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don Winner
번역 심용석_센터회원
기술이 ‘단순한 도구’ ― 즉, 주워 들어 사용한 다음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물이라는 ― 라는 현혹적이지만 궁극적으로 잘못된 개념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는데 주요한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다. 도구/사용 관점이 놓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기술적 실재와 맺는 관계에 관한 기본적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모든 측면에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거대하고 복잡한 그리고 인공 시스템에 대한 우리의 절대적인 의존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에 구조를 제공하고 있다.
북반구의 국가들의 경우, 그러한 의존이 번영과 자유에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거대-규모의, 지리적으로 확장되는 기술은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하며, 이전 세대가 직면하였고 여전히 지구상의 몇몇 국가들을 괴롭히고 있는 하루하루의 생존이라는 긴박한 요구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
그러나 지금 또다시 기술적 복잡성이 지닌 좀더 문제시되는 측면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복잡한 기술적 시스템에 대한 의존이 지닌 문제는 취약성이라는 원천으로 어렴풋이 드러난다. 근대적 삶을 받쳐주는 시스템의 어떤 중요한 요소가 중요한 시기에 작동하길 멈춘다면, 우리의 번영, 자유 그리고 안락한 삶은 위협을 받게된다. 당신도 기억하고 있듯이, 이는 Y2K 프로그래밍에 의해 야기될 수 있는 재앙과 다를 바 없는 시스템 붕괴의 가능성에 관해 사람들이 괴로워하던 1999년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즉, 에너지망(energy grid), 항공운송, 뱅킹 시스템(banking system) 그리고 다른 시스템들이 사회를 혼돈으로 몰아갈 수 있는 컴퓨터 오작동으로 인해 붕괴할 수 있다는 광범위한 두려움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곳 저곳에서의 나타난 사소한 오류들에도 불구하고, 예견되었던 Y2K로 인한 혼돈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1999년의 마지막 몇 개월 동안, 취약성에 대한 인식은 대중들의 히스테리 위로 자리잡았다.
취약성에 대한 대응들
우리 사회가 취약성에 관한 공포에 관례적으로 대응하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의 전략은 기술적 장치와 시스템이 잘-작동하고 있으며(well-engineered), 재난과 다를바 없는 실패에 보호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공학자들과 시스템 설계자들은 구조적인 부분들이 견뎌내야만 하는 표준적 부하(負荷, loads)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또한, 많은 시스템들이 어떤 부분이 실패하면, 다른 부분이 대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좋은 설계 및 엔지니어링은 이야기의 일부분일 뿐이다.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인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취약성과 맺는 관계는 꼭 이렇게 이루어지지만은 않는다: 그들은 중요한 기술들이 항상 건강, 안전 그리고 편안함을 위협하는 방식들을 통해 붕괴되지 않고 믿음직스럽게 작동할 것이라는 분별력 있는 기대로 유지되는 일종의 신뢰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상보적이다; 또한, 신뢰는 기술적 시스템 스스로의 구조와 작동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많은 중요한 구성요소들은 우연적인 혹은 숙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간섭(interference)의 가능성에 열려있다. 전력선, 전화선, 가스 파이프라인, 댐, 수도(水道), 철도, 비행기, 정교한 건축물과 같은 것들은 종종 세상에 어느 정도 노출되어 조사할 수 있으며, 그들의 작동을 막는 간섭과 같은 것들에만 최소한으로 보호된다. 수십년간, 상식이지만 그다지 이야기되지 않던 기대는 번창하고 있는 산업 사회의 사람들이 전지구적 기술적 질서의 중요한 부분의 활동을 분열시키거나 파괴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복지가 주요한 복잡한 기술들에 달려있고, 파괴적으로 행동할 이유가 없고 당연하게도 법률이 명백한 사보타지는 처벌하기 때문에 그들[주요한 복잡한 기술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예외들도 존재하는데 이러한 것들로는 특히, 20세기 초의 무정부주의자들이 때때로 일으킨 폭탄테러, 좀더 최근에 있었던 웨더멘 그룹(the Weathermen)과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의 파괴행위,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 그리고 유나바머(Unabomber)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개인들과 복잡한 시스템 사이의 개방(開放)과 신뢰의 관계는 꽤나 잘 회복되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방식에 관한 훨씬 다른 이해방식은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공화국과 김일성의 북한과 같은 폐쇄적이고, 감시되고 있으며, 전체주의적인 사회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체제들은 자국민들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술의 설계를 고정시키고 통치와 감시를 위한 거대한 시스템을 설치한다. 이러한 종류의 전략 널리퍼진 의심과 핵심적 기술의 강압적인 보호 을 채택하는 사회에서 시민의 자유의 파괴는 피할 수 없다.
