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5 2025-12-01   105016

[기획1] 기후위기, 인권의 자리에서

해미ㅣ기후정의동맹,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가을이 맞나 싶을 정도로 후덥지근하던 날씨가 순식간에 추워졌다. 계절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말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문제는 이 변화가 그냥 덥고 춥다는 불편한 체감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후위기는 이미 취약했던 삶의 자리를 더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단열이 제대로 안 되는 집에서 난방을 켤지 끼니를 채울지 고민하는 사람들, 에어컨 없는 컨테이너에서 쉬지 않고 일하다가 쓰러지는 사람들, 비가 오면 가장 먼저 잠기는 반지하와 쪽방에 사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은 이상기후라는 말로 설명될 수 없다. 안전한 집에 살 권리, 위험한 상태에서 작업을 중단할 권리, 재난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빠르게 이동할 권리 같은 기본적 권리가 박탈된 구조에서 기후위기는 사회적 재난이 된다. ‘누구의 안전과 존엄이 왜 무너지는지’를 묻는 인권의 언어가 필요한 이유다. 

‘인권’의 문제로서 기후위기

서울 낮 기온이 38도에 육박했던 지난 7월, 살인적인 더위에 3명의 쿠팡 택배기사가 연이어 목숨을 잃었다. 이미 2024년 여름에도 제주와 용인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들이 있었다.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건 ‘폭염’이 아니라 ‘폭염에도 쉴 수 없는 무권리의 노동 현장’이었다. 노조에 따르면 쿠팡 물류센터에는 에어컨이 없는 작업공간도 많고, 창문을 열지 못하게 고정하거나 창문이 아예 없는 곳조차 있다고 한다. 몸이 녹아내리는 현장에는 쉬는 시간과 공간도 부족했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10시간 일하며 유일한 휴식시간은 45분 남짓한 점심시간에 불과했다. 이에 8월 1일과 15일에 쿠팡물류센터지회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진행했고, 14일은 ‘로켓배송 없는 날’로 지정하여 하루 불매행동을 펼쳤다. 제대로 된 휴게 공간과 에어컨 마련, 2시간 이내 20분 휴식 보장. 노동자들이 폭염에서 살아남기 위해 요구한 것이었다.

가장 취약한 조건의 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구조는 겨울에도 반복됐다. 지난 9월 19일, 2020년 12월 한겨울 난방조차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이주노동자 속헹 씨의 유족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에 대한 2심 판결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원고 패소였던 1심을 취소하고, 국가가 유족에게 2,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속헹 씨의 죽음에 대해 ‘국가 책임’이 인정된 것이다. 속헹 씨의 죽음은 단순히 열악한 노동·주거환경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이주노동자가 사업주가 제공하는 부실한 숙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 현장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허가만 내주는 행정의 무책임, 사업주의 감시 아래 외출과 요구조차 통제되는 삶. 이러한 조건들이 이주노동자로 하여금 위험한 환경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그 구조 위에서 속헹 씨는 목숨을 잃었다. 

기후위기는 쉬이 ‘모두의 위기’로 이야기되곤 한다. 기후위기를 인권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건, 기후위기에 더 빨리 더 극심하게 삶이 흔들리는 이들의 자리에서 기후위기를 진단하는 일이다. 그 자리에서 ‘불평등’의 문제가 새롭게 보인다. 이미 에너지, 집, 먹거리처럼 삶을 떠받치는 기반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는 자리에서 위기가 재난이 되는 걸 우린 수없이 목격하고 있다.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도 마찬가지다. 이전까지는 그저 ‘인류’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진 기후위기의 진짜 주범은 소수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태 파괴와 생명 착취를 일삼고, 더 많이 생산하고 ‘가짜 쓸모’로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들어 더 많이 폐기하는 이 체제다. 그렇기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식 역시 이윤 논리가 아닌 권리를 원칙으로 짜여야 한다.

