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9년 02월 2009-02-01   1598

이제훈이 만난 사람_상식과 몰상식의 경계에서




상식과 몰상식의 경계에서



김윤주 교사


글    이제훈<한겨레> 통일팀장
사진  김영광사진가


#1 영화 ‘세 친구’

1996년이었던가? 지금은 유명해진 임순례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 <세 친구>를 보다 기겁 한 적이 있다. 원채 기억력이 좋지 못한 탓에 영화의 줄거리는 생각나지 않는다. 꼭 한 장면만 생생하다. 앞뒤 맥락도 잊은 채……. 어느 남자 교사가 교탁 옆의 학생을 이단옆차기로 차버린다. 학생은 뒤로 나자빠져 교실 앞문에 머리를 박는다. 나는 놀랐다. ‘어찌 여성 감독이 남자 고등학교의 일상을 이렇게 리얼하게 묘사할 수 있나?’ 내 나이 이제 마흔 다섯. 박정희와 전두환이 대한민국의 대통령 행세를 하던 시절에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시험은 잘 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부잣집 아들은 아니었고, 주로 ‘공부 못하는 말썽쟁이들’(!?)과 친구하며 지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난 교사한테 많이 맞았다. ‘아무 일 없이’ 하교하는 날이 더 적었다. 꼭 나뿐만은 아니었을 거다. 그 시절 교사의 손찌검과 몽둥이찜질, 육체적 모욕(‘한강철교’, ‘원산폭격’ 따위!)은 대한민국 남자 중고등학교의 일상사였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말이 세상에 있는 줄, 그 시절 나는 몰랐다. 아마 나를 벼타작하듯 두들겨 팬, 이젠 이름은 물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교사들도 몰랐을 거다.


#2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당연하게도 나는 ‘전교조 세대’가 아니다. 전교조가 처음 ‘참교육’의 깃발을 들어올렸던 1989년, 나는 백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군입대 대기자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도 전교조 선생님들한테 배웠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1984년 들머리, 고3 졸업을 앞둔 나는 대입에 실패했다. 전기 응시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안 날, 나를 가장 먼저 찾은 이는 담임 교사였다. 그리곤 “학교 합격률 제고를 위해 후기 대학에 원서를 내라”고 했다. 최소한의 ‘위로 멘트’도 없었다. 가족과 친구를 벗어난 세상이 어떤 건지 모르던 때였지만, 내 눈 앞의 담임 교사를 두들겨패고 싶었다. ‘뭐 이런 개같은 경우가 있나’. 너무 안쓰러웠는지 교무실 한 구석에 있던 국사 선생님이 나를 불러 위로해주셨다. 그리곤 대입 종합반 학원이 뭐가 있는지 알려주셨다. 고마웠다. 1989년 전교조가 참교육 깃발을 올렸을 때, 대한민국 교사 가운데 1,500여 명이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교육현장에서 쫓겨났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제자를 불러 위로했던 국사 선생님과 ‘후기 원서를 내라’고 종용했던 나의 담임 교사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3 2009년 대한민국

1월 20일 오전, 나는 강북삼성병원 옆 서울시교육청사 쪽을 향해 걷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해임된 김윤주 청운초등학교 교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김 교사는 ‘일제고사 거부를 유도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 파면 해임된 7인의 교사 가운데 한 명이다). 머릿속은 너무도 복잡했다. 그날 이른 아침 용산역 부근의 재개발 현장에서 경찰 진압에 맞서던 철거민들이 불에 타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발걸음은 헛방의 연속이었다. 또 그날 아침 <한겨레> 1면엔 ‘강원도교육청이 지난해 11월 치른 학업성취도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동해교육청 관내 초등학교 교사 3명을 파면하고 1명을 해임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인류가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10년이 지난 지금, 이 몰상식의 바닥은 어디인지.


학생과 학부형의 자율선택권을 존중한 게 해임 사유? 

김윤주 선생은 왜 해임됐을까? 지난해 10월 치러진 일제고사를 ‘거부하도록 유도했다’는 게 교육청이 내세운 이유다. 사실관계부터 확인하자. 일제고사 방침을 알게 됐을 때, 김 교사는 맡고 있는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 35명의 학부모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대충의 취지는 이렇다. ‘정부가 일제고사를 치르라는데, 이 정책에 대해 찬반 양론이 있다. 교육자로서 양론에 각각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각 가정의 형편에 따라 원하시는 바를 선택하시라.’ 그러면서 김 교사가 제시한 선택지는 이렇다. ‘① 일제고사 ② 체험학습 ③ 대체학습’. 법과 규정에 따르면, 이 셋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든 문제될 게 없다. 35명 가운데 12명이 ①을 선택했다. 19명은 ②를, 4명은 ③을 골랐다. 그리고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 35명은 각자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한 바대로 했다. 누군 시험보고 누군 체험학습 가고, 누군 ‘영어노래부르기’ 대체학습을 했다.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택 가능한 대안들’을 알려줬고, 학생과 학부모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했다. 그저 그뿐이다. 이게 다다. 그런데 김 교사는 해임됐다. 그리곤 김 교사는 지난해 12월 16일 저녁 해임 통보를 받은 뒤론,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교실이 아닌, 서울시교육청 앞 차가운 거리의 농성장으로 ‘출근’한다.


찍힐 거라 생각했지만, 징계는 상상도 못 했다


일제고사 문제로 해고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

“없다. 해임은커녕 징계를 받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찍힐 거’라는 생각은 했다. 책잡히지 않으려고 나름 궁리해서 한 건데….”

왜 7명의 교사가 파면 해임 조처당했다고 생각하나?

