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09-01   5308

[복지칼럼] 공공 돌봄의 폐허에 외국인 노동자를 세우다

이은주ㅣ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필리핀에서 가사관리사가 들어왔다. 시범사업의 이름을 달고 교육과 훈련을 받은 100명의 20~30대 여성이 서울시에서 신청한 가구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돌본다고 한다.1) 그동안 돌봄 현장에 외국인 노동 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외국인 돌봄 인력은 공공연히 병원에 상주했고, 암암리에 집 안에도 있었다. 다만 노동자로서 공식 고용이 아닌 사적 계약의 형태로 노동이 진행되었던 것뿐이다. 장기간 병원에 입원한 가족이나 지인이 있었다면, 병원 내 계급화된 간병인 시스템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것이다. 가족 중 누군가를 종일 돌봐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외국인 간병인은 돌봄 부담을 가격으로 타협할 수 있는 중요한 인력이었다.

새로운 일도 아닌 외국인 돌봄 인력의 등장에 왜 주목하는가? 사적 계약이 공식화되어 제도로 갈 수 있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공공 돌봄으로의 전환을 시도했던 서울시가 사회서비스원을 폐허 상태로 방치한 채 부족한 돌봄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기껏 기획한 게 외국인 돌봄 노동자의 공식화를 선언한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맞장구친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한국의 돌봄 노동 현장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문제를 회피하고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시범사업 이후에는 더 인원을 확충하고, 유학생과 근로자의 배우자(결혼이주여성)까지 돌봄 인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돌봄노동의 외주화도 부족해 제국주의적 시각까지 노골적으로 덧붙였다.

우선 가사노동자가 아닌 관리사라는 표현부터 꼼수가 보인다. 관리, 지원, 제공과 같이 영혼을 분리한 단어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현장에 들어와 돌봄의 관계를 균열 내고 흐트러뜨린다. 이미 사회복지의 현장이 관리와 매뉴얼로 전환된 지 오래고, 관리라는 단어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인간의 모든 생활(개인의 몸부터 일상생활까지 다 관리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에 적극적으로 적용되기에 가사관리사라 는 명명은 탁월한 선택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관리사로 포장한다고 해서 돌봄 노동이 아니거나 돌봄이 수월해진다고 할 수는 없다. 가사관리사라는 명명의 노동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기존 가사노동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가? 기사에 따르면2) 가사관리사는 아이 돌봄과 관련된 일‘만’ 할 것이라고 한다. 언론은 유독 돌봄노동의 경계, 가사 노동의 구분 짓기에 목소리를 높인다. 돌봄노동의 전문성이라고 해야 하나? 아이 돌봄의 일이 이렇게 명확히 구분되는 일이었나? 돌봄노동의 질까지 확인해야 한다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규정을 잘 지켜 아이‘만’ 돌봐주면 좋은 돌봄인가? 이들에게 돌봄노동의 질까지 운운하는 건 과도한 기대일까? 질문이 꼬리를 문다.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매뉴얼에 따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업무는 육아 관련 범위로 제한하여 분명히 구분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보도자료(240716. 고용노동부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에는 이 시범사업이 ‘가정 내 돌봄서비스 제공시스템의 원활한 작동 가능성을 검증, 보완’한단다. 가정이 ‘서비스제공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해야 하는 곳’으로 논의되고 있다. 집이 공장인가? 서비스, 시스템, 작동 등의 단어가 조합되어 관계로 설정되고, 살이 부딪히는 현장에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사노동은 시스템, 매뉴얼과 같이 표준화된 업무로 규정되기 어려운 돌봄의 가장 최일선이다.

