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실태조사 결과 및 제도개선 방안1)
김선 |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임연구원
들어가며
2016년 7월 현재, 6회 이상 보험료 체납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제한받고 있는 지역가입자는 134만 7천 세대, 사업장은 3만 7천 개소에 달한다. 지역가입자 전체 세대 대비 18.3%, 건강보험 적용 전체 사업장 대비 2.7%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지만 연평균 체납액은 1,030억 원으로서, 2015년 보험료 부과액 44조 3,298억 원 대비 0.2%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청산되지 않고 남아 체납자들에게는 고통을, 제도적으로는 비효율을 낳고 있는 누적 체납의 규모는 상당하지만 매년 새로이 발생하는 체납이 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체납 현황에 관한 기존 통계는 모두 ‘누적’ 체납액만을 제시함으로써 매년 새로이 발생하는 체납액 규모에 대하여 과장되게 인식하게 하고 있다. 이는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체납자에 대한 정부 및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과도한 ‘처벌’을 정당시하게 하는 한편, 체납자의 권리 침해를 경시하도록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기존 통계에서는 체납자 규모가 급여제한 기준에 맞춰 산출되고 있기 때문에, 2008년 9월 이전에는 3회 이상, 이후에는 6회 이상 체납자 현황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6회 미만 체납한 경우에도 당사자는 연체금 부과, 독촉, 체납처분 등 다양한 제재를 받게 되지만, 그 규모에 관해서는 통계조차 없다.
사용자가 납부의무를 지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자발적으로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지역가입자에서 체납 문제는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전체 지역가입자 규모를 고려하면, 2003년 이래 지역가입자 세대의 18~27%는 급여제한 기준 이상 체납 세대였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가운데 ‘생계형’ 체납과 ‘장기’ 체납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건강보험 체납의 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제도적 과제임을 드러낸다. 2016년 7월 기준, 월 보험료 5만 원 이하 ‘생계형’ 체납 세대는 체납 세대의 67.4%, 2년 이상 ‘장기’ 체납 세대는 체납 세대의 53.4%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적으로 ‘생계형’이란 ‘살아갈 방도를 마련하기 위해’ 그렇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관행적으로는 ‘월 보험료 5만 원 이하인 저소득·차상위계층’으로 정의해왔지만, 기준에 관한 사회적 논의나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 체납자’란 법적으로 ‘납부의무자로서 건강보험료를 납부기한까지 납부하지 아니한 자’를 의미하지만, 제도적 관리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한 두 번이 아닌 ‘장기’ 체납자이며, 이 때 ‘장기’의 기준 역시 제도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이렇듯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라는 명명은 그 자체로 모호하지만, 절대적 정의가 있지 않다는 점은 그것이 실재하는 사회적, 제도적 ‘문제’라는 점을 반증한다.
한편 국민건강보험 징수율은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2010년 이후로는 징수율 99%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직장가입자의 높은 징수율,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부과액이 전체 보험료 부과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증가, 지역가입자 징수율의 지속적인 증가에 따른 결과다. 이는 사회보험 방식의 건강보장제도를 운영하는 다른 나라의 보험료 징수율이나 한국의 다른 사회보험의 징수율과 비교했을 때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매년 새로이 발생하는 체납의 규모가 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과도한 체납관리 제도와 관련 행정으로 인해 가입자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생존이 위협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관련 실태 및 제도에 대한 심도 깊은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건강보험 제도는 질병과 상해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시민의 건강과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이다. 보험 방식을 택함으로써 ‘기여에 따른 보장’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보장제도로서 ‘전 국민 의무가입’과 ‘능력에 따른 기여 및 필요에 따른 수급’이라는 원칙 또한 있다. 그렇다면 보험료를 납부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원칙적으로 보험료를 면제 또는 지원받거나, 공공부조제도의 대상이 되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는 국민건강보험과 의료급여로 분절된 한국 건강보장제도의 대표적 사각지대이자, 건강보장제도로서 국민건강보험이 갖는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의 보험료 체납 관리제도
국민건강보험의 적용과 보험료 부과 측면의 불평형성은 그 자체로 보험료 체납의 구조적 배경이 되고 있다. 먼저 보험 적용 측면에서, 공공부조 제도인 의료급여는 소득 및 재산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자가 ‘신청’해야 수급권을 취득할 수 있고, 수급권자로 ‘선정’되기 전까지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따라서 절대빈곤층이라 하더라도 건강보험료가 부과될 수 있다.