‘공공성’이 필요한 이유

기후위기가 모든 이들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적 권리를 위협하고 박탈하는 문제라면 기후위기는 ‘공공’의 문제로써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은 그와 거리가 멀다. 많은 경우, 정부가 내놓은 해법의 주체는 ‘기업’이다. 대표적으로는 에너지가 그렇다. 정부는 신속한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민간주도의 시장을 더욱 활짝 열어야한다는 관점 하에 발전사업과 판매사업의 겸업을 막던 전기사업법을 개정한 바 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전력거래소 밖에서 직접 전기를 확보해 거래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며, 전기는 공공적 기반이 아닌 새로운 투자상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편 국회에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산업단지 조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며 ‘규제 제로’의 내용이 담긴 특별법이 발의되어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지역균형발전은 사실상 명분일 뿐 핵심은 기업 유치를 위한 규제 완화와 전폭적인 지원에 있고, 재생에너지는 액세서리가 될 뿐이다. 기업을 중심에 두는 기후위기 대응은 누군가에겐 ‘삶의 위기’가 되기도 한다. 농지와 갯벌, 산지에 재생에너지 시설을 ‘빠르게’ 조성 및 확장하려는 과정에서 지역주민과 농민의 의사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아 삶이 위기로 내몰리는 이들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에너지 시장화의 흐름은 기후위기를 단지 ‘에너지 효율’이나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취급하기 때문에 어떤 권리가 위태롭고, 누구에게 무엇이 보장되어야 하는지 질문하기 어렵다. 에너지를 포함하여 먹거리, 집, 교통 등을 시장에서 사고 파는 ‘상품’이 아니라 모두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공공재’로 바라볼 때 비로소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가령 어떤 에너지 사용은 줄여야 하고 어떤 사용은 보장해야 하는지,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과정에 농민·노동자·지역주민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기후위기의 책임을 대기업 자본이 얼마나 어떻게 져야 하는지 등의 질문들이다.

이러한 질문들은 결국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공공성’을 세워야 하는지의 문제로 이어진다. 기후위기 시대의 공공성은 단순히 정부의 관리·감독을 확대하자는 고민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고 유지할지, 그 원칙과 책임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후위기를 명분으로 자본에 권한을 넘기는 방식을 멈추고, 에너지·토지·먹거리 체제를 생태적 한계 안에서 ‘모두의 권리’ 중심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에너지 계획, 농지와 갯벌을 투자처가 아니라 공동의 삶터이자 생태계로 보호하려는 노력, 이동권이 취약한 이들을 위한 안전한 교통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을 실행하고 보장하는 책임 있는 주체로 국가가 서도록, 이를 요구하고 압박하는 힘을 만들어가는 건 우리의 과제일 테다.

‘정의로운’ 전환

소수의 돈벌이를 위해 한정된 자원을 착취하고 많이 생산-소비-폐기하는 구조에 대해, 사회 곳곳에서 하나둘 전환이 시도되고 있다. 이 ‘전환’이라는 말이 실질을 갖기 위해선 ‘에너지와 먹거리, 토지와 생태계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권리의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령 공공이 앞장서는 재생에너지의 확대, 보다 정확하게는 생산과 분배를 계획하고 조정하라는 것은 기후위기를 만든 이윤 중심 에너지 체제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하다. 그저 자본에게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싼값에 몰아주는 데 그쳤던 공공의 역할을, 공동체의 생태적 지속성과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계획·조정자로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중요한 건 전환의 ‘방향’이다.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의 싸움은 그 흐름 위에 있다. 현재 온실가스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은 하나둘씩 중단되고 있고, 당장 코앞에 닥친 2025년 12월부터 2038년까지 발전소 총 40기를 폐쇄하는 흐름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어두컴컴한 노동 현장에서도 한국 곳곳을 밝힌 빛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던 노동자들은 기후위기와 함께 실업위기, 생존위기를 맞닥뜨리게 됐다. 노동자들은 ‘함께 살아남기’ 위해 폐쇄에 동의했지만, 문제는 정부 대책이 취업 교육 등 소극적인 대응에 머무른다는 점, 오히려 발전소 폐쇄를 이유로 인력을 충원하지 않으며 노동자들의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정부가 8천 명을 훌쩍 넘는 발전노동자의 생존을 방치하는 거다. ‘죽음의 발전소를 멈춰라’. 현재 용산의 대통령실 앞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 고 김충현대책위의 이야기기도 하다. 발전노동자들은 “석탄화력발전소는 폐쇄되어도 노동자의 삶은 폐쇄될 수 없다”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모두의 전환, 즉 ‘정의로운 전환’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공공재생에너지의 확대와 발전노동자들의 일자리전환을 동시에 보장하는 ‘공공재생에너지법’에 5만 1,431명이 뜻을 함께하며 국민동의청원이 성사됐다. 광범한 공감대를 확인한 공공재생에너지법은 2025년 12월 중으로 발의를 준비 중이다.

