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독서의 지도를 펼쳐라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권하는 1월의 책
안녕하세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에는 어떤 신나는 일들을 계획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역시 신년 목표로는 독서만한 게 없겠지요. 하루에 100쪽 읽기를 목표로 세운 분도 계실 테고, 1년에 100권 읽기라는 호연지기를 품은 분도 계실 텐데요. 책 읽기에 관해서라면 어떤 목표라도 반가운 일입니다. 다만 넓디 넓은 책의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마땅한 지도가 있어야겠지요. 다행히 우리가 직접 모든 영역을 찾아다니며 지도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인류의 모든 문화가 그렇듯 우리에게는 선배들이 있으니까요. 오늘은 독서깨나 하신 훌륭한 선배들이 남겨놓은 지도 석 장을 차례로 살펴볼 생각입니다.
지도 1. 고전을 대하는 기본자세
우선 멀리서 너른 영역을 바라보는 소축척 지도로 지식 교양의 세계가 어떤 모양인지 가늠을 해야겠지요. 100여 년 전 하버드대학교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도 주요한 고전을 차례로 익혀간다면 누구나 교양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50종의 고전을 골라 전집을 만들었습니다. 하버드 고전Harvard Classics이라 불린 이 전집은 당시 수십만 부가 팔려나가며 교양 교육의 전범이 되었는데, 이 50종의 고전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로 51번째 책인 『열린 인문학 강의』입니다. 해당 고전들을 읽기 전에 갖춰야 할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의 기초 내용을 담은 이 책은, 당시 하버드대학교의 전공 교수들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강의에 기초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여러 대학이 수업을 온라인으로 무료 공개하는 오픈코스웨어OCW, OpenCourseWare의 시초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문학, 역사, 철학, 시 등으로 나누어 진행된 강의는 주요 고전의 핵심과 세상을 바꾼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한데 엮어, 해당 학문의 정수를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말로 전해줍니다.
특히 각각의 고전을 해설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그 고전이 놓인 시대, 해당 분야의 큰 흐름을 함께 설명하면서 그 책이 어디쯤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데 무게를 두어, 그저 고전을 쉽게 읽는 책이 아니라 고전을 읽기 위한 기초 소양을 쌓고 책의 세계를 항해하기 위한 바른 태도를 잡는 데 도움을 줍니다.
지도 2. 고전을 읽는 133가지 기술
이제 윤곽이 잡혔으니 항해를 시작해야겠지요. 이번에는 독서의 세계 주요 지점에 놓인 항구들을 차례로 살펴볼까 합니다. 앞으로 거쳐야 할 지점들이지요. 세계적인 고전 해설가 클리프턴 패디먼의 『평생 독서 계획』은 1960년에 초판이 나온 이후 40년 동안 수정판을 거듭하며 읽힐 정도로 영미권에서 확고히 자리 잡은 독서 길라잡이입니다.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133명의 작가와 주요 작품을 살펴보는데, 평생 위대한 문학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한 저자의 바람대로 서너 쪽의 짧은 분량에 작품의 핵심과 이를 독파하는 방법을 함께 담아냈습니다.
예를 들어 『율리시스』 같은 난공불락의 소설에 대해서는 일단 읽을 수 있는 데까지 읽고, 책을 내려놓았다가 1년 뒤에 다시 시작하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전하기도 하고, 『돈키호테』에는 따분한 이야기들도 꽤 있으니 오히려 괜찮은 축약본으로 읽어도 좋다는 달콤한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각각의 고전에서 급소가 어디인지,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공략할지를 유쾌하면서도 시니컬하게 전하는데, 저자의 공략법을 따라가다 보면 여러분 각자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지도 3. 고전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방법
자, 이제 우리는 항해를 위한 준비를 마치고 우리가 닿을 수 있는 항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거기에 닿을 수 있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오랜 기간 정박하며 항구 주변뿐 아니라 그곳을 둘러싼 도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 쌓인 시간의 흐름과 생각의 깊이를 살펴봐야 할 때입니다. 철학자 강유원의 『인문 고전 강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단테의 『신곡』,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 등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10권의 고전을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깊이 있다는 말이 꼭 어렵고 힘들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고전 자체를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는 시선을 넘어 그 고전이 어떤 이야기를 거쳐 지금 우리 앞에 놓였는지 이해하고, 이로부터 나와 역사, 나와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자는 말입니다. 정리하면 역사와 삶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고전 읽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놀라운 건 이 열 개의 항구가 겉보기에는 멀리 떨어진 듯하지만, 깊이 파고들어다가 보면 결국 한 군데에서 마주한다는 사실입니다. 일종의 지혜의 보물섬 같은 곳이죠. 이곳에서는 고전 속에 스며들어 있는 개인과 공동체, 현실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이 모두 드러납니다. 결국 고전을 읽을 때에는 개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개인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를 고려해야 하고, 초월적이고 이상적인 것들을 생각하면서도 현실의 역사 위에 발 딛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석 장의 지도를 차례로 살펴본 느낌이 어떠신가요? 끝없이 펼쳐진 고전의 바다가 보이시나요, 아니면 거센 풍랑이 몰아치는 풍경이 보이시나요. 어쨌거나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와 도전입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지나간 길이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될 것이고, 혹여 운 좋게 자기만의 지도 하나쯤 그려볼 수 있다면, 하핫, 이건 상상만 해도 신나는 일이겠지요. 그럼 저는 한발 앞서 출발합니다. 오며가며 우연히 만나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수 있길 바라며.
『열린 인문학 강의』,
윌리엄 앨런 닐슨 지음, 유유
『평생 독서계획』,
클리프턴 패디먼,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인문고전강의』,
강유원 지음, 라티오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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