜찮은 일자리’는 단순히 노동권 보장의 차원을 넘어, 돌봄서비스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자 돌봄 받는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전제 조건이다. 돌봄을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ILO의 시각은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단순히 ‘희생’이나 ‘봉사’가 아닌 ‘전문적 노동’으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돌봄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투자임을 역설한다.

한국의 돌봄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이 기준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돌봄노동이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낮은 임금’에 그치지 않는다. 임금 수준의 형성과 배분이 자의적이며 제도화되지 않은 ‘임금체계 부재’ 상황에서, 호출형 비정규직 고용, 여성 집중, 공식과 비공식 고용 형태의 혼재, 인권 침해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는 돌봄종사자가 노동시장을 떠나는 구조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감정노동과 신체노동이 결합된 고강도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산재보상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휴게시간 보장이 유명무실하고 휴가와 병가 사용이 어렵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직무교육과 인증제도를 도입했지만, 국가적 표준은 미흡한 수준이다. 돌봄노동은 단순 반복 노동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감정, 삶을 다루는 고도의 복합적 노동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직무 교육과 역량 강화를 통해 전문성을 확보하고, 그에 걸맞은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돌봄노동 체계는 자격제도와 직무훈련은 일부 존재하지만, 그것이 임금 수준이나 고용안정, 경력경로와 실질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구조적으로 부실하다. 자격은 있지만 보상이 없고, 배움은 있지만 활용이 불가능한 시스템은 돌봄노동자들의 동기와 역량을 장기적으로 고갈시킨다. 특히 민간위탁 구조에서는 교육훈련 기회 자체가 기관의 재량에 맡겨져 있으며, 서비스 질 개선이나 전문직 경로 설계와는 무관한 형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돌봄 경제(Care Economy)’의 중요성과 돌봄 일자리

‘돌봄 경제’는 교육, 보건, 사회복지, 가사 노동 등 사람을 돌보는 모든 경제 활동을 포괄하며, 공식 부문뿐만 아니라 비공식 부문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개념이다. ILO는 돌봄 경제가 사회경제 시스템의 기반이자 발전의 토대라고 강조한다. 돌봄은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며, 생산성을 지탱하는 중요 기반일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연대를 기반으로 공동체와 사회 전체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ILO는 2024년 6월 제112차 총회에서 ‘괜찮은 일자리와 돌봄 경제’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며, 돌봄 경제가 향후 사회경제 정책의 핵심 영역으로 자리 잡을 것을 국제적으로 천명했다. 이 결의안은 돌봄 경제의 개념이 모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 및 비공식 부문을 아우르는 폭넓은 정의를 채택하며. ‘돌봄’을 경제·사회 안정의 축으로서 자리매김하는 ILO 공식 틀에 포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2 특히 ILO는 돌봄 경제의 전환을 위해 ‘5R 프레임워크’를 돌봄노동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고 국가정책의 개입 방향을 제시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로 제시했다. 이는 (1) 무급 돌봄노동을 ‘줄이고(Reduce)’, (2) 그 가치를 ‘인정하고(Recognize)’, (3) 책임을 ‘재분배(Redistribute)’하며, (4) 유급 돌봄노동자에게 ‘보상하고(Reward)’, (5) 이들의 ‘대표성(Representation)’을 보장하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두 가지, 즉 돌봄노동자에 대한 보상과 대표성 보장은 노동 시장의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근로 조건을 개선하며, 성평등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핵심적이다.

‘5R 프레임워크’는 단순히 개별 정책 제안의 나열이 아니라,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포괄적이고 상호 연결된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 이는 돌봄 문제가 단순히 ‘유급 노동자의 처우’나 ‘가족의 부담’이라는 개별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체의 성별 불평등 구조, 노동시장의 가치 평가, 그리고 공공 서비스의 역할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무급 돌봄의 부담이 줄어들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가 확대되고, 이는 다시 유급 돌봄서비스 수요를 증가시킨다. 동시에 유급 돌봄노동자가 정당한 보상과 대표성을 가질 때, 이 분야로 유입이 원활해지고 서비스 질이 향상된다. 그래야 돌봄 책임의 부담을 진 여성 등의 경제활동 참여가 가능해진다. 이처럼 각 ‘R’은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어느 한 부분의 개선만으로는 지속가능한 돌봄 사회를 구축하기 어렵다.

선택권 담론과 돌봄노동자의 권리 사각지대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복지정책에서 바우처 제도는 이용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복지서비스의 효율성과 품질을 높이기 위한 대표적 수단으로 도입되어 왔다. 특히 돌봄 분야에서는 재가 요양, 장애인 활동지원,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아동 돌봄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용자 중심이라는 명목 아래 바우처 방식이 기본 모델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의 구조적 한계는 돌봄노동자의 보상과 대표성 보장이라는 핵심 과제를 지속적으로 뒷전으로 밀어냈다.