만약, 오랫동안-지속된 개방과 신뢰의 전통이 갑자기 널리퍼진 취약과 불안에 의해 어려움에 처한다면 우리 사회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우리의 권리,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적인 제도는 생존할 수 있는가?
파괴에 적합한 매개물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와 국방성에 가한 공격과 이후의 탄저균의 위협의 여파에서, 그러한 질문들[즉, 바로 위에서 제기된 두 개의 질문]은 긴급한 것으로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였다. 미국인들은 현재, 그들의 취약성을 매우 깊이 인식하고 있다. 댐, 저수지, 다리, 발전소, 화학 공장, 수도(水道), 전력수송라인, 천연액화가스 탱크 심지어는 일상적인 편지와 음식 공급 시스템까지도 모두 공격에 매우 노출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정도는, 9월 11일에 보스턴에서 출발하여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빌딩(twin towers)으로 향했던 두 대의 비행기 모두 허드슨강 유역의 나의 집 위를 비행했다는 것이다. 만약, 비행사가 그 지역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고자했다면, 훨씬 나은 목표는 60마일 남쪽에 위치한 인디언 포인트(the Indian Point) 전력소에 있는 원자로였을 것이다. 이 설비들이 비행기에 의한 직접 충돌을 지탱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대폭발과 아마도, 핵연료가 허드슨강의 진흙과 물로 침투해갈 핵심부 멜트다운을 야기하였을 것이다. 그 결과 방사능 증기와 파편에 오염된 물은 순식간에 수천명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었을 것이고, 북동부 지역의 대부분을 영원히 거주할 수 없는 곳으로 변화시켰을 것이다. 아마도,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세계무역센타의 상징적 가치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더욱 파괴력을 지닌 목표인 미국의 103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무시했다는 사실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의존하는 기반시설들 내에는 본질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보호가 느슨한 많은 다른 부분들이 존재한다. 국가의 컨테이너 화물 시스템은 좋은 사례를 제공한다. 매년, 대략 6백만개의 봉인된 컨테이너가 세계 곳곳에서 도착한다. 현재 이들 중 오직 2퍼센트만이 검사를 받는다(비록, 새로운 국제적 프로그램이 5-10퍼센트의 수준으로 이를 끌어올리고자 추진중이지만). 만약 누군가가 핵장치나 더러운 폭탄을 만들거나 구입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을 배달할 손쉬운 방법은 컨테이너 수송선으로 그것을 나르고 지정된 순간에, 터트리는 것이다. 다시 일어난 악몽: 어느날 아침 텔레비전을 켜고 샌프란시스코, 산페드로 혹은 뉴욕이 그러한 커다란 철로 된 틀상자들[즉, 컨테이너] 중 하나에 숨겨져 있던 무기로 인한 핵폭발로 인해 평평해졌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물론, 수많은 다른 끔찍한 시나리오들도 가능하다. 만약, 누군가가 그것을 사용할 욕망이 있다면, 최대한의 파괴에 적합한 이미 활용가능한, 유연한 운반 시스템은 최근 수십년간 아일랜드, 영국 그리고 중동에서 너무나 자명한 사실로 드러난 자동차이다. 현재 23억만대의 등록된 차와 트럭이 미국에 있으며, 오클라호마 시(市)의 폭탄테러는 노출된 사회에서 이미 활용가능한 화학적 약품들로 만들어진 폭발물을 임대차에 싣는 것과 도시의 중심에서 그것을 폭발시키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보여주었다. 마치, 이전에 상업적 비행기를 날아다니는 폭탄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미국인들은 비록 때때로 중동과 세계의 다른 문제시되는 지역에서 자동차들이 그러한 역할로 사용되었음에도, 그들이 애용하는 자동차들을 유연하고, 편재한 파괴의 장비로 여기지 못했다.