공공재생에너지운동은 결국 에너지 체제의 민주적 재편을 위한 투쟁이다. 에너지는 모든 구성원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필수재이자 공공재다. 그리고 에너지의 생산과 분배의 방식은 사회가 누구의 어떤 ‘권리’를 우선할 것인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에너지 전환의 과정에서 노동자, 농민, 지역 주민, 에너지 빈곤층이 의사결정의 당사자로 참여해야 한다는 요구는 단지 ‘참여 보장’에 그치지 않고 ‘권리 보장’의 방식 자체를 새롭게 만들자는 요구다.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를 바꾸는 과정은 그에 얽혀온 불평등 구조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 노동과 지역의 삶을 지키는 전환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답하는 과정이기도 할 테다.

기후위기, 인간의 권리란

지난 9월 11일,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의 1심 판결이 있었다. 법원은 국토교통부가 전북 군산 수라갯벌에 추진하던 새만금신공항의 건설 기본계획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지난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의 경험 위에서 가능했다. 2024년 12월 29일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 드러난 조류충돌 위험과 안전 부실은, 단지 기술적 실수가 아니라 철새 도래지를 무시한 개발 결정으로 새들의 죽음이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새만금신공항 부지 역시 갯벌, 저수지, 조류서식지와 경작지가 포개진 공간이며, 국토부의 환경영향평가조차 연 9.5회에서 최대 45.9회의 충돌 가능성을 명시하고 있었다. 법원은 기본계획 취소 판결을 내리며 ‘항공운항의 안전성’과 ‘생명권’을 강조했다. 법원이 말한 ‘생명권’은 보다 ‘인간’에 초점 맞춰져 있지만, 새도 사람도 죽음으로 내몬 개발 중심의 사회 구조에서 생명권의 ‘연결’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조류서식지 위에 공항을 지으면서 무너뜨린 바로 그 생태계는,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지구야 미안해, 인간이 잘못했어’라는 성찰에서 우리는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이미 기후위기는 종을 뛰어넘어 생명들의 권리가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땅, 바람, 햇빛 등의 자원이 공존과 지속가능성 위에서 공유되는 세상이 기후위기를 넘어선 우리의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기후위기 시대의 인권은 인간이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넘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고민하고 책임질 권리와 분리될 수 없다. 지금 여기의 인권의 질문은 ‘함께 살아갈 권리’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오랜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기후위기는 ‘새로운’ 위기가 아니다. 분명 폭염·폭우·폭설·가뭄이 점점 더 잦고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새로운 ‘조건’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먼저, 더 가혹하게 무너지는 삶의 자리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위험한 작업 조건을 거스를 수 없는 이들,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집이 안전하지 않아 거리로 나온 이들, 차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위기 속에서 삶을 살아내던 얼굴들이다. 기후위기는 이 ‘오랜’ 위기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인권으로 기후위기를 말하는 것 또한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찾는 일이 아닐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싸워온 권리의 언어를, 기후위기라는 조건 속에서 다시 꺼내 쓰는 일. 그 과정에서 기후위기를 핑계 삼아 더 많은 이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정책과 기후위기 해결을 빌미로 이윤을 확대하려는 자본의 움직임을 정확히 포착하여 바로잡는 일. ‘기후정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말이 단지 감정의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구체적인 요구로 만들어내는 길에 동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내가 속한 기후정의동맹에서 주목하는 건 공공성을 세워내는 투쟁들이다. 공공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투쟁부터 공공주거, 교통, 의료, 돌봄 등 곳곳에서 고민과 실천이 차곡차곡 쌓여나가는 중이다. 그 길목에서 만나 다양한 권리의 얼굴들과 새로운 세계로 걸어가자.

월간 <복지동향> 2025년 12월호(제3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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