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1-01   69438

[편집인의 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25년, 최후의 안전망은 작동하고 있는가?

김성욱ㅣ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첫발을 내디뎠다. 생활보호제도의 시혜적 패러다임을 넘어, 수급자격이 인정된 자에게 급여청구권을 법적으로 보장한 이 제도는 한국 복지국가 역사의 분수령이었다. 물론 이 ‘권리’가 모든 빈곤 국민에게 최저생활을 당연히 보장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엄밀히 말해 수급요건을 충족한 자가 급여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는 것에 가깝다. 그럼에도 국가의 시혜가 아닌 법적 권리로서 급여를 수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전 제도와의 단절은 분명했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흘렀다. 이번 기획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저출생·고령화,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 새로운 형태의 빈곤 출현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다음 25년을 준비하기 위한 성찰의 자리다.

이번 기획에서 준비한 다섯 편의 글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서로 다른 다섯 개의 시선을 담고 있다. 먼저 첫 번째 글에서 정창률 교수는 기준중위소득의 반복적 과소 인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는 기준중위소득이 “줄자”의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6년간 기본증가율이 원칙대로 적용된 해가 단 한 차례(2023년)뿐이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원칙대로 산정했다면 2026년 기준중위소득은 760만 원이어야 했으나, 실제 결정액은 649만 원에 그쳐 110만 원 이상의 격차가 발생했다. 과거 중위소득과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추가증가율마저 기본증가율의 반복적 축소로 그 효과가 완전히 상쇄되었다는 분석은 충격적이다.

두 번째 글에서 남찬섭 교수는 빈곤선의 상대적 수준 하락이 절대빈곤 개념의 최저생계비 시절부터 지속되어 온 구조적 문제임을 밝힌다. 그는 이 문제의 근원이 산정 방식이 아닌 ‘정치적 과정’에 있다고 진단하며,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거버넌스 개선을 제안한다. 구체적으로 회의 녹취록 공개, 대외비 분류 기준 명확화, 그리고 ‘결정예고제’ 도입을 통해 시민들이 결정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세 번째 글에서 김태완 박사는 맞춤형 급여 체계 10년의 성과와 쟁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비수급 빈곤층이 2014년 118만 명에서 2021년 66만 명으로 감소한 것은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폐지의 성과다. 그러나 그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지출 보전’ 제도임에도 ‘소득 지원’ 제도로 인식되는 미스매치, 생계급여 중심의 급여적정성 논의의 한계, 그리고 자활성공률 하락(2023년 24.8% → 2024년 18.7%)으로 드러나는 탈수급 정책의 과제를 제기한다.

네 번째 글에서 박영아 변호사는 부양의무자기준이 민법상 부양의무와도 괴리되고, 근대법의 자기책임 원칙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전근대적 규정임을 논증한다. 특히 생계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기준이 완화되면서 소득인정액 선정기준이 더 낮은 생계급여 수급자가 의료급여 수급자보다 많아지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했음을 지적한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선언하면서도 실제로는 ‘구멍 내기’에 그친 정책의 자기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다섯 번째 글에서 소준철 교수는 25년간의 탈수급 지원 정책이 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는지를 근본적으로 성찰한다. 예산과 참여자가 늘어나는데 탈수급률은 떨어지는 역설의 원인을 ‘제도의 과신’에서 찾는다. 제도는 근로능력을 분류하고 의욕을 측정할 수 있었지만, 수십 년간 축적된 모멸감과 공포, 관계의 단절은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제도의 힘에는 ‘경계’가 있으며, 관계·신뢰·시간·존엄과 같은 제도 너머의 영역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다섯 편의 글은 공통적으로 현행 제도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그 진단과 처방에서 미묘한 긴장을 보여주며 교차하고 충돌한다. 먼저 기준중위소득 산정을 둘러싼 쟁점이 있다. 정창률 교수는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위소득 인상률을 기준중위소득 산정에 원칙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김태완 박사는 기준중위소득이 법에서 정한 ‘가구 경상소득 중간값’에 기초해야 하며, 소득분배 비교를 위해 개인 단위로 환산된 통계청의 중위소득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기준중위소득 산정 방식 개편 논의에서 이러한 쟁점들이 함께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급여수준에 대한 평가에서도 온도 차이가 감지된다. 정창률·남찬섭 교수가 빈곤선의 상대적 수준 하락과 과소 인상 문제를 강조하는 반면, 김태완 박사는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합산한 실질 급여 수준의 변화를 언급하며, 비수급 빈곤층과의 형평성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기한다. 사각지대 해소와 급여 적정성 제고라는 두 과제 사이에서 정책적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제도 개선의 방향에서도 관점의 차이가 드러난다. 정창률·남찬섭·김태완·박영아의 글이 기준중위소득 산정, 거버넌스, 부양의무자기준 등 ‘제도적·기술적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소준철 교수는 제도의 정교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제도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대립이라기보다 보완적 시각으로, 제도 개선과 함께 제도 너머의 실천을 병행해야 함을 시사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한국 복지국가의 기초를 이루는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기획을 통해 확인한 것처럼,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기준중위소득 산정, 거버넌스 구조, 급여 체계, 부양의무자기준, 탈수급 지원 정책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청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다섯 편의 글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문제의식이다. 제도가 법의 취지대로, 원칙대로 운영되고 있는가? 결정 과정은 민주적이고 투명한가? 제도의 대상이 되는 시민들의 존엄은 존중받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단순히 예산의 증액이나 기술적 개선만으로는 찾을 수 없다.

25주년이라는 시점에서 제도의 성과를 자축하기보다, 축적된 문제들을 냉철히 직시하고 근본적인 개혁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이 기획의 취지였다. 이 글들이 학계와 정책 현장, 그리고 시민사회의 생산적인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월간 <복지동향> 2026년 1월호(제3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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