보험료 부과 측면에서, 직장가입자의 경우 개인을 기준으로 보험료가 산정되고 피부양자는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으며 사용자가 납부의무를 지는 것과 달리,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세대 단위로 산정되며 그 가입자가 속한 세대의 지역가입자 전원 (미성년자 포함)이 연대하여 부담과 납부의무를 진다. 또한 소득 (보수월액과 소득월액)을 기준으로 보험료가 산정되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지역가입자는 소득, 생활수준, 재산, 자동차를 기준으로 보험료가 산정된다. 이 때 ‘생활수준’에서 성별과 연령이 고려되기 때문에, 소득과 재산이 전혀 없는 20세 미만 미성년자 1인 가구라 하더라도 소정의 보험료가 부과된다.
경제적 능력을 기준으로 ‘누진적’ 부담을 원칙으로 하는 조세와 달리, 국민건강보험료는 ‘비례적’ 부담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급여 제도의 잔여적·최소주의적 운영과 불합리한 지역가입자 보험료 부과 체계는 실제 보험료 부담의 ‘역진성’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체납 발생 ‘이후’ 다양한 관리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크게 체납자를 ‘지원’하는 제도와 ‘제재’하는 제도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체납자 ‘지원’ 제도로는, 체납보험료를 납부하기 어려운 체납자의 사정을 고려하여 낼 수 있도록 조정해 주는 분할납부 제도와, 낼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아예 탕감해 주는 결손처분 제도가 있다. 체납자 ‘제재’ 제도는 체납자에게 ‘처벌’이나 ‘금지’를 행하는 제도로, 연체금 부과, 독촉, 체납처분, 급여제한과 부당이득 징수 등이 있다. 납부자와의 ‘형평’을 이유로, 체납자 지원 제도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제한적으로만 운영하고 있는 반면, 체납자 제재 제도는 매우 강력하게 운영하고 있다. 한국 사회보장제도의 행정편의주의적 성격은 국민건강보험 체납 관리제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며, 특히 체납자 지원 제도에서는 ‘신청주의’가 두드러진다.
한편 체납 발생 ‘이전’에 보험료를 납부하기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보험료를 면제·경감·지원해주는 제도나 납입고지 및 납부의 유예 제도는 미흡하여, 체납 발생 및 장기체납을 예방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이 가장 먼저 보호해야할 대상인 지역가입자 세대 미성년자에게 보험료 연대납부 의무를 지우거나, 미성년자 단독세대로서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한 미성년자에게조차 보험료를 부과하고 체납 보험료를 독촉하는 현행 제도는 가장 시급하게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건강보험 체납 현황에 관한 양적조사: 건강보험자료 분석
건강보험 6회 이상 체납자료, 이에 포함된 개인(대표 납부의무자)의 가입자격 정보, 이들의 자격변동이력 등을 필요에 따라 연계하여 통계를 산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건강보험 자료 분석 결과
장기체납자 규모는 연간 140~150만 세대 내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현재의 가입자격이 지역가입자 상태인 경우만을 포함한 것이다. 하지만 자격상태가 바뀌어도 예전의 체납은 여전히 유효하다. 체납 발생 당시에는 모두 지역가입자였지만, 예컨대 2015년 시점의 가입 자격을 살펴보면 지역세대주인 경우는 61%에 불과하며 20%는 직장 가입자, 10%는 직장 피부양자, 5%는 지역세대원 자격이다. 이들을 모두 포함하면 실제로 장기체납과 관련된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가구는 연간 2백만 세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대원 수를 적용하면 약 4백만 명의 개인들이 장기체납 문제에 연루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15년 기준 누적 체납액은 약 3조 457억 원에 달한다.
