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용ㅣ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해가 갈수록 존엄하게 살아가는 것이 점차 더 힘들다. 청년과 중장년 일자리는 더 감소하였고, 근로자들의 실질임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가계부채는 늘었으며, 자영업자 폐업이 속출하였다. 생활의 조건도 악화되었다. 의료대란은 난국 상황에 빠져들었고, 인구감소는 가속도가 붙었으며, 기후는 더욱 이상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번 생의 어려움은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듯 보인다. 그래서인지 자발적, 비자발적 고립을 선택하는 이들이 도처에 보인다. 고립은 불안정한 삶에 기인할 수 도 있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도 있으며,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타인과의 관계를 끊는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고립은 서서히 소멸해 가는 감정을, 그리고 관계의 파괴는 존재론적 공허감을 가져온다. 또다시 겨울, 복지동향은 누군가의 취약성을 곁에서 응시해 보고자 하였다.
본 호 네 개의 기획 글은 각기 노인, 장애인, 노숙인, 이주민을 다룬다. 먼저 박명숙 연구원은 노년기 고립에 주목하였다. 대다수의 노인은 신체적 노화, 은퇴, 가족 상실 등으로 인해 사회적 관계망이 축소되고,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위기가 심화된다. 가구 규모로 보면 오늘날 노인은 부부로 거주하다 사별 후 홀로 사는 노인이 된다. 결국, 노인의 고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노인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참여 기회를 높이는 사회보장의 확대 그리고 통합돌봄체계나 시니어 코하우징 같은 지역사회 협동모델의 시도가 필요하다. 문영민 교수는 장애인의 사회적 고립 문제를 해결할 디지털 기술의 가능성을 흥미롭게 탐색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증강현실, 인공지능 음성합성 등을 통해 장애인이 경험하는 물리적 장벽과 의사소통의 구조적 배제를 일부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문영민 교수는 기술을 통해 장애를 극복한다는 테크노에이블리즘(technoableism)의 위험성을 동시에 경고하고 있다. 기술이 장애인의 정체성을 간과하고 정서적 연결을 약화시키고 또한 장애인을 기술의 의존 대상으로 간주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기획 글에서 남기철 교수는 최근 노숙인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주거지원 사업 등 정책적 효과로 볼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하지만 통계 집계 방식이 특정 시점과 장소를 기준으로 하여 변화하고 있는 노숙인 수를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수에만 초점을 둔 정책은 사회적 배제와 같은 인권적 대응을 외면하고 있다고 봤다. 특히 남기철 교수는 노숙인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극복하고 주거권 보장과 사회적 통합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고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한준성 교수가 바라보는 이주민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은 매우 참담한 수준이다.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받고,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힌 이들은 착취와 추방의 공포 에 시달린다. 또한, 난민 불인정자, 유학생, 가족 결합 이주민 등 다양한 계층의 이주민들도 체류권 문제와 불평등한 정책으로 인해 소외와 고립을 경험하고 있다. 한준성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배제는 국가가 이주민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 관리하려는 보더(border) 현상의 결과라고 분석하며 궁극적으로 이민 행정의 윤리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체류권을 인간의 기본 권리로 간주하고 사회적 성원권을 중심으로 이민정책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 글 모두에서 내 옆 이웃들의 비극이 생생하다. 특히 한준성 교수의 글은 처음 용산 참사로부터 시작하여 체류자격을 겨우 획득한 강태완 씨의 산재 사망으로 막을 내린다. 사실 하루 삶의 시작과 끝 어디에서도 내 시야와 관심의 차단막을 걷어내면 언제든 마주할 수 있는 이들이다. 타인의 배제와 고립은 결국 우리가 설치한 벽 때문에 존재한다. 넘기 어려운 구조적 벽을 곳곳에 놓아두고서, 우리는 그들에게 ‘어디 한 번 뛰어넘어 보시지’라고 관조하고 있다. 정작 문제는 누군가의 고립이 아닌, 우리가 세운 그 배제의 장벽이다.
월간 <복지동향> 2024년 12월호(제3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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