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펄쩍 뛰더라고요. 굴업도가 활성화단층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91년 동력자원부 조사자료를 들이밀었습니다. 전국의 임의도서를 대상으로 핵폐기장으로서의 적정성 여부를 조사한 자료입니다. 반핵운동을 벌이면서 힘겹게 구한 귀한 정보죠. 하지만 막무가내로 밀어붙였어요. 당시에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언론과 국민들의 시각도 정부 입장과 크게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사면초가 형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질조사 전문가들을 대동해 섬을 샅샅이 뒤졌고, 지질학자들도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결국 95년 11월 30일 정부 쪽은 활성화 단층임이 밝혀졌기 때문에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핵 마피아 집단’이 백기를 든거죠.”
서울환경운동연합 김혜정 사무처장의 당시 회고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전 관련자도 징계를 당했다. 환경운동의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았으면 이런 결과는 애당초 꿈도 꾸지 못했을 정도로 주변 상황은 극도로 열악했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일부 관료들이 가진 전문성이란, 애초 목적을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조차 숨긴 채 엄청난 환경재앙을 각오할 정도로 집요하게 스스로의 논리를 꿰맞추는 것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때론 관료 전문성의 토대라 할 수 있는 막강한 정보력도 이 논리를 위해 자의적으로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강댐 백지화도 환경단체의 전문성과 운동성이 결합된 합작품이다. “우리는 ‘파트너’(김 사무처장은 건교부 수자원 개발과, 수자원공사 댐건설사업단을 이렇게 표현했다)와 3년동안 싸우면서 많은 토론을 거쳤습니다. 방송과 신문 지상을 통한 혈전이었지요. 저쪽이 처음부터 내세웠던 논리는 2011년이면 물이 부족해진다는 등 수요예측을 둘러싼 물부족 논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절수시스템 도입, 누수율 방지, 가격정책을 통해 천혜의 동강 비경을 훼손하지 않고도 물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를 세웠습니다. 이 같은 우리쪽 논리가 국민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자, 그쪽에선 홍수조절 문제를 들고나왔습니다. 중랑천 범람이 재연될 수 있다는 협박과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측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한강 본류가 넘쳤다면 몰라도 중랑천 범람은 지천의 범람일 뿐이라는 거죠.” 결국 동강댐은 백지화됐다.
이 두 가지 환경운동 성공사례는 다양한 주객관적 조건이 충족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민운동이 갈고닦은 전문성의 효력을 실감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김 사무처장이 시민운동의 전문성에 대해 자신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정보의 독점에서 나오는 관료들의 전문성은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 부분입니다. 아직 전문성은 취약하죠. 동강댐 건설 문제 때에도 정부가 미국의 ‘하자사’에 의뢰한 환경영향평가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는 데 끝내 공개하지 않더군요. 영월댐 건설시 안전성에 치명적 결함이 있는 것으로 조사된 보고서였습니다. 우리에겐 결정적 자료였죠. 하지만 핵심 이슈를 파악하고 제한된 여건이지만 전문가 등을 조직해 소위 기득권에 도전한다면 못할 게 없다고 봅니다. 우리의 전문성은 의지입니다. 잘못된 현실을 바꾸려는 개혁 의지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문성은 커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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