노출되어 있고 복잡한 그리고 지역적으로 확장된 기술적 시스템이 지닌 취약성에 대한 인식은 전혀 새롭지 않다. 기원후 537년에 고트족 족장인 비티즈(Vitiges)와 그의 군대는 로마를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비티즈의 전략에서 중요한 부분은 로마인들이 티버강의 충분하지 못한 물줄기에 의존하도록 도시에 연결된 수도(水道)를 끊었던 것이다. 그 결과, 물 부족으로 인한 도시의 약탈을 피하고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로마에서 도망쳤다. 학자들은 로마제국의 몰락을 야기한 다양한 발전들에 관해 오랫동안 토론해왔다. 그러나 지리학자인 그레이 브레친(Gray Brechin)이 『샌프란시스코 제국(Imperial San Francisco)』에서 관찰한 것처럼, ‘수도(水道)의 파괴는 결과적으로 한때 스스로 세계의 중심(the caput mundi)이라고 떠벌렸던 도시의 지배를 끝내 버렸다.’
신뢰의 철회
9월 11일의 참혹함을 경험한 이후, 현재 세계의 중심인 미국은 자신의 취약성의 드러남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들을 강구하고자 투쟁해오고 있다. 이러한 지점에 도달하고자, 대부분의 강조는 테러리즘에 대항하여 안보를 장려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혐의를 두는 무식한(muscular) 사회기술적 교정을 작동시키는 신뢰에서 불신으로의 급격한 전환에 중점을 두고 있는 상황이다.
9·11 테러리스트의 구체적인 의도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그들의 목적 중 하나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 훨씬 덜 개방적이고, 덜 자유로운 것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라면, 그들은 확실히 성공한 셈이다. 현재, 미국인들은 여행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정치적 발언의 영역을 좁히고 있으며, 점차 증가하는 불투명한 통치에 맞춰 사는 방식을 배우고 있다.
미국-패트리어트 법률(the USA-PATRIOT law)이라고 하는 불길한 조항과 더불어, 우리는 현재 이메일과 인터넷 브라우징(browsing)을 포함하는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의 기록들에 관한 정보를 제한없이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받았고 따라서, [소설 『1984』에서 제기한] 오웰식의 조치를 실시할 수 있는 ‘정보분석과 기반시설보호국(Directorate for Information Anaysis and Infrastructure Protection)’을 산하에 두고 있는 ‘국토안보법령(the Homeland Security Act)’을 시행하는 기관을 눈앞에 두고 있다. 또한, 그 법령에 의해 전례없는 차원까지 편집증적으로 기술 혁신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국토안보진흥을 위한 프로젝트청(the Homeland Security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이 설립되었다. 이러한 운영은 이미 미국방부에서 인간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두려워하였던, 모든 것을-보는 전자 판옵티콘(electronic Panopticon)을 구축하고자하는 통합정보인식시스템(the Total Information Awareness System)이라는 명칭으로 시행되었다. 통합(전체주의적인 것 아닐까?)정보인식시스템이 부과하는 것은 공신 문서를 파괴하고, 의회의 심의를 방해했으며, 이란-콘드라 스캔들(Iran-Condra scandal) 동안에 저지른 다섯 가지 중죄에 의해 유죄를 선고받았던(나중에 항소를 통해 번복되었다) 은퇴한 존 포인덱스터(John Poindexter) 제독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거의 1년만에 그리고 놀랍게도 거의 토론 없이, 부시 행정부와 이에 따라가기만 하는 의회는 사람들을 시민이라기보다는 혐의자로 정의하는 식으로 삶의 방식을 변형하고 있다. 대중정책과 대중기금마련(주제와 무관하게)에 관한 모든 고려에서, 테러리즘과 안보가 현재 압도적인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른 대응으로는 심지어, 이민 판사가 이민자들의 석방을 명령한 경우에도 법무장관이 그들을 구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미국이민법에서의 변화가 있다. 부시대통령은 테러리스트 행위의 혐의가 있는 외국인을 다루기 위한 특별한 군사적 심사국 즉, 미국의 법률과 헌법에 의해 제공되는 많은 보호들을 결여한 법정을 만들고자 행정적 명령을 공표하였다. 