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단맛을 찾아서
고진하『참여사회』 편집위원
“엄마, 물이 참 달아.”
설 직전 배가 아파 병원에서 금식 권고를 받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된 둘째 녀석이 물 한 잔을 맛나게 마시고 나서 한 말이다. 먹성이 좋아 평소에도 음식을 달게 먹는 아이이긴 하다. 유난한 식탐 때문에 나는 밥상머리에서 녀석에게 “꼭꼭 씹어 천천히 먹어라”를 염불하듯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콩나물 같은 질기고 긴 나물 반찬은 곧잘 목에 걸린다. 생선 반찬이 밥상에 오른 날은 영락없이 가시가 걸려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혼꾸멍이 난다.
어렸을 적에는 갈비찜을 욕심껏 급하게 먹다가 목에 걸린 것을 어찌어찌 해서 간신히 토해내게 한 적이 있다. 하루 저녁에 연거푸 두 번 그런 난리를 치르고는 화난 내가 “너, 다시는 갈비찜 먹지 마”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큼 영금을 보았으면 그 순간만큼은 ‘갈비찜’의 ‘갈’자만 나와도 도리질을 치는 게 인지상정일 터. 그런데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엄마, 이제부터 꼭꼭 씹어서 먹을게요” 하고 애원한 녀석이다. 그런 아이가 생으로 굶고 있는데 무엇을 먹은들 달지 않겠나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났다.
하기야 간단한 입원 수술이라도 하여 쫄쫄 굶다가 받아드는 죽 한 그릇의 맛은 얼마나 특별한가. 종지의 간장 한 방울도 달다. 단식 뒤에 먹는 싱겁게 간해 살짝 구운 채소 조각은 또 얼마나 달콤했나.
재료가 특별한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감각기관이다. 폭식에 지친 혀는 음식의 제 맛을 느끼지 못한다.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에 둔감해진 미각돌기가 잠깐의 휴식에도 제 기능을 얼추 회복한 것이다.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넘치는 것이 문제다.
경기침체와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탓인지 사람들은 점점 자극적인 맛에 탐닉한다. 매워도 웬만큼 매워서는 되지 않고, 혀에서 불이 날 만큼 매워야 한다. 보통 고추보다 훨씬 매운 청양고추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이 없고, 불닭과 매운 갈비찜 같은 신종 극렬(極烈) 음식이 인기를 끈다.
우울할 때는 단것이 당긴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음식점에서 내는 반찬들은 감미료를 퍼부어 김치까지도 달달하다. 인공적인 단맛을 즐기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젓가락 갈 데가 없어서 젓갈 한 가지로 밥 한 그릇을 다 먹다시피 해야 한다.
시골로 이사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해 봄날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어딘가를 가고 있었다. 차창으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초등학교 1학년쯤이던 큰 아이가 코를 벌름거리며 감탄하던 말. “하, 바람이 달아요.”
지나가버린 과거를 곱씹고, 미래를 앞당겨 걱정하는데 정신이 팔려 유일한 현재를 온전하게 누리지 못하는 바쁘고 가난한 우리의 마음. 세상살이는 여전히 각다분하지만, 매 순간 ‘지금 여기’에 충실히 머무르려는 마음이 있다면 바람 한 점, 물 한 모금, 밥 한 톨도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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