바우처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돌봄서비스를 ‘시장화’된 상품처럼 취급하면서도, 그 시장이 작동하기 위한 노동 조건과 규범을 정비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공급자인 돌봄노동자는 이용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개별화된 경쟁 구조에 놓이게 되고, 이는 장기적 고용 관계나 안정적인 임금체계를 형성하는 데 구조적으로 불리한 환경을 만든다. 또한, 바우처 제도는 ‘이용자의 선택’을 중심 가치로 내세우며, 노동권과 노동조건에 관한 공공의 책무를 상대적으로 회피하는 논리로 작동한다. ‘서비스는 선택받아야 한다’라는 명제가 강조되면서, 돌봄노동자의 권리는 제공의 전제가 아니라 결과적 부수물로 간주된다. 실제로 정부의 지침이나 사업 운영계획서에서 이용자의 권리는 상세히 기술되어 있는 반면, 노동자의 권리는 형식적 언급에 그치거나 민간 위탁기관의 책임으로 위임된다.

문제는 바우처 제도의 이러한 구조가 단지 돌봄노동자의 권리만 침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돌봄노동의 질 저하와 서비스 체계의 지속가능성 붕괴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돌봄노동이 저임금, 고강도, 비정규 구조에 고착되면 숙련도와 전문성이 축적되지 않고, 이는 곧 이용자의 서비스 경험과 삶의 질 저하로 직결된다. 결국, 선택권을 보장하려는 정책이 역설적으로 선택할 만한 질 좋은 서비스를 사라지게 만드는 자기모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용자의 권리 보장과 함께, 공급자인 노동자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명시하고, 보상과 대표성 보장을 돌봄체계의 핵심 가치로 위치시켜야 한다.

돌봄 경제 개혁 과제 : 공공성 강화

한국의 돌봄체계는 민간 위탁 중심의 분절적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서비스는 복지 대상자별로 나뉘고, 돌봄노동자는 일자리 안정성도 낮은 채 다층적인 하청 구조 안에 있다.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해졌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가족 단위 돌봄의 한계와 돌봄 인프라의 부재가 동시에 드러났다. 그러나 공공성 강화는 선언적 구호에 머무르고 있으며, 윤석열 정부 돌봄 일자리 정책은 오히려 민간위탁 강화와 비공식 노동시장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노골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필리핀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이다. 이 사업은 한국 내 가사·돌봄 수요를 외국인 노동력으로 충당하려는 취지에서 추진되었지만, 제대로 된 공공 전달체계 없이 시장을 통한 고용 중개 구조로 설계되었다. 이 시범 사업은 한국의 돌봄노동 시장이 얼마나 공식성과 고용 안정성 없이 설계되어 왔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었을 뿐이다. 제도적 일자리 체계, 공공 고용 인프라, 적절한 임금기준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이주노동자 유입조차 여의치 않을 수 있음을 드러냈다. 돌봄의 공공성은 단지 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돌보는가, 어떤 조건에서 돌보는가, 그 노동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정받는가에 대한 구조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 점에서, 공공기구의 약화와 외국인 돌봄노동자 수입 확대는 결코 돌봄 위기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돌봄 경제 개혁 과제 : 합리적 임금체계 마련

돌봄노동은 과거 여성이 무보수로 가정 내에서 하던 일의 연장으로 여겨져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이 필요 없는 단순한 일이라는 가부장적 편견에 기반하여 사회적으로 저평가되어 왔다. 이러한 인식은 돌봄노동의 가치를 폄하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한국 돌봄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비돌봄 직종 대비 60% 수준에 불과하며, 다른 7개 국가의 돌봄노동자 평균 임금 비율(비돌봄 직종 대비 65.7%)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또한, 한국 돌봄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50.5세로 다른 7개 국가 평균(43.5세)보다 7세 많고, 근속연수도 1.9년으로 7개 국가 평균(7.9년)보다 4배 이상 짧다.3

돌봄노동자의 임금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져 있거나 그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낮은 임금조차 어떤 기준에 의해 형성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간병노동자 등 직종별로 다양한 형태의 돌봄노동이 존재하지만, 이들의 임금은 직무의 복잡성, 경력, 숙련도, 노동강도에 비례하지 않으며, 정부 가이드라인과 민간 위탁기관의 자율적 결정, 지자체별 보조금 편차에 따라 자의적으로 정해지고 있다. 이는 곧 ‘임금체계의 부재’를 의미하며, 단순한 저임금 문제보다 훨씬 구조적인 위기를 의미한다.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직무급, 경력호봉, 자격기준, 근속승급 등 최소한의 임금체계 요소가 돌봄노동자에게는 전무하다. 동일한 돌봄을 수행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지역·기관별로 수십만 원의 임금차가 발생하고, 심지어 근속 10년 이상의 노동자와 초임 노동자의 임금이 거의 같은 경우도 흔하다. 그 결과, 숙련도가 누적되지 않고 이직률은 높으며, 돌봄노동의 전문성도 제도적으로 보상받지 못한다.