이러한 경로를 따라 수백 명의 회교도와 아랍인들이 범죄를 저지르기도 전에 혹은 이민이라는 지위를 위반하기도 전에 구류되었다 이는 미국헌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9·11테러가 발생한지 1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누가 일으켰는지 그리고 무슨 이유 때문에 일으킨 것인지에 관해 정확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비밀과 혐의의 그림자가 점차 미국에 내려앉음에 따라, 국가의 기술적 기반시설에 관한 유용한 정부의 정보 수계(水系, water system), 원자력 발전소, 화학공장 및 유사한 것들에 관한 웹사이트 는 제거되거나 내용의 접근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학자의 경우, 완전히 세속적인 질문이라 여겨지곤 했던 것 기술적 시스템의 구조와 작동 에 관해 연구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졌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던 대중적 정보로 여겨지곤 했던 것이 지금은 스파이와 파괴 공작원(saboterus)의 손에서 보호받아야할 중요한 국가적 ‘지식(intelligence)’으로 여겨지고 있다.
새로운 정부의 법률 제정과 규제의 물결이 현재 주 의회(state legislatures)에 의해 통과되는 막대한 반-테러법(anti-terrorist laws) 어떠한 이유로든 반드시 감시되어야 하는 시민들의 활동을 모니터하는 공권력을 강화하는 특징을 지닌 에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테러활동의 정의는 때때로 넓은 범위의 정치적 활동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가령, 대중의 데모를 조직하는 것도 [테러에] 포함될 정도로 너무나 광범위하고 모호하다. 시민자유그룹들(Civil liberties groups)은 정치적 저항의 일상적 형태가 테러리스트로 정의되고 억압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는 가령, 최근에 시애틀과 다른 도시들에서 일어난 세계화에 저항하기 위한 대중의 집회도 포함될 것이다.
불행히도, 시민의 불만 시대에 자행된 정치적 억압의 에피소드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팔머 레이드(Palmer raid)[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 초에 있었던 사건으로,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으로 러시아 이민자들을 축출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계 미국시민들을 감금한 사건 은 미국의 역사에서 너무 흔한 것들이다. 국가가 위협받는다고 느끼면, 자유는 두들겨 맞는다.
대중들의 냉소
9·11 공격 이후의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토크쇼 그리고 신문의 사설에서는 테러리즘을 광범위하고 느슨한 그리고 공격적인 용어로 정의하는 강력한 경향이 존재한다. 또한, 비슷한 경향이 모든 곳에서 입법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지난봄, 메릴랜드 하원은 확장된 반-테러법을 단번에 통과시켰다. 메릴랜드 하원의 다나 리 뎀브로우(Dana Lee Dembrow)는 ‘나는 이 법안이 기본적으로 무단으로 도청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므로 아마도, “절대 안돼”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 하지만, 9월 11일에 발생했던 일 이후에는 나는 그들[즉, 도청될 대상들]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국가의 안보에 대한 강박관념은 이제 대중들의 삶에 냉소와 ‘얼마나 더 각박해질 것인가?’라는 질문만을 가져다주고 있다. 가령, 1960년대 이래로 전자자료시대(the age of electronic data)의 프라이버시와 개인의 자유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시민들은 국가, 기업 그리고 사적 개인들의 감시에 자유로워야만 한다는 거친 합의가 형성되었다. 그 합의는 확산된 감시가 필수적이고, FBI의 카니보어 (Carnivore, 모든 이의 이메일과 인터넷에서의 활동들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와 같은 정교한 시스템이 국가를 방어하는데 필수적이다는 믿음에 의해 제거되고 있다.
