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1999년 08월 1999-08-01   1080

그들 몫의 더위

더운 여름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겨울보다 여름철 온도에 더 민감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30℃가 넘어야 에어콘바람을 쐴 수 있는 참여연대 활동가들에게는 29℃와 30℃의 간격이 참 크게 느껴진다. 단순히 ‘1’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넘어 한 바가지의 땀과 인내력으로 비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가지 실험을 해보자. 욕조에 칸을 나눠 한쪽은 찬물, 다른쪽은 더운물을 담아 가만히 두면 전체가 미지근한 물로 변한다. 사실 우리가 못 볼 뿐이지 둘 사이에는 엄청난 상호작용이 있다. 열이 더운물에서 찬물로 떼지어가서 결과적으로는 같은 온도가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찬물을 더욱 차게 더운물은 더 뜨겁게 만들려면? 답은 간단하다. 화살표의 방향을 뒤집으면 된다. 즉, 열의 이동 : 찬물→더운물 이렇게. 도식화 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열 이동 방향을 바꾸려면 상당한 힘(에너지, 일…)을 필요로 한다. 방향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변화량인데 한쪽에서 100만큼을 뺏겼다는 것(-100)은 다른 한쪽이 100만큼을 가져갔다는 것(+100)이다. 100만큼을 얻은 게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철저한 제로섬 게임이다.

이것이 냉장고, 에어콘 등 열원기기의 기본원리이다. 에어콘은 실내 열을 빼앗아 실외로 버려준다. 우리가 실내에서 시원한 만큼 바깥 세상은 열을 받는 것이다. 공간의 크기가 달라서 상대적으로 온도차가 미미하게 보이지만 한쪽이 시원한 만큼 다른 한쪽이 열받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이걸 생각해 보면 사무실이 시원한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과학현상을 세상사에 대입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셋 이상이면 골치 아프니 ‘그들’과 ‘우리들’로 구분해 보자. 여기서 ‘그들’은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무리를 지칭한다. 즉 뇌사국회에서도 정쟁만 일삼는 국회의원들, 고급옷 로비 등 부정부패를 일삼는 고위 공직자들, 조폐창 파업유도 발언 등으로 신뢰잃은 검찰, 구조조정 핑계로 노동자에게만 고통을 전담하고 제 몸집 불리기에 여념없는 재벌, 이런 모든 상황에 ‘대책없음’으로 일관하는 무능한 정부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서민이 바로 ‘우리들’이다.

사무실에서 부채질하며 일하다 문득 ‘그들’과 ‘우리들’과의 온도차이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아마 여태껏 개발되어 있는 온도계로서는 그 차이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한계를 벗어나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하늘 아래서 시원함을 즐기는 ‘그들’과 더위에 찌들린 ‘우리들’.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기본적 복지혜택조차 누리지 못하며 서울역 광장을 떠도는 사람들,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어버린 노동자들, 야근 철야에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오로지 회사를 위해 일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 그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머리와 가슴은 물론 이제 내장까지 타들어갈 것만 같은 살인적 더위에 ‘그들’ 몫의 뜨거움을 ‘우리들’에게 전가하는 ‘그들’. 재미는 ‘그들‘이 보고,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하는 부당함을 본다. 이 황당한 풍경이 80년대에 이어 1999년 여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이 열받음을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 광화문 한복판에 신문고라고 설치해 ‘그들’로 인한 피해를 되넘겨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솔직히 요즘같은 삼복더위에 더이상 뜨거워지고 싶지 않다.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소나기처럼 ‘그들’ 몫의 더위는 이제 ‘그들’이 도로 가져갔으면 좋겠다. 그동안 우리가 대신 고생한 몫의 대가도 마저 지불하면 좋으련만, 모쪼록 앞으로 이 더위에 더 이상의 불지핌이 없기 바란다. 때마침 복날 발표된 임창열 주혜란 부부의 수억원 수수비리사건은 정말 이 ‘열받음의 따불’을 가속화한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불공평한 상황, 지금 ‘우리들’의 체온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폭발하기 전에 스스로 ‘당신들’ 몫의 더위와 뜨거움을 가져가라.

최현주 참여연대 문화사업국 간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