2015년 기준, 장기체납자들은 평균 36.3회, 중위수 기준 24회의 체납을 경험했으며 가구 당 누적 체납액은 평균 140만 원, 중위수 기준 약 90만 원 수준이다. 이를 체납된 월 보험료 환산하면 평균 4만 7천 원, 중위수 기준 3만 1천 원에 불과하다. 이는 상대적으로 소액의 보험료가 잦은 빈도로 체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장기체납자들의 월 평균 보험료에 따라 체납 수준을 확인해보면, 우선 전체 체납자 중 월 5만 원 미만 보험료를 납부하는 세대가 약 57%에 달했다. 월 보험료가 낮아질수록 체납 횟수는 많아지고 체납 총액과 월 평균 체납액은 작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현재의 소득 능력이 낮은 계층이 과거에도 소득 능력이 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체납자들 중에는 35~54세 중장년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20세 미만의 미성년자도 4천여 명 이상, 20~24세 청년도 약 4만 2천 명 존재한다. 이는 독립, 부모의 사망 혹은 이혼 등 가족 구조의 변동이 존재하는 가운데 세대의 보험료 연대 납부 의무로 인해 부모 혹은 보호자의 납부 책임이 자녀에게 이전된 것임을 짐작케 한다. 현재 25세 미만 대표 납부의무자 약 4만 7천 명의 1/4에서 체납이 미성년기에 시작되었으며 10세 미만에 시작된 경우도 약 3%에 달했다.
장기체납자들의 연령별 월 보험료 분포를 확인해보면, 전체 집단 및 중장년층에서는 50~60% 정도가 월 보험료 5만 원 미만의 ‘생계형’ 체납자에 속했으나, 25세 미만 미성년 및 청년층에서는 75~85%가 월 보험료 5만 원 미만의 ‘생계형’ 체납, 20세 미만 미성년 집단에서는 50%가 월 보험료 1만 원 미만의 저소득층에 속했다.
2012년부터 장기체납이 시작된 이들만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일단 체납이 시작되어 당해 연도에 중단되는 경우는 26%에 불과했다. 이렇게 첫 해에 체납이 중단되는 경우, 다음 해에 체납을 청산하는 확률이 91%에 달했지만, 체납이 해를 넘어서도 반복되는 경우, 청산의 가능성은 점차 낮아졌다. 실제로 2012년에 장기체납이 시작된 이들 중 27%는 2015년 말까지도 체납이 반복되고 있었고, 38%는 2015년 말까지 체납문제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2012년 월 보험료 수준에 따라 살펴보면, 2015년 말까지 체납을 지속하거나 청산하지 못하는 비율은 월 보험료 2~5만 원의 차상위 계층에서 높았다. 월 보험료 5만 원 이상의 계층은 체납이 초기에 중단되는 비율도 높고, 이를 청산하는 비율도 높았다.
장기체납자들의 자격변동 이력을 추적한 결과, 자격 변동이 잦고 짧은 기간 동안 자격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가입자로의 전환도 빈번했지만, 전체적인 구성비나 유지기간은 매우 짧아서, 불안정한 노동시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잦은 자격변동은 전입, 전출에 따른 주거 변화, 가족 구성의 변화, 노동시장의 빈번한 진입과 이탈 등 삶의 기반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정책적 제안
우선 체납의 성격에 따라 개입의 초점을 구분해야 한다. 현재 체납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초기 개입을 통해 빨리 체납을 중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만성화가 되면 체납의 중단과 청산이 점차 어려워짐을 확인했다. 그리고 현재 체납이 지속되지 않더라도 과거 체납 이력을 장기간 청산하지 못한 사례들에 대해서는 결손 처분이나 금융복지서비스의 연계를 통해 과감한 청산절차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가입이력 상 소득능력이 꾸준히 낮았고 불안정 노동시장의 출입을 반복하면서 장기간, 소액 체납을 누적해온 이들의 경우,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체납이 청산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이들의 체납 이력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당사자들에게는 고통만 가중시킬 뿐, 건강보험공단의 관리징수 측면에서도 비효율만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과감한 청산이 필요하다.