9·11 이후의 안보에 대한 조치에서, 미국 헌법의 방어막은 심각할 정도로 약화되어가고 있다. 즉, 헌법개정 제4조(the fourth amendment)은 ‘비이성적인 수색과 체포에 대항하여 친지, 가족, 신상기록(papers) 그리고 자산(effects)을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는 위반되어서는 안되고, 이에 대해서는 어떤 단언 혹은 확신에 의해 주장되는 있음직한 근거와 수색될 필요가 있는 장소와 체포될 필요가 있는 사람 혹은 소지품들을 제외하곤 어떠한 경우라도 문제제기 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미국-패트리어트 법령이라는 조항은 규제당국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관없이 어디든 수색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정당성을 부여한다.
슬프게도 시민사회에 대한 이러한 조치가 전체적으로 과도하게 확산되고 있다. 혐의가 없다고 판명되길 기대하면서, 많은 미국인들을 감시하고 스스로-검열하고 있다. 최근 몇 주간 사람들이 ‘반-테러리스트 법률에 관해서 걱정하지 않아요. 어쨌든, 난 규제당국이 관심을 가질만한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거에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 확실히, 애국심은 사람들에게 순종할 것과 예측할 수 있음을 요구한다.
9·11 공격이 일어난 직후, 공포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는 테러리즘에 대한 일상적 경계에 관하여 안보 전문가들에게 묻는 NPR[National Public Radio의 약자이며,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이다]에서 진행된 뉴스 프로가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무엇을 살펴보아야 하는가? ‘일반적이지 않는 행위(unusual behavior)’의 조짐을 보라고 한 전문가는 충고하였다. 이는 어떤 장소에 맞지 않은 옷들을 입고 있거나 특별한 장소 혹은 행사에 적합하지 않는 것들을 말하거나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을 포함한다. 내가 들었던 것[최근 몇 주간 자주 들었던 것]처럼, 위험스러운 ‘일반적이지 않는 행위’라고 규정된 것이 단순히 다양한 자유의 형태 좋아하는 것을 입는 것,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 대중 속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 라는 점은 나를 놀라게 하였다.
안정적인 구조가 무너질 때
9·11 테러리스트들의 구체적인 의도를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 중 하나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 훨씬 덜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것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라면, 그들은 확실히 성공한 셈이다. 현재, 미국인들은 여행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며 그리고 정치적 발언의 영역을 좁히고 있다. 법무부의 ‘테러리스트 정보 보호 시스템(Terrorist Information Protection System, TIPS)’과 같은 프로그램들에서는 사람들을 시민보다는 혐의자로 정의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삶을 변형하고 있다. 대중 정책에 관한 모든 논의에서(주제와 상관없이) 테러리즘과 안보는 최우선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수도(水道)가 단절되자, 6세기의 로마인들이 도시를 버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인들도 지난 2세기 동안 발전시킨 민주주의적인 시민 문화의 본질적인 부분을 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오싹한 사건들의 순환은 확실히 공공 건물과 공공 영역의 물질적 특징에서 명백하다. 워싱턴을 방문하면, 장소(the place)가 보안 수색을 시행하고 편재(偏在)하는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는 추악한 시멘트 장벽으로 변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워싱턴은 예전에-간직하던 사상, 표현 그리고 운동의 자유가 수용되기에는 너무 위험한 사치품으로 여겨지는 이상한 새로운 나라 즉, 고국의 수도로 재정의되고 있다. (시민들은 물어야만 한다: 고국이 이전의 미국과 같은 헌법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가?)
