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치지 않는 가자의 눈물
팔레스타인 현지 리포트
글·사진 김재명<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
이집트에 맞닿은 라파 국경통과소를 넘어 가자(Gaza)로 들어서자 곳곳에서 매스꺼운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에서 비롯된 학살과 파괴의 흔적은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쉽게 눈에 띄었다. 가자지구의 남쪽지역인 라파(인구 13만 명)는 물론 가자지구 중남부의 칸 유니스(인구 20만), 그리고 가자지구의 중심인 가자시티(인구 40만) 곳곳이 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있다. 무너져내린 건물이며 주택, 불탄 채 버려진 자동차들, 탱크와 불도저로 갈아 쓰러져 누운 올리브 나무들……. 집을 잃은 사람들은 무너진 집 바로 옆에 천막을 치며 추운 밤을 지새우는 중이다.
이스라엘의 야만적 공격은 곧 학살
2008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20일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가자 지역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사망자가 적어도 1,400명, 부상자는 7,000명에 이르며, 많은 집들과 공장들이 파괴되고 농부들은 농사를 망쳤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은 사망자가 20명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전쟁연구자들은 “무력충돌에서 비롯된 사망자가 1년에 1천 명 이상인 경우”를 전쟁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지역에서 벌어진 이번 무력충돌을 전쟁이라고 보질 않는다. 가자 지구에서 제일 큰 종합병원인 시파 병원의 정형외과의사 모하마드 란티시는 “전쟁이란 교전이 이뤄지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이지, 이번 경우는 일방적인 공격이고 따라서 학살”이라 주장했다. 병원으로 몰려드는 사상자들로 몸살을 앓았다는 모하마드는 2004년 4월 이스라엘군 헬기가 쏜 미사일에 맞아 죽은 하마스 지도자 압둘 아지즈 란티시의 친동생이다. 란티시가 죽기 전에 두 번 만나 인터뷰를 했다고 하자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그에게 위로의 말을 했지만, 형의 죽음이 준 충격은 좀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자지구는 거대한 감옥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는 지중해변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고구마처럼 생긴 좁은 회랑이다(길이 40km, 폭 4~10km, 면적 360㎢). 가자 남쪽 끝인 라파에서 북쪽의 가자시티로 자동차로 달리면 그저 1시간이면 충분한 좁은 지역에 사는 인구는 무려 150만 명. 가자지구의 절반쯤이 사막형 기후로 불모의 땅인 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1㎢ 당 인구밀도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이동의 자유가 없다. 이스라엘군 경비병의 총격에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장벽을 넘어가지 않는 한, 같은 팔레스타인 지역인 서안지구로도 가기 어렵다. 이웃나라인 이집트나 요르단으로의 여행도 마찬가지로 꿈만 같은 얘기다. 현지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우린 거대한 감옥에 갇혀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말미암아 그런 땅에 오도가도 못 하고 울분 속에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번 전쟁이 터지기 전에도 가자지구 곳곳에서 이스라엘 군은 갖가지 만행을 저질러왔다. 그 곳 농민들의 생업인 올리브 밭을 불도저로 갈아엎고 난민촌 주택들을 허물어뜨리곤 했다. 이번엔 다른 훨씬 더 큰 규모의 파괴가 이뤄졌다. 중소기업 규모의 공장들이 모여 있는 가자지구 동부지역의 산업단지는 철저히 파괴된 모습이다. 공장 직원들은 철골이 불길에 녹은 채 휘어진 공장 천장을 쳐다보며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다. 가자지구의 농부들도 시름이 깊기는 마찬가지다. 이스라엘군 공습에 부인과 아들 둘이 심하게 다쳤다는 한 농부는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병원에 두고 온 가족도 걱정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건강을 되찾겠지. 그러나 몇십 년을 키워온 올리브 나무들은 어떡하나. 나무 한 그루를 다시 심어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땀과 시간이 들어가는데…….”
가자지구 동부의 샤아프 마을. 이스라엘과의 경계선을 따라난 도로를 지나려는데 길에 말과 소 여러 마리가 쓰러져 있다. 말이나 닭 등 집에서 기르던 가축들도 이스라엘 전폭기와 헬리콥터, 탱크에서 쏘아대는 포탄에 희생됐다. 인간들이 일으킨 전쟁의 광풍은 우리와 더불어 사는 동물들의 목숨도 앗아갔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굳이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말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일이 많다. 트랙터나 중고 자동차를 갖고 있더라도 비싼 석유 대신에 말이나 노새가 끄는 수레를 몰고 다닌다. 말하자면 가축은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귀한 에너지원이다. 이번 전쟁에서 가축을 읽은 현지 농민들은 에너지 보배를 잃은 셈이다.
이들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돕는 유엔 기구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관(UNRWA)이다. 그 곳 UNRWA 창고마저 이스라엘의 공습을 비껴가지 못했다. 현장에 가보니 타다 남은 구호물자들이 아직도 연기를 내뿜고 있다. 지난 1월 18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휴전 직후 가자지구를 방문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을 강하게 비난했지만,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행위를 비난했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UNRWA 대변인은 “난민촌을 파괴하고 점령지역의 민간인들을 강제 이동시키는 강압조치들은 제네바협정의 규정을 위반하는 뚜렷한 전쟁범죄 행위”라고 이스라엘 정부를 대놓고 비난했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보기에도 이스라엘 군의 강압조치가 해도 너무 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었다.
비난 받는 미국의 친이스라엘 일방주의
무차별 학살과 폭격은 분명히 전쟁범죄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전쟁지도부를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끌어낼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뒤에는 현실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이 있는 까닭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강고한 동맹국가로서, 해마다 30억 달러의 무상원조를 건네왔다. 팔레스타인 가자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은 거리의 보통사람이나 대학교수나 가릴 것 없이 미국의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를 비난하면서 강한 반미감정을 드러냈다. 므카미마르 아부사다(알라자르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박사학위도 받았지만,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과 그 배후 지원세력인 미국이 하는 못된 짓을 보고 겪으면서 도저히 미국을 좋게 보기 어렵다”고 얼굴을 흐렸다. 지난날 일제 식민지 시절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도 35년의 암담한 세월을 보냈지만, 팔레스타인은 훨씬 더 긴 세월을 고민 속에 지내는 중이다. 지금의 여러 상황을 돌아보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람들의 눈물이 멈출 날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우울한 생각을 하며 가자지구를 떠났다.
※ 국제분쟁전문기자인 김재명(프레시안 기획위원, 성공회대겸임교수) 기자는 지난 1월 21일 한 달 일정으로 팔레스타인, 이란 등 중동 현지 취재에 나섰다. 김재명 기자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머무르며 『참여사회』에 현지 소식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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