미성년자, 미성년자에서 성인으로 이행하는 청년기의 체납 문제에 특별히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가족의 납부 의무를 계승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 시점에서 의료이용의 필요가 적기 때문에 급여제한 등의 제재에 상대적으로 둔감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 건강보험은 단순히 의료보장 수단의 의미를 넘어섰다. 보험료 납부 증명자료는 장학금 신청에서부터 주거자금 대출에 이르기까지 신용과 소득능력 평가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의료이용 문제가 아니더라도 금융생활에 상당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미성년, 청년 계층의 현재 보험료 등급은 매우 낮은 편으로, 이들이 자력으로 단기간에 체납을 청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공정한 출발’이라는 가치에 근거하여, 특별히 이들 미성년, 청년층의 체납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 체납과 관련된 통계를 주기적으로 생산하고 이를 모니터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나 국정감사 등의 요구에 의해 부정기적으로 체납 자료가 생성되었고, 분석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지역가입자’에 한정하여 통계량을 산출하였다. 하지만 반복해서 지적했듯, 자격이 변동된다고 해서 체납의 이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가입자격과 무관하게 체납자 전체에 대해서 체납의 규모와 청산의 경과를 모니터하고 그 자료를 주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또한 피고용인들의 경우 사업주가 건강보험을 체납해도 의료이용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건강보험 공단의 설명이지만, 일단 건강보험이 체납되면 대개 국민연금이 함께 체납되고, 신용대출 같은 다른 금융생활에서 제약을 받게 된다. 또한 법인사업장이 아닌 개인사업장의 경우 사용자와 그 피부양자도 급여제한 대상이 되는데, 사업장이 보험료를 체납했다는 것은 대개 부도 및 파산, 폐업한 경우로, 이때 사용자는 지역가입자로서 소득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채무를 안게 된 상황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직장과 지역가입자 전체를 포괄하고, 또 과거 체납의 발생시점 뿐 아니라 현재의 자격 상태 모두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체납에 관한 통계가 산출되어야 한다.
건강보험 체납 현황에 관한 질적조사: 면담자료 분석
건강보험료 체납에 대한 기존 연구의 대부분은 체납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본 연구는 건강보험제도의 본질은 질병이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는 ‘사회보장제도’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주로 생계형 체납이 발생하고 지속되는 맥락과 제도적 결함을 확인하고자 했다.
우리는 우선 장기체납자들이 건강과 건강보험제도, 나아가 사회보장제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탐색했다. 전반적으로 체납자들의 건강보험에 대한 이해는 매우 낮았다. 체납고지서를 받기 전까지는 건강보험제도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경우도 있었고, 그저 세금의 한 종류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높은 본인부담금 때문에 건강보험이 있어도 큰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러다보니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민간의료보험에 의지하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건강보험 뿐 아니라 사회보장제도 전반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 낮았다. 한국의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신청주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에 대한 지식과 이해 부족은 기초생활보장제도나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강보험 체납은 난데없는 빚더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건강보험료 체납의 발생과 관련해서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주로 저소득층이며 불안정 고용에 종사하는 지역가입자들의 만연한 취약성, 둘째, 여기에 가중된 실직, 파산, 건강문제 등의 위기 사건들, 셋째, 이러한 취약성과 위기 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건강보험제도 요인이 그것이다. 현재의 건강보험제도는 안정된 고용과 일정한 월 소득, 또한 안정된 가족 구성과 주거를 전제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충족하지 못하거나 일시적으로 일탈한 ‘예외적’ 시민들에 대한 보호는 충분치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건강보험 체납의 발생을 ‘제도적 과실’이라고 명명했다.