현재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테러를 외부에서 갑자기 도착한 즉, 세상의 다른 부분 출신의 ‘악마적 행위자(evil doers)’가 그렇지 않으면 만족스럽고 조화로운 사회에 고통을 주는 무엇이라고 여긴다. 명백히, 그러한 관점에는 많은 진실이 담겨있다. 어딘가에 죽음과 파괴를 가져올 준비가 되어있는 사악한 행위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경험한 테러 이제 일상생활을 괴롭히는 불안 는 우리가 지난 세기에 매우 독창적으로 건설하였던 바로 그 시스템에 거주한다. 근대적이고 복합적인 기술들은 자연적 실재에서 막대한 양의 능력을 얻고, 이러한 능력을 통제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게끔 유도함으로써 성공해왔다. 불행한 가능성은 결코 완전히 제거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막대한 힘들은 원래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 건설된 시스템과 기반시설에서 다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해방되었다. 최근에, 이러한 종류의 두려움들은 간간이 일어나는 기술적 사고 가령, 챌린저호의 폭발사건 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그러한 불안은 지구 온난화를 포함한 환경 재난에 관한 현재의 증거를 강조한다. 수세기 동안에 거쳐 기술이 통제적으로 사용한 화석 연료는 기후에 통제불가능하고 매우 파괴적인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9·11 공격에 이어, 대재앙의 지평도 변하고 있다. 제트기라는 위업은 고-에너지 연료(이것의 연소가 빠른 비행을 가능하게 해준다)를 포함하고 이끈다; 초고층 빌딩의 엔지니어링이라는 위업은 독창적으로 강철과 다른 재료들의 무게가 얼마가 되든 그것들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붕괴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명백하게 위험한 위치[가령, 뉴욕의 한복판]에도 불구하고 중력의 문제를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러한 위업들이 지닌 물리적 잠재력이 원래의 청사진이 지닌 방식과는 다르게 갑자기 풀려난다면?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한 테러는 놀랄만한 두 개의 근대의 기술 초고층 빌딩과 제트기 이 지닌 능력이 함께 충돌하여, 양자의 시스템이 신중히 수용하고 있던 능력이 엄청난 폭발, 지옥 그리고 붕괴로 풀려 나왔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테러리스트의 뛰어남은 안정적인 구조의 해체를 야기한 과정을 작동시켰다는 것이다.
근대적 기술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 깊게 묻혀진 것은 우리가 통제하고자 하는 능력이 우리의 명령에 벗어나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우리를 파괴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공포이다. 이러한 종류의 지각은 최악의 공포를 대중적 오락으로 전환시킨 공상과학소설과 이전 세기의 영화에서 끊임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종이들 그리고 영상 스크린을 넘어서 현재는 긴급한 질문이 들려온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대규모로 기계화된 힘을 지닌 시스템들을 민주주의라는 문화를 압도하기 시작하기 전까지 소개할 수 있는가? 우리가 복잡하고, 단단하게 맞물리고, 지리적으로 확장되고, 강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불안정한 시스템을 건설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결과는 폭발을 기다리고 있는 똑딱거리는 시한폭탄들로 가득 찬 세상이다.
요새심리(A Fortress Mentality)
이번 테러에 대한 현재의 미국의 반사적인(knee-jerk) 대응은 분열을 막기 위해 시스템을 경화시키는 친숙한 전략이다. 중요한 시스템에 새로운 방어막을 건설하고 있고 내부 구성요소들을 강화하고 있으며, 그 주위에 정교한 방식의 단속과 감시를 실시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계속된다면, 기술적 시스템을 견고화하는 전략은 경제적 자원들을 유출시키는 중요한 근원이 될 것이고, 자유와 시민의 권리 모두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 미국인들과 그들의 리더들은 심지어 그들이 미국의 제도들을 급격히 낙후시키고 ― 이를테면, 기금과 수행능력(commitment)이 부족한 학교들을 더욱 궁핍하게 하는 것 ― 민주주의적인 사회성이라는 구조를 약화시킨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비용들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불행히도, 새로운 조치들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지난봄에 공개된 교통부(the Department of Transportation)의 연구는 새로이 강화된 공항보안게이트를 통과해 무기들을 밀수입하려는 시도에서 총기류 30%와 칼 70%가 경비원과 스캔장비를 뚫고 통과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핵발전소의 보안에 관한 비슷한 테스트들도 실망스러운 결과들을 보여주었다; 이 시설들의 방어막을 깨뜨리는 것은 꽤나 쉬워 보인다.
오랜 기간동안의 복잡한 시스템을 통치하려는 인간의 요구는 아마도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아마도, 9·11 직후 금문교(the Golden Gate Bridge)가 테러리스트의 목표물이라는 풍문이 돌던 때를 기억할 것이다. 여행은 잠시동안 금지되었고 이후에 국가경비대가 금문교에서의 통행을 감시하고자 동원되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의 방송은 정확히 당신이 예상했던 것 즉, 경비대원들이 주위에서 서성대고, 지루해하며, 수다를 떨었지만, 통행하는 자동차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최상급의 전국적인 테러리즘 경계태세이다!