“정치적 이유가 크다고 생각한다. 첫째, 일종의 ‘공포정치’다. 교육당국의 정책집행에 토를 달지 말고, 이탈하지 말라는 현장 교사들에 대한 협박으로 본다. 둘째, 전교조의 조직력과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것 같다. 셋째, 일제고사는 이명박 정부의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일제고사는 국가가 평가권을 장악 집행하겠다는 것이다. 교육현장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교율자율화’란 교육현장의 자율성 제고와 무관하다. ‘사교육 자율화’일 뿐이다.”


MB정부 등장 뒤자기검열 심해진 현장 교사들

해임 조처에 대한 다른 교사들의 반응은?

“‘너무 심했다’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잘잘못을 떠나 그런 일로 교사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많은 교사들이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분노가 모여 행동으로 표출되기보다 ‘조용히 살아야겠다’는 소극적 대응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강하다.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로 교육현장의 자기검열이 심해지고 있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서명 행위도 피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반감과 저항의 기류도 있다. 이 일 이후로 전교조 조합원이 오히려 더 늘었다고 하더라.”

일과는 어떤가?

“해임된 직후엔 상당히 바빴다. 집회 참석 등 행사가 많았다. 한때는 기자 전화를 받고 아침잠에서 깨기도 했다. 요즘은 전만큼 바쁘지는 않다. 교육청 앞에서 농성하는 게 중요한 일과다. 매일 저녁 7시 촛불문화제가 열린다.”

학생들은 자주 보나?

“서로 연락은 하지만 만날 일은 별로 없다. 학생들이나 학부형들이 농성장에 오겠다고도 하는데, 말린다. 날도 추운데…….”

함께 파면 해임된 다른 교사들은 출근투쟁을 하는 것 같던데, 출근 투쟁을 하지 않는 까닭은?

“마음이 아파서다. 지난해 12월 16일 저녁에 교감 선생님이 찾아와 해임 통보서를 전해줬다.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12월 19일 아이들한테 인사도 할 겸 학교에 갔다. ‘한 시간만 달라’고 했는데, 경찰이 몰려오고, 교장 선생님은 호통치고, 아이들은 울고. 한 아이는 울다가 실신하기도 했다. 그땐 몸 안에서 영혼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 일을 다시 겪을 자신이 없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너무 심하게 상처받고 충격을 받은 거 같아 걱정스럽다.”


형편 어려운 아이 배려하는, 재밌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어떤 교사가 되고 싶었나?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려선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중산층이어서 그런지, 그 시각으로 아이들을 대하더라. 준비물 못 챙겨온 아이들을 공개적으로 책망하고, 다른 아이들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 없는 사람?’ ‘집에 텔레비전 없는 사람?’하며 조사를 하곤 했다. 선생님들은 그게 편했을지 모르지만, 난 상처받았다. 그리고 질서를 강조하기보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선생님이 좋았다. 그래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배려하는 재미있는 선생님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학습을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며 심성과 감수성, 가치관을 키워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현장 교사로 일해보면 안다, 전교조가 왜 필요한지

불편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전교조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전교조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전처럼 우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나.

“언론 인터뷰 때 전교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많았는데, 답변하는 데 부담이 많았다. 전교조 조합원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사실 전교조 조직에 대해 잘 모른다. 본부의 정책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교사로서 전교조에 애정이 많다. 현장에 있으면 전교조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교육현장은 마치 군대 같다. 사실 단위학교장한테 재량권이 많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장들이 그 재량권을 위쪽의 교육부와 교육청의 부당한 간섭과 지시를 막아내는 데 쓰지 않고, 교사와 학생한테만 행사한다. 교과부와 교육청이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없는 학교의 교장은 왕과 다를 바가 없다. 개별교사는 파리목숨이다.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명백하다. 교사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기보다는, 존경과 인정을 먹고사는 존재이고, 그러해야 한다.”




“아이들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면 된단다”

다시 교단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하고 싶나?

“이번 일을 겪으며 부담이 커졌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이 시대의 양심~~’ 류의 글들이 적지 않다. 난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돌아가면 잘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와 크게 달라질 건 없는데, 고민은 있다.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교사한테 양립하기 어려운 바람이 있는 것 같더라. 하나는 교사가 양심과 영혼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쳐주기를 바라는 사회적 열망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적으로는 자기 아이를 국제중과 특목고, 이른바 스카이에 보내고 싶은 욕망이다.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설득해나갈지 고민해봐야겠다.”

아이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2월 17일에 아이들 졸업식이 있다. 꼭 가겠다고 했는데…. 아이들이 이번 일을 겪으며 ‘법보다 권력’이라고 하는 등 세상의 안 좋은 면을 너무 극단적으로 보게 된 것 같아 걱정이다. 아이들한테 ‘인생은 길고, 역사는 버라이어티하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김윤주는 1975년 부산에서 나서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1994년에 서울교대에 입학했다. 1998년 서울 관악구의 인헌초등학교에서 교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듬해인 1999년 전교조 서울지부에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월곡초등학교와 청운초등학교에서 전교조 분회장 노릇을 했다. 동료교사들과 환경 문제 등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모임을 하기도 했지만, 전교조 활동 외에 별다른 사회활동은 하지 않았다. 2004년부터는 온라인 커뮤니티 독서토론회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2005년 결혼해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을 그곳에서 만났다. 시간이 날 땐 남편과 함께 영화나 뮤지컬을 보거나, 전시회장을 찾는다. 김 교사를 여섯 살 때부터 홀로 키우신 어머니는 부산의 많은 어르신들이 그렇듯이 ‘전형적인 보수’다. 한데 이번 일을 겪고는 ‘다시는 한나라당을 찍지 않겠다’고 하실 정도로 정부가 김 교사한테 한 처사에 화를 내시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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