여러 가지 위기 상황들이 중첩되면서 체납이 발생했다고 해도, 이를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면 다시 ‘정상’ 가입자로 복귀할 수 있지만 이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들은 체납이 발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중층적 취약성 속에서 갚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미 체납상태인데 의료비 지출이나 사기 피해 등 또 다른 부담이 가중된 경우도 있었고,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 때문에 체납 보험료는커녕 현재의 보험료를 납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도 있었다. 가족과 같은 일차적 지지자원 또한 취약한 것이 이들의 특징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 것은 건강보험제도였다. 이렇게 중층적 취약성에 처해있고 정보문해력이나 제도 접근성이 높지 않은 이들에게 친화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적극적인 추심자로서 체납자들을 압박하고 오히려 재기를 어렵게 만들기까지 했다. 대표적인 것이 거침없는 통장압류였다. 통장이 압류되면 제대로 된 일자리에 취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상적인 경제생활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는 생계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체납 상환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기존의 체납 외에 새로운 체납이 부가될 가능성도 컸다. 또 다른 문제는 과도한 연체금과 경직된 분할납부 제도였다. 특히 분할납부 횟수는 현재 최대 24회까지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당장 식비나 가스비도 부족한 이들에게는 이조차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 되기도 했다. 이해 비해 결손처분 절차는 매우 까다로우며, 지침에 비해서도 훨씬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건강보험공단은 사금융 못지않게 가혹한 방식으로 추심자 역할에 충실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갚고 싶어도 갚을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를 ‘제도적 방치’라고 해석했다.
이렇게 건강보험이 체납되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우선 통장압류에서 비롯된 ‘정상적인 사회생활의 어려움’이 심각했고, 미성년자들에게 부과된 연대납부의무는 이들의 인생을 출발부터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또한 체납 상태 그 자체, 체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존엄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보험료조차 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 어려운 상황을 이해해주기는커녕 도덕적 해이에 빠진 범죄자처럼 취급하는 건강보험 담당직원에 대한 분노와 모욕감은 상당했다. 특히 도움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또 다른 오명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수치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건강보험 체납 이후에는 의료이용의 위축도 나타났다. 체납 이전부터 본인부담금 때문에 의료이용을 기피했던 이들은, 급여제한이 되었든 아니든 스스로 의료이용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특성으로부터 우리는 체납의 결과는 결국 ‘제도적 배제’라고 요약할 수 있었다.
불안정 노동시장과 사회 불평등의 심화, 급속한 가족의 해체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건강보험제도가 운영된다면 체납문제는 앞으로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연구에 참여했던 장기체납자들은 비록 각자의 사연이 모두 달랐지만, 우리 사회에 항상 존재해왔던 취약계층의 일부이며 앞으로 이러한 다층적 취약성에 직면한 이들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단순히 빈곤만이 문제가 아니라, 고용과 주거의 불안정, 가족의 해체와 건강문제, 그리고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과 정보접근성, 대응 능력의 취약성이 공존한다. ‘표준 노동자’, ‘표준 가족’, ‘정보능력을 갖춘 표준 시민’에 맞춰 구성된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이들을 예외적 일탈자로 간주하여 방치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건강보험제도는 도구적 합리성과 효율성 뿐 아니라, 사회보장제도 본연의 가치인 사회구성원들의 기본권 보장과 인간안보 (human security)에 더욱 초점을 두어야 한다. 건강보험이 경제적 위험, 건강 위험에 빠진 이들을 구제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아니라, 이들의 건강할 기회와 존엄을 손상시키는 제도로 작동한다면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건강보험료 체납 문제와 관리제도
사회보험 방식의 건강보장제도를 운영하는 국가에서 보험료 체납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회보험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대만의 전민건강보험과 일본의 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체납 문제가 상존하고 있다.