이러한 종류의 결점에 직면하여 더 많은 돈을 사용하고, 좀더 복잡한 장비들을 설치하고, 더 많은 보안직원들을 고용하고, 대중들을 혼란(hassle), 수색, 감시 그리고 불신이라는 악순환으로 종속시킴으로써 우리의 노력들을 배가하려는 요청들이 제기된다. 우리를 먼 곳에서 바라보고 있는 공정한(impartial) 관찰자는 아마도 이러한 첫걸음들이 미국인의 삶의 방식을 얼마나 재빨리 그리고 철저히 변형시키지 시작하는지 당혹해할 것이다. 왜 국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테러에 대응할 수 있는 풍성한 방식들은 알아보지 않는가? 왜 미국인들은 개방, 신용 그리고 자유이라는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좀더 노력하지 않는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국가는 현재 ‘악의 축(axis of evil)’에 속한다고 이야기되는 국가와의 전쟁을 준비중이다. 또 다시, 이는 테러의 몇몇 기반을 ‘여기에서(in here)’ 즉, 하이-테크식의 삶의 방식을 지탱하는 바로 그 구조물 내부에서 인식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형편에 따라 테러를 ‘외부의(out there)’ 무엇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더 안전한 시스템을 향하여
나의 견해는 미국의 리더들이 현재 선호하는 일종의 반사적인(knee-jerk) 군사적 대응, 오웰이 예견한 감시와 인권에 대한 선제공격보다 9·11테러에 대응하는 훨씬 나은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근대의 문명의 바로 근원에서 발견되는 불안정과 공포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치들이다. 따라서, 느슨하게 결합되고 관용적인 즉, 쉽게 붕괴시킨 다음, 재빨리 회복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기술적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확실히, 항상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전지구적인 공급에의 의존을 촉진하는 것보다는 지역적으로 활용가능하고 회복할 수 있는 에너지와 물적 자료들에 의존하는 것이 합당하다. 기술관료와는 달리 다양한 역할과 상황 속에서 우리가 알게되는 지역적 공동체의 사람들에 의해 작동되는 기술에 의존하는 것이 건전할 것이다. 또한, 자연으로부터 획득한 억압적이고, 위험이-깔려있는 능력에 대한 우리의 의존을 줄이기 시작하기에 적기인 것처럼 보인다. 이제 우리는 안다: 이러한 능력들이 부서지기 쉬운 환경시스템뿐만 아니라, 자유라는 생존환경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히도, 인간의 지식의 풍부함은 오늘날의 복잡한, 전력-중심적(power-centered), 지구적으로 확장된, 점차 전쟁에 굶주린 공룡에 대한 대안이며 동시에, 실행 가능한 시스템을 제시할 수 있다. 좀더 평화적이고 탄력있는 시스템의 구성이 정의와 연민과 더불어 지구에서 쾌활하게 살고자하는 목적에 따르는 상상적 노력[현재는 시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상상적 imaginative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 중 많은 것들은 잘 진행중이다) 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또한, 이 경로를 따라 점점 이동하는 것은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야기하는 기반으로 여겨지는 세상 사람들의 고난을 제거하는 것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현재의 히스테리, 묵인 그리고 정치적 기회주의의 분위기가 진정되듯이, 반드시 우리의 공포에 불을 붙이는 것보다는 우리의 신뢰에 혜택을 주는 제도들을 건설할 수 있는 노력들을 새로이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시작될 것이라 믿는다.
* 랭던 위너는 렌슬러 대학(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의 교수이며, 주된 관심사는 근대의 기술적 변화를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이다. 이 글은 넷퓨처(NetFuture)라는 뉴스레터에 위너가 2002년 10월에 기고한 글이며, 9·11 테러라는 사건을 통해 복잡한 기술 시스템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있다. 전문은 http://www.netfuture.org/2002/Oct2202_137.html에서 볼 수 있으며 원제는 「COMPLEXITY, TRUST, AND TERRO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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