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기술 정책 문제제기
본지 8월호는 ‘삼성기반기술연구소, 국책사업 230억 낭비 의혹’이란 기사에서 국책사업을 위탁받은 민간연구소가 성능시험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제품 생산을 강행, 국가예산을 낭비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기자는 이와 관련, 취재를 계속하면서 이러한 국가예산의 낭비가 해당 연구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가 되었던 ‘초전도자석계통 개발·제작’과제가 포함된 『KSTAR 프로젝트』는 핵심과제인 초전도자석 제작이 실패할 경우 사업 전체가 좌초 위험에 빠지게 되는데, 현시점에서 2480억 원이 들어가는 이 사업의 성공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KSTAR 프로젝트』뿐 아니라 정부가 연구비를 대고 있는 중장기 연구사업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거둠으로써 결과적으로 막대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KSTAR 프로젝트』는 당초 선도기술개발(G7) 사업의 하나로 추진되다가 2001년 8월 기초과학연구사업으로 변경되었다. G7사업은 2000년대 선진 7개국 수준으로의 진입을 목표로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추진됐던 사업이다. 핵융합 연구장치를 비롯해 차세대자동차, 신기능생물소재, 의료공학, 고속전철 등의 세부과제를 정해 추진되었던 G7사업에 대한 평가는 부분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올 7월 펴낸 ‘2001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평가결과’보고서에 따르면 G7사업은 A∼E의 5등급 중 D등급으로 분류되었다. G7 사업은 2000년도에 이어 2001년도 평가도 D등급에 머물러 전체적으로 실패한 사업이라는 평가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 사업에 들어간 예산은 자그마치 4조782억 원이다.
평가와 검증 부재가 예산낭비 불러
예산낭비는 G7사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반도체기술 개발, 서비스로봇기술 개발, 극미세구조기술 개발 등의 세부사업을 가지고 98∼2002년 8905억 원을 들인 『중점국가연구개발사업』은 2년 연속 E등급을 받아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업으로 지목되고 있다.
2002년 과학기술 연감에 따르면 2000년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 투자액은 122억 달러로 세계 8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에 비해 효과는 저조해 산업기술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세계 최고수준 기술보유 건수는 전체의 0.6%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기술개발사업들이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거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가장 큰 이유로 연구과제를 제대로 평가하고 검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공정하고 정밀하게 평가를 해야 할 평가위원들이 과학기술부처의 입맛대로 선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KSTAR 프로젝트』 평가소위원회에 참가했던 H 박사는 “99년 자문으로 참가했을 뿐 그동안 진행상황을 알지 못했는데 평가위원으로 참여하라는 말을 듣고 위원회에 나갔다”며, “그 자리에서도 제품에 대한 정확한 성능시험을 거친 뒤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평가소위원회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고 혹평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21세기 프론티어사업』에 대해서도 이러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박상희 의원은 올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한 정책현안 자료집을 통해 평가위원 선정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11명의 평가위원 중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36명의 전문가를 추천하였으나, 이 중 6명만 참여했고, 나머지 5명은 추천되지 않은 인물이 포함되었다”며 “평가위원 선정은 KISTEP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과기부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엄밀한 평가 및 검증 시스템의 부재 외에 정부의 전시성 행정과 정치논리도 예산낭비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IT(정보기술)의 전망이 밝다고 하면 관계부처가 너나없이 IT에 집중하고, BT(생명기술)의 전망이 밝다고 하면 또다시 BT에 몰리는 등 정치논리에 휘둘리고, 전시성 행정에 치우치는 한 과학기술 정책은 바로서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공정한 평가 시스템과 시민참여 필요
과학기술부에 근무하는 H박사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을 “최저 비용과 최소 비용으로 세계최고의 연구성과를 기대하는 시스템”이라고 압축하여 설명했다. 그는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가 과학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적법한 절차를 밟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형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은 “미국의 경우 선도기술기획원이 연구 종료 후 7년 동안 매년 평가를 실시해 결과를 분석하고 있으며, 미국 국립과학재단은 3년 주기로 장기 평가를 해 그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며 “사업계획서만 그럴듯하면 연구개발 자금을 주고 사후관리를 하지 않는 우리의 지원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발간된 『과학기술·환경·시민참여』(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엮음)”는 과학기술 정책 결정에 시민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과학기술 행정도 폐쇄적인 행태에서 벗어나 모든 정보와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요사업에 있어서는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여하는 평가 시스템을 갖출 때 예산낭비를 일삼는 저효율 구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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