돌봄 일자리는 형식상 민간 위탁이거나 간접고용일 수 있지만, 그 실질은 전적으로 국가의 재정과 행정에 의해 성립된다. 대부분의 돌봄서비스는 국가의 예산과 지방정부의 보조금, 중앙정부의 기준지침, 그리고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안에서 작동하며, 민간기관이나 위탁기관은 그 하청 실행 주체일 뿐이다. 즉, 누가 고용주이냐를 둘러싼 형식 논쟁을 떠나, 그 일자리의 성립 조건은 본질적으로 국가가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임금이 자의적으로 결정되고, 노동의 난이도나 숙련도, 경력에 따라 체계적으로 보상되지 않는 지금의 현실은 결국 국가가 책임져야 할 제도적 공백이자 무책임의 결과다. 예를 들어 현재 돌봄노동자에 대한 경력 인정은 ‘사업장 단위’로 제한되어 있어, 동일한 업무를 수년간 수행했더라도 근무 기관이 달라지면 경력 불연속이 발생하고, 각종 수당이나 보상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요양보호사 장기근속장려금 제도는 현재 ‘한 기관에서 36개월 이상’ 근무한 경우에만 인정되지만, 경력의 연속성을 총생애경력 단위로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국가가 책임지고 만들어낸 일자리라면,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책임 있는 임금기준과 직무체계를 제공해야 한다.

돌봄 경제 개혁 과제 : 돌봄 일자리 법제도 및 거버넌스 정비

돌봄서비스의 단가와 임금 수준, 공공투자 방향을 국가 차원에서 총괄하고 조정할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 인프라 및 돌봄서비스 총괄 위원회’(가칭)의 설치가 필요하다. 이 위원회는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산하의 독립적 기구로 구성되며, 돌봄서비스의 사회적 가치와 중요성, 사회적 분담 수준을 공론화해 공공 돌봄 인프라 확충, 적정 단가 설정, 임금격차 해소 등의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실행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처럼 직종별, 지역별로 파편화된 방식으로는 돌봄서비스의 품질과 노동자 권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

지역 차원에서도 거버넌스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시·군·구 단위의 ‘지역 돌봄 협의체’를 구성하여, 고용주, 노동자, 이용자, 지자체,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다자간 협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이 협의체에서는 지역 통합돌봄체계 구축 과정에서 돌봄노동자의 역할을 제도화하고, 직무 기준에 따른 표준 임금체계 마련, 경력 인정 기준, 서비스 품질 평가 기준 등 다양한 현안을 공동으로 논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사회서비스원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사회서비스원은 국공립 돌봄시설 확충, 민관 협력 조정, 지역 맞춤형 서비스 기획과 제공, 돌봄 일자리의 매칭과 감독·평가까지 종합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공기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현행처럼 사회서비스원이 위탁기관의 보조적 기구에 머무는 한, 고용 안정성과 노동조건의 개선은 실현되기 어렵다. 재정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공공 고용의 직접 주체로서 기능을 강화하는 제도 개편이 요구된다.

돌봄노동의 특성상 근골격계 질환,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적 위험, 이용자 또는 보호자에 의한 괴롭힘이나 성희롱 등 다양한 노동인권 침해의 위험도 높다. 이에 따라 산업재해 보상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심리상담 지원, 성희롱 예방 교육, 피해자 보호 절차 마련 등 포괄적 인권 보호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남녀고용평등법, 산업안전보건법,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등 기존 법률이 돌봄노동자의 현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도록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 예컨대 장기요양기관 내 성희롱 피해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구제 절차를 담고 있지 않다.

