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5 2025-05-01   8949

[복지칼럼] 연금개혁과 청년 불러내기

주은선ㅣ경기대 사회복지전공 교수

윤석열은 갔지만(?), 윤석열 시대의 사회적 유산은 강력하게 남아 우리 사회에 당분간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그중 하나가 세대 분열 및 청년을 우경화시키고자 하는 정치 전략이다. 이때 우경화란 노후보장, 실업보장, 의료, 교육, 주거 등에서 공공적 요소를 줄여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살아남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 옛날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 초입에 영국의 대처 총리가 ‘사회란 없다’라고 외치고, 복지 축소의 ‘한 길’로 나선 것을 생각하면 된다. 한 나라의 총리가 사회연대를 해체하자며, 각자도생은 이제 불가피하며 도덕적으로도 옳다는 주장을 전개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윤석열과 몇몇 소위 대선주자라는 사람들이 이런 정치적 경향을 맹아 형태로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그 계기로 삼은 것이 2025년 연금개혁이다. ‘분열과 지배(divide and rule)’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중심축을 일단 ‘세대’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나는 사실 연금개혁 때문에 청년의 생각이 실제로 그리되었다기보다는, 유독 윤석열 시대에 연금과 관련해서 청년세대를 계속 불러내면서 이들의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부각시키고자한 것으로 본다. 그 시작점에 사실 윤석열 정부 시기에 나왔던 정부 연금개혁안과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내놓은 메시지들이 있다. 또한, 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대통령직 파면 선고 사이에 이루어진 연금개혁을 계기로 몇몇 청년단체와 정치인들이 연금개혁과 세대 문제에 관한 왜곡과 과장에 적극적으로 나선 바 있다.

여기에서 문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세대연대나 상생보다는 세대 간 대립이 연금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본질이며 마치 처음부터 우리를 지배했던 것처럼 만든다는 것이다. 최근에 더 뚜렷해진 것은 청년의 정치적, 정책적 선호를 보수 우파의 것으로 유도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2025년 연금개혁은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이러한 전략에 의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소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국 사회를 더욱더 ‘을’들이 서로 물고 뜯는 지옥으로 보이게 만들고, 있는 자는 있는 대로, 없는 자는 없는 대로 불안하게 만들어서 정치적 보수화를 부추기는 계기로 연금개혁이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청년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암울함을 방치한다면, 청년은 당연히 앞 세대 부양에 관한 부담의 문제로 공포심을 갖기 마련이다. 이는 ‘사회적인 것’을 포기하거나 적대시하게 만든다. 여기에 앞 세대에 대한 혐오까지 더해지면 극단적인 태도가 나타날 수 있다.

2024년 봄에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안, 즉 더 많은 시민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에서 50%로의 상향과 보험료율 9%에서 13%로 올린다는 안에 대해 지지했다는 연금개혁 시민공론화 결과가 나온 후에 진행된 국회에서의 연금개혁 협의를 윤석열은 굳이 나서서 중단시켰다. 그러면서 청년을 위한 연금개혁, 특히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같은 해 가을, 정부의 연금개혁안 발표를 앞두고 윤 전 대통령은 직접 브리핑에 나서 모든 국민이 아닌, 유독 청년을 위한 연금개혁을 전면에 내세웠다.

세대 분할과 청년 우경화의 정치적 기획에 처음부터 동참한 것인지, 아니면 연금개혁을 통해 불거진 세대 대립이란 결과에 그저 편승하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부 정치인들은 이를 활용하여 각자의 정치적 자산을 불려보려고 발 빠르게 나선 바 있다. 미래의 불안을 느끼는 청년들의 지지를 좀 받아보겠다는 태도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개인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과 한 사회 전체를 이끌어 가겠다는 소위 대선주자들이 이런 태도를 보이고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정책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얘기이다. 예컨대 과거에도 젠더 갈등을 반성이나 성찰 없이 즉자적인 방식으로 부추기면서 성장한 정치인이, 이제 연금개혁을 없던 일로 만들겠다는 등 세대 갈등에 불을 붙이고 싶어 하는 것은 리더로서 자격을 의심하게 만든다. 또한, 짐짓 목소리를 높여 ‘동료 시민’ 운운했던 정치인이 정장을 벗고 격식 없는 태도를 연출하면서 그 시민들을 서로 질시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 놀라운 이야기이다. ‘시민’이라는 말의 깊이를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표면적으로 이용만 하고자 하는 것인지…

또 하나의 문제점은 연금개혁과 세대 문제에 관한 왜곡과 과장이 심한 것도 심한 것이려니와, 왜곡된 사실이 매우 신속하게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왜곡과 과장에 기초한 몇몇 단체의 기자회견도 있었지만, 여기에서 언론도 한몫하였다. 국민연금 개혁이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지만, 지금 보험료 인상 폭보다 연금급여의 소득대체율 인상 폭은 그리 크지 않다. 보험료 인상은 현행 9%에서 13%로 비교적 인상 폭이 크다. 이제 한국 국민연금은 미국 공적연금 보험료 수준을 넘어섰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높아지기는 했지만, 이는 여전히 경제 규모에 비해 너무 낮다. 결국, 여전히 지출 증가 폭보다 수입 증가 폭이 크면서 기금소진 시점은 2060년대로 넘어갔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왜곡은 첫째, 2060년대 중반 연기금이 소진되면 연금을 못 받을뿐더러, 미래 청년세대가 지나치게 높은 보험료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우선 고령화 국면에서 연금제도를 먼저 도입 운영하는 많은 나라들은 연기금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제도를 오랫동안 운영해 왔다. 또한, 보험료를 그 정도로 부과하고 있지 않다. 한국 국민연금이 2070년경 GDP의 약 10%만큼을 지출한다고 전망할 때 이미 여러 나라들이 그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참고해 보자. 일부에서는 이런 지출 규모가 후세대 착취이거나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불가능하지도 않고, 2070년대 한국 경제의 생산과 분배에서 노후보장에 지나치게 인색한 것은 경기 순환이란 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2060년대까지 65세보다 더 뒤로 가면 지출 규모는 줄어든다.