한국 국민건강보험의 징수율은 대만이나 일본 건강보험의 징수율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반면 보험료를 납부하기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는 상대적으로 미흡하여, 대만이나 일본과 같이 취약계층이나 체납자가 보험료를 ‘낼 수 있게’ 하기 보다는 도리어 ‘낼 수 없게’ 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대만과 일본의 경우, 다양한 보험료 경감 및 지원제도를 통해 과중한 보험료 부담을 경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체납자가 급여제한으로 인한 의료보장의 사각지대로 내몰리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체납자로 하여금 체납사실을 조기에 알 수 있게 하는 체계를 갖추고, 다양한 지원을 통해 장기체납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과 비교할 때 보험재정의 정부부담 비중이 높은 점, 중앙 혹은 지방 정부가 직접 보험자를 맡아 체납자의 소득 및 재산 상황 파악 등 종합적 ‘사례관리’가 가능한 점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편 최근 대만 전민건강보험이 다양한 체납자 지원에도 불구하고 장기체납 상태로 급여가 제한된 4만 2천 명에 대하여 급여제한을 전면 해지한 조치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해야할 공적 건강보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보험자와 정부의 역할에 대하여 다시 돌아보게 하는 사례이다.
제도개선 방안
첫째, 체납문제의 체계적 관리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 국민건강보험 체납 관련 통계를 매년 생산하여 공개함으로써 체납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과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촉진하고, 체납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의 성과를 모니터링하고 평가한다.
–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사항의 하나로 보험료 체납 문제에 관한 사항을 추가하고, 체납 및 결손처분과 관련된 정책과 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지속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 보건복지부 산하에 ‘건강보장시민위원회(가칭)’를 신설하여, 보험료 체납 문제를 포함, 국민건강보험 운영과정에서 가입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권리침해 사례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며 제도개선 방안을 제시하도록 한다.
–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직 내 ‘가입자권리보호실(가칭)’을 신설하여, 건강보험 행정처분 등 건강보험제도 운영으로 인한 가입자의 권리침해 민원 업무 및 가입자 권리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업무를 담당하도록 한다.
둘째, 기존 체납자 및 체납보험료 감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미성년자에 대한 보험료 납부의무를 면제하고, 청년 및 임산부에 대한 보험료 납부의무를 면제 또는 경감한다.
– 의료급여 수급권자, 건강보험 차상위 본인부담 경감대상자의 체납보험료 납부의무를 면제한다.
– 적극적인 체납자 지원 및 체납처분에도 불구하고 체납기간이 3년 이상 경과된 장기체납자의 체납보험료에 대해서는 매월 결손처분을 시행한다.
– 의료급여 수급권자 기준 중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함으로써 수급권자 규모를 확대한다.
셋째, 체납자 발생 및 장기체납을 억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지역가입자 세대에 대한 소득, 생활수준 및 경제활동 참가율, 재산, 자동차에 근거한 보험료 부과체계를, 지역가입자 세대의 실제 부담능력을 반영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
– 보험료 100%, 70% 감면 규정을 신설하고, 저소득·차상위계층에 대한 감면을 확대한다.
– 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보험료 감면 확대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생계형 체납자의 체납보험료 및 의료이용 지원을 위해, 별도의 기금(재원: 복권기금, 국민건강증진기금 중 담뱃세, 주류세 중 일부)을 국민건강보험공단 또는 한국의료지원재단에 설치·운영한다.
넷째, 과도한 체납처분으로 인한 체납자의 권리침해를 억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국세징수법에 따른 압류금지예금(개인별 잔액 150만원 미만)에 대한 압류를 금지한다.
– 보험료 6회 이상 체납자에 대한 급여제한 제도를 전면 폐지한다.
나오며: 근본적 해결방안
건강보장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제안한다. 단기적으로 사회보험방식을 유지한 상태에서 보험료 부담을 누진화(소득재분배 기능 강화)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핵심 미션을 ‘징수율 제고’에서 ‘가입자의 수급권 보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조세방식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의료이용 시점의 비용부담을 없애고, 다른 공적 제도들과의 통합적 연계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1) 본 연구는 아름다운재단의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 지원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월간 <복지동향> 2017년 2월호(제2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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