필리핀 가사관리사에 덧붙여진 문제는 돌봄 노동의 외주화와 저임금노동뿐만 아니라, 이들 노동자의 생활하는 공간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 문제(인권)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첨예하면서도 바닥 수준을 보여주는 노동을 둘러싼 각종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 이들에게 명확히 규정된 건 노동시간과 시간당 임금 정도이고, 그 외의 것들은 다 모호하다.3) 이들은 1평 남짓의 공동숙소에서 머무르면서 출퇴근할 예정인데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안내 자료에는 숙소에 비상벨 설치, 긴급 신고 수단 같은 것들이 나와 있다. 정부의 보도자료만 보면 이들이 머무는 숙소의 환경과 조건보다는 사건·사고가 예비된 공간 같다.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문제의 진단부터 해결 방안이 다 억지로 연결되어 있다. 내국인 가사육아서비스 종사자가 감소해서 국외 인력을 충원한다는 주장은 일면만 본 진단이다. 돌봄 인력은 부족하다. 사람이 부족한 것은 저임금, 현장에서의 불편부당한 많은 요구들과 돌봄 노동에 대한 낮은 시선까지 돌봄 인력의 숫자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산재해 있다. 정부는 여기에 우리 사회의 만능키처럼 활용되는 저출생 문제를 엮었다. 저출생의 원인은 너무 다양해서 나열하기조차 버겁다. 한 사회의 수준까지 얘기되는 판에 돌봄 인력이 부족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며 가사관리사를 데려오는 근거로 언급하다니! 돌봄 인력을 확충한다고 저출생 문제가 즉각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며, 외주화와 차별로 돌봄 인력을 돌려막기 하려는 의도가 참혹하다(실제로 부족한 돌봄 인력은 가사 노동자가 아닌 장애인, 노인 등의 현장에서 나타난다).

가장 큰 문제는 공공 돌봄으로의 요구를 내팽개치고, 새로운 대안인 것처럼 돌봄 현장의 문제를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대안을, 매뉴얼을 통해 밀어붙이는 정부의 태도다. 고용노동부가 만든 시범사업 가이드라인에 기본 업무로 제시된 ‘돌봄’이라는 두 글자가 현장의 모든 문제를 감추고 있다. 돌봄이라는 단어는 익숙한데 돌봄 실천은 너무 광범위하고 각자 생각하는 수준과 내용이 다 다르므로 이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입국한 이후 언론에서는 모호한 업무 범위에 대해서 지적한다. 오히려 이번 가사관리사의 업무 구별 짓기를 통해 돌봄 실천 혹은 돌봄 노동에 대해 치열하게 얘기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매뉴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누가 원하는 돌봄인가? 돌봄은 살기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일상에서는 회피가 더 가깝다. 원해서 하는 건 아니다. 여기에 자본주의 시스템은 노동의 이름을 붙이고 노동에 따른 대가로 임금을 지급하고, 이를 통해 상품화가 가능한 것처럼 만들고 있다. 노동력의 확보인가, 양질의 돌봄인가4) 라는 문제 제기는 또 다른 우려와 연결되어 있다. 돌봄의 질은 또 다른 차원이다. 잘 관리된 돌봄 인력이 돌봄을 제공하면 이용자의 만족도가 높을 수 있겠지만, 그 만족도는 돌봄의 외주화에서 오는 만족감인지 좋은 돌봄에서 오는 만족감인지 알 수 없다. 부담의 회피라는 관점에서 돌봄에 접근하면 그 어떤 노동보다 가장 회피하고 싶은 노동이 돌봄 노동이다.

시범사업이 많은 논쟁을 가져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돌봄을 다시 얘기할 수 있다. 외국인 돌봄 인력을 통해 돌봄은 노동 시장의 분업과 위계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과 분업, 외주화의 임금노동이 가지고 있는 경계에서 벗어나 함께 돌봄의 현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 미주 |

1) “필리핀 가사관리사 입국…한국 좋아서 선택”(KBS, 24.8.6.), “필리핀 가사관리사 입국… 다음 달 투입”(채널A, 24.8.6), “설거지 되고, 요리는 안되고… 필리핀 가사관리사 일범위‘ 모호’”(연합뉴스, 24.8.6.) 등
2) 한국 온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호소“ 가정부 아닌‘ 돌봄 도우미’예요”(한국일보, 2024.8.7 인터뷰)
3)“ 서울시·정부, 필리핀 가사관리사‘ 최저임금 적용 제외’ 협의”(뉴시스, 2024.8.9)

월간<복지동향> 2024년 09월호(제3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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