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래미 |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현 정부는 누구나 기본돌봄을 받을 수 있는 ‘돌봄기본사회’를 천명하였다. 사실 저출산·고령화가 예견된 2000년대 중반부터 역대 정부 모두 돌봄의 국가 책임을 약속해 왔다. 그러나 장기요양보험제도,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어린이집, 다함께돌봄센터, 늘봄학교, 아이돌봄서비스, 모부성보호제도 등의 제도적 외연이 확장된 것은 분명하나, 껍질이 아닌 알맹이까지 완전한 돌봄의 국가 책임은 여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소중한 누군가가 돌봄이 필요할 때면 발을 동동 구르거나 좌절하는 현실, 왜 우리는 여전히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까? 이는 돌봄의 일차 책임은 가족에게 있고, 국가는 보조적 역할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로는 국가 책임을 내세우면서도 정책은 최소한의 역할에 머무르려고 했다. 그 결과,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다음과 같다.
✓ 하루 4시간에 불과한 노인재가돌봄
✓ 긴급상황이나 24시간 돌봄이 절실할 때 사용하기 어려운 장애인 돌봄
✓ 퇴근 시간은 한참 남았는데, 실제 퇴원시간은 2~4시인 어린이집과 유치원
✓ 제2의 돌봄위기의 대응으로 보편적 돌봄을 선언했지만 대부분 3시에 끝나는 늘봄학교
✓ 질병, 사고 등으로 돌봄이 시급함에도 대상에서 제외되는 아동·청년·중장년
✓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어도 서비스가 부족해 결국 시설로 향하게 되는 현실
✓ 불안정한 노동환경이라는 이유로 가족 돌볼 권리마저 가로막히는 현실
✓ 열악한 처우에도 양질의 돌봄을 강요받는 종사자
이제는 돌봄의 기존 프레임을 과감하게 깨뜨려야 한다. 더 이상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선별하던 시대는 지났다. 평균 가구원 2.2명, 맞벌이가구의 증가, 여성의 돌봄 책임 인식 축소와 같은 변화 속에서 이제는 모두가 사회적 돌봄을 필요로 한다. 전 생애에 걸친 ‘돌봄 기본권’ 보장이 필수적인 이유이다. 또한 ‘돌봄받을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기 위하여 시설돌봄을 지양하고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돌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고용보험 가입 여부로 수급권이 갈리는 현행 모부성보호제도와 자녀 중심의 가족돌봄제도는 돌볼 권리의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돌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돌봄의 가치 절하가 반영된 돌봄종사자의 낮은 일자리 질은 정의로운 돌봄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돌봄 경제’의 관점을 도입하여 돌봄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본 호에서는 돌봄의 낡은 프레임을 폭싹 깨고 새판을 짜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였다. 먼저, 최혜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이 ‘전 생애 돌봄 기본권’의 의미와 관련 쟁점을 살폈다. 먼저 전 생애 돌봄 기본권의 개념적 의미를 짚어보고, 돌봄 기본권 소지의 주체와 보장의 주체에 대해 다루었다. 돌봄 기본권 구성을 위해 돌봄받을 권리와 돌볼 권리, 돌볼 권리의 젠더화, 돌봄의 사회화 또는 재가족화의 쟁점에 대해 논의하며, 전 생애를 고려하지 않은 현 돌봄제도의 한계 극복을 위해 전 생애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영남대 김보영 교수는 ‘돌봄받을 권리’ 보장을 위하여 현재 추진되고 있는 돌봄통합지원법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중심 통합 전달체계의 쟁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돌봄통합지원법의 제정이 가지는 빛과 그림자를 조명하고 이 법제화가 돌봄받을 권리의 실현을 가로막지 않게 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을 제안하였다. 주민 개개인의 삶을 재구성하는 실행체계로서 돌봄통합창구와 통합지원회의를 제안하고, 책임의 구심점을 세우기 위한 시군구 단위의 총괄 조정 체계도 구상하였다. 마지막으로 돌봄통합지원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주민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기 위하여 가칭 「지역돌봄보장법」을 촉구하였다.
서울여대 김진석 교수는 ‘돌볼 권리’를 돌봄권과 돌봄 위기라는 측면에서 논하였다. 돌봄을 돌봄받는 사람, 책임지는 가족, 돌봄노동자가 얽힌 ‘관계’로 정의하면서, 돌봄권이 돌봄받을 권리를 넘어 관계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의 권리를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가족들이 과도한 돌봄패널티 없이 돌봄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돌봄노동자의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를 위해 충분한 사회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함을 주장하며, 좋은 돌봄은 관계 속 모든 주체들의 돌봄권이 상호 존중되며 함께 보장될 때 완성된다고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충남대 윤자영 교수가 ‘돌봄 경제’의 관점에서 돌봄 종사자의 일자리 질 개선 방안을 다루며 정의로운 돌봄의 길을 모색하였다. 저평가된 돌봄노동의 현실을 지적하고 돌봄 경제가 대안으로 가지는 의미를 제시하였다. 또한, 선택권 담론이 돌봄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소외시켰는지 지적하고, 돌봄 경제의 개혁과제로 공공성 강화, 합리적 임금 체계 마련, 돌봄 일자리 법제도 및 거버넌스 정비, 생산적 투자로서의 돌봄 인식 전환을 제시하였다.
돌봄의 새판 짜기는 어느 한 부분의 개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전 생애에 걸친 보편적인 돌봄 기본권이 인정되어야 하고, 돌봄받을 권리를 위해 지역사회 전달체계가 책임있게 구축되어야 한다. 돌봄받을 권리뿐 아니라 돌볼 권리도 보장되어야 하며, 돌봄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 네 개의 축이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비로소 돌봄이 위기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돌봄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본 호에 담긴 깊이 있는 제언들이 더 나은 돌봄 사회를 위한 치열한 사회적 논의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월간 <복지동향> 2025년 8월호(제3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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