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2-01   9754

[복지칼럼] K의 전성시대, K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

이은주 | 연금행동 정책위원

바야흐로 K의 전성시대다. K-팝, 컬쳐, 뷰티, 방산, 최근에는 K-패스까지, K로 시작되는 것은 사회 전반에 걸쳐 있고, 소위 ‘국뽕’이 차오르게 한다. 코스피도 5천을 돌파했다. 내란의 결과는 흔들리는 사법적 판단 속에 여전히 불안하지만, 혼돈의 시기 이후 상전벽해가 이루어진 것과 같은 변화가 휘몰아치고 있다. 하지만 korea의 약자인 K는 또 다른 K, 즉 양 갈래로 갈라지는 양극화의 모습이기도 하다.

양극화라는 단어는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일상 속에서 경험하기는 어렵다. 대표적인 양극화로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차이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고도화된 이 사회는 고소득자라고 해도 같은 고소득자가 아니다. 같은 계층이라고 믿고 싶은 범주 안에서도 자산의 규모에 따라 촘촘히 계급이 나누어져 있다. AI의 발전이 고소득자인 의사, 변호사들의 직업을 위협할 것인데 이들 중에서도 자본이 부족한 고소득자에게 먼저 영향을 미칠 거란다. 그들은 대출을 많이 일으켜 삶이 어려운 사람들이란다. 대출을 일으키는 것도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능력이 될 수 있다. 비정규직은 대출조차도 어려운데, 대출받은 부자를 대출받지 못하는 가난뱅이가 위로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양극화라는 단어 안에서 고소득자와 저소득자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다. 양단의 격차는 너무 커져서 다른 세상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드러내지 않아도 끊임없이 비교를 통해 자기 층위를 가늠해 보고, 말하지 않아도 자산의 규모를 중심으로 한 계급분산은 K 사회의 암묵적인 지표가 되었다.

K의 아래쪽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최근 ‘가난의 명세서(김나연, 2025)’라는 책을 읽었다. 할부와 일시불로 나누어 카드로 생활비를 당겨 생활할 수밖에 없는 20대의 고군분투 가난 설명서이다. 그 안에는 오키나와로 스노클링하러 가기 위해 작가가 이용한 저가항공 비행기 값도 할부로 들어 있었고, 결혼식을 앞둔 친구를 만났지만 8천 원 범위에서 축하하는 말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비루함도 들어 있었다. 가난하면 여행조차 꿈꿀 수 없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가난하다’고 하는 사람의 일상 모습은 달랐다.

K의 시대는 지금까지 경험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한 주위의 세상이 생각의 범위를 벗어난 일투성이다. ‘언러닝(unlearning)’, 미래를 예측하는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배운 것을 다 잊고 새롭게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경험은 내 말의 믿을만한 근거였다. ‘내가 해봐서 다 안다’라는 대통령도 있었다. 그 대통령 덕분에 청년들은 삽을 들고 강바닥을 파러 나가라고 쫓겼으나, 그조차 포크레인을 가진 자본가들에게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경험은 커다란 다양성 속의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경험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예단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시절이라는 말이다. 이해하려면 겸손함으로 경청하고,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하지만 지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끝까지 위로해 주는 것도 AI고, AI가 풀이해 주는 사주도 정확해서 매뉴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이 시절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준다(그것조차도 유료로 써야 잘 대답해 준단다.) 이런 식이라면 K는 ‘(~라) 카더라’의 시작일 수 있다. 경험을 나누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처럼 오해하고, ‘카더라’로 겸손하게 정리하면 된다.

오해와 불신의 시대에 K-복지국가는 어디로 가야 할까? 정부가 국민의 일상까지 챙기려고 나서다 보니 제도는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다. 정부에서 하는 일은 많은데 막상 정부 도움으로 살만하다는 얘기는 듣기가 어렵다. 제도를 만드는 건 규칙과 기준을 설정하는 일이라 행정체계 안에 매뉴얼이 중심을 잡고 있고, 그 주변에는 고도화와 극단의 효율성이 들어선다. 제도가 도입될 때마다 기준에 따라 매뉴얼로 시민의 삶을 재단하다 보니 상처받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다행히 정부가 시민을 위로하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심리상담 바우처가 도처에 깔려 있고, 지방자치단체마다 긴급 돌봄을 통해 삶의 곳곳을 다 책임질 것처럼 외친다. 찾아보면 다 나온다. 정보를 취합하는 것은 AI의 특기다. 다만 모인 정보가 힘든 삶을 다르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본질은 해결하지 못하고 위로가 넘치며, 있는 척, 하는 척하는 흔적들만 남아 있다.

이 정도의 제도가 갖춰져 있다면 복지국가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왜 삶은 더 팍팍해지고, 복지국가라서 좋다는 말은 안 나올까. 복지국가의 역할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는 분리되고 ‘어려움’은 정부에게 요청하면 되는 복지국가의 시절인 것 같은데, K의 아래쪽으로 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매뉴얼로 해결되지 않는다. 법을 만든다고 제도가 완성된 것이 아니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조항만 세분화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일상의 돌봄이 예측불허의 경험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한의 다양성 혹은 난장판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조건에 사람을 맞추는 일은 계속 어긋날 수밖에 없다. 조건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움부터 받을 수 있는 절차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은 아닐까.

시민들이 국무회의를 수시로 볼 수 있다고 해서, 대통령이 호통을 치고 국무위원들이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대화가 오가는 것을 본다고 해서 정책효능감이 커지지 않는다. 마음챙김까지 정부가 책임지겠다는데 구호만 공허할 뿐이다. 실용적이고 행정가 출신의 대통령 덕분에 업무처리는 빨라졌지만, 근본을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 문제해결만 쫓다 보면 자화자찬의 성과 뒤에 상처받은 사람들은 계속 남기 마련이다. 납작해진 규칙을 만들고 할 일 다했다고 손을 놓을 게 아니라, 섬세한 살핌과 돌봄을 확장하며 공유하고 나누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월간<복지동향>2026년 2월호(제3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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