돌봄 경제 개혁 과제 : 돌봄은 비용이 아니라 생산적 투자

돌봄노동에 대한 공공투자는 재정 부담이 아니라 사회적 투자라고 반복해서 강조되곤 한다. 여성 고용 확대, 인적자본 축적, 사회적 포용을 위한 핵심 인프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언설은 구호에 그칠 뿐, 예산과 제도 설계의 우선순위는 여전히 과거의 틀을 반복하고 있다. ‘투자’란 무엇인가? 정책적 투자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장기적 편익을 목표로 자원을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돌봄 분야의 예산은 여전히 복지 예산의 하위 항목에 머물러 있고, 기획재정부의 재정지출 구조에서도 ‘생산적 복지’라는 이름 아래 노동시장 중심의 고용유지 지원, 기술개발 보조에 밀려난다. 보육, 요양, 장애인 활동지원 등은 지방정부의 재정 자율성 부족 속에서 ‘최소한의 지원’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재정 확대 요구는 늘 ‘지방 부담’ 또는 ‘재정 건전성’의 논리로 후순위로 밀려난다. 더구나 ‘투자’라는 말에는 공공이 책임지는 방식의 지출 구조 개편이 포함되어야 하지만 한국의 돌봄정책은 여전히 민간 위탁과 시장 논리에 기댄 파편적 공급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은 손 놓은 채 노동시장 주변부에 위치시켜 왔다. 실질적 돌봄투자가 되려면, 국가가 직접 고용주로 나서고, 사회서비스를 예측 가능한 장기 지출 항목으로 구조화하며, 여성 고용과 사회적 재생산의 조건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돌봄은 본질적으로 공공재적인 속성을 가진 활동이다. 이는 단지 서비스 이용자의 복지 향상에 그치지 않고, 가족의 부담을 줄이고,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며, 사회 전체의 재생산 기반을 확장하는 다층적 효과를 수반한다. 그러나 이러한 편익은 단기적으로 측정되기 어렵고, 불특정 다수에게 분산된 형태로, 장기적 시간 지평 속에서 회수되는 특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보육 서비스에 대한 공공투자는 부모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지만, 그 효과는 유아기부터 초등시기까지 몇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나타난다. 노인요양에 대한 공공투자는 돌봄 부담을 가족에게서 분산시키며,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을 완화시키지만, 이 또한 수년에 걸친 누적적 효과로 나타난다. 장애인 활동지원, 정신건강 돌봄 역시 당장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사회통합과 삶의 질 개선, 돌봄서비스 수요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재정 논의는 여전히 단년도 예산 평가와 생산성 중심의 비용-편익 분석에 갇혀 있다. 돌봄에 대한 투자가 왜곡되거나 축소되는 것은, 그 효과가 단기 지표로 환산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민간투자나 산업정책에는 대규모 예산을 배정하면서, 돌봄에는 ‘성과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소극적인 투자가 반복된다.

돌봄은 본질적으로 ‘사회 전체의 재생산 비용’을 공유하기 위한 공공적 개입이자, 미래세대와 사회적 신뢰를 위한 투자다. 그것이 회계적 논리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돌봄의 시차 편익과 집단적 편익 구조를 고려한다면, 국가는 선제적이고 구조적인 투자를 감행할 책임이 있다. 단기 성과 중심의 회계주의를 넘어서야만, 우리는 돌봄을 진정한 사회적 투자로 실현할 수 있다.

돌봄 사회 대개혁과 지속가능한 미래

돌봄 경제는 단지 복지서비스 확대가 아니라, 사회의 작동 원리를 바꾸는 개혁이며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다층적인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돌봄이 사회적 권리로 자리를 잡고, 돌봄노동이 존중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돌봄 불안이 없는 사회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뿐만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 또한, 돌봄 경제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및 지역 균형 발전을 이끌어내며 연대와 협력에 기반한 포용적 사회로의 전환을 촉진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급격한 고령화와 가족 구조 변화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심각한 돌봄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하는 ‘괜찮은 일자리와 돌봄 경제’의 비전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돌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돌봄을 보편적 권리로 인정하고,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며, 돌봄노동자들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괜찮은 일자리’를 가질 때 비로소 누구나 안심하고 돌보고 돌봄받을 수 있는 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 좋은 돌봄일자리는 그 시작점이며, 새 정부는 늦기 전에 그 길을 열어야 할 때다.

| 미주 |

  1. Addati, L., Cattaneo, U., Esquivel, V., & Valarino, I., 2018, Care work and care jobs for the future of decent work. Geneva : International Labour Organisation (ILO). ↩︎
  2.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2024, April 4, Decent work and the care economy : Points for discussion [Conference paper], International Labour Conference, 112th Session, Retrieved July 21, 2025, from ILO website. ↩︎
  3. 신영민·김태일, 2022, 돌봄 일자리 특성과 임금수준에 관한 국제비교 연구, 정책분석평가학회보, 1-22. ↩︎

월간 <복지동향> 2025년 8월호(제3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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