이 경우 중요한 거짓말은 연기금이 없으면 연금을 못 받는다는 것이다. 고령화 국면에서 연금재정은 물론 고민이 필요한 문제이지만, 이미 고령화가 상당히 진전된 상황에서 연금재정을 전적으로 보험료로만 조달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독일과 프랑스는 대략 연금지출의 25~30%를 일반재정이나 사회보장세(사회연대세)를 통해 조달한다. 더욱이 OECD 평균으로 보면 사용자와 노동자는 연금재정을 6.5: 3.5의 비율로 부담한다. 5:5 부담이 아니다. 고소득층과 사용자에게 추가적인 연금재정을 부담하도록 하는 국가들도 있다. 즉, 중요한 것은 연기금 소진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연금재정이 커지는 가운데 사용자와 노동자, 고소득층과 중간층 및 저소득층 등 각 사회 주체의 재정 분담 구조를 어떻게 구성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 연금개혁이 중장년에게 유리하며 현 청년세대에게 불리하다는 것, 이 역시 왜곡이다. 일단 2026년에 소득대체율 인상이 이루어진다면 향후 가입할 수 있는 기간이 많이 남을수록, 즉 연령이 낮을수록 보장성 강화 효과는 커진다. 만약 재정중심론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보험료만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은 유지하거나 낮췄다면 지금 청년세대에는 더욱더 불리한 연금개혁이 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보장성 강화 수준이 낮아 별로 효과가 없을까 봐 걱정이다. 2007년 연금개혁으로 국민연금 수준을 대폭 깎으면서 이전 가입 기간이 긴 앞 세대 일부가 청년세대보다 연금액이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소위 혜택을 많이 보았다고 하는 현재 노인 세대의 국민연금 평균 급여 수준은 70만 원을 넘지 못한다. 충분한 가입 기간을 확보하지 못했고, 비수급자도 많은 세대이다. 오히려 앞 세대는 앞 세대대로, 청년세대는 청년세대대로 어떻게 충분한 노후보장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맞다.

한편, 일부에서는 보험료 인상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중장년에게 유리하다는 주장도 하지만, 국민연금 보험료를 일시에 9%에서 13%로 올리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안이 소위 보험료 인상 속도를 연령대별로 차등화시키는 안을 내놓은 적도 있지만, 이는 약 15년 동안 출생 연도별로 보험료를 달리 부과하는 복잡한 안으로 사회보장 재정의 기본 원칙인 ‘부담능력에 따른 부담’이란 원칙에 위배된다. 또한, 해당 연령 기준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변화에 따른 혜택의 차이를 보상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물론 국민연금이란 사회보장제도는 낸 만큼 받는 제도도 아니고, 서로 다른 생산력과 인구구조를 가진 세대들 사이에 공평성을 실현하는 것이 본질적 목적이 아니다. 안정적 노후보장 자체가 근본적인 목적이다. 또한, 후세대 생산력은 앞 세대의 기여에 기초하므로 이를 세대 간에 분배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다.

셋째, 지금 청년이 미래가 불안하고 빈곤과 불평등에 더욱 진지하게 맞서야 한다면 국민연금이란 사회보장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한국 국민연금은 재분배 효과가 상당히 크며, 죽을 때까지 실질가치를 보전하면서 노후보장을 하는 유일한 사회보장제도이다.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은 이를 대체할 수 없다. 보험료를 내면서 수급권이 생기는 국민연금의 안정성은 기초연금이 대신할 수 없다. 청년세대가 노인이 되는 2060년대 이후에도 노인빈곤율이 30% 가까이 된다면 이는 재앙이다. 일정한 수준 이상의 사회보장의 역할, 즉 국민연금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이다. 연금재정 ‘부담’의 질서를 바꾸어 부담 능력에 따른 부담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지금 청년세대에게 오히려 더 필요하다. 여기에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이나 특고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가입 책임 등을 실현하면서 가입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개인으로 생애의 흐름은 직선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순환이다. 낡디낡은 직선의 역사관은 극복된 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세대에 관해서는 의도적으로 이런 직선과 대립의 사고를 지금에 와서 널리 퍼뜨리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정치적으로 유용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세대의 상호의존성과 주기적인 부양-피부양 관계의 교차는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이며 본질적이다. 이를 평등하며 안정적인 방식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공적연금을, 인구구조를 빌미로 공격하는 것에는 분명 악의가 있다. 특히 일부의 반감을 모든 청년의 것으로 과장하는 것은 여론을 호도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시민을 우민화시켜서 양치기가 되려고 하는 자들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란 법이 없다.

일부에서 각자도생을 선언하지만, 국민연금과 세대 갈등에 관한 논쟁이 세대 간 상호의존과 순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 사회의 청년은 그렇게 쉽게 호도 당할 존재는 아니다. 물론 초고령사회에서 사회보장제도를 발전시키는 것은 난이도가 높은 과제이지만 이를 포기하거나 ‘사회적인 것’을 무작정 축소한다면 보통 사람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

개인을 묶어내는 사회라는 요소가 없다면, 즉 사회라는 기반 없이 무엇이 가능할까? 이제야 우리 삶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공적 노후보장’을 비롯한 국가복지를 최소화시키고자 한다면, 걸신이 들려 결국에는 자기 몸을 먹어 치워 버렸다는 신화 속 탐욕스러운 존재가 바로 우리 자신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월간<복지동향> 2025년 05월호(제3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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