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6-26   541

<경제프리즘> 패키지 조세개혁으로 빈부격차 완화를

단적으로 말해, 세금은 부자에게 걷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는 것이 옳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야 인류는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경제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크고 작은 공황을 불러 왔다. 시장이 실패하자 곳곳에 광적인 전체주의자들이 득세했고, 마침내 러시아는 사회주의를 선택했다. 전쟁과 혁명은 불평등한 사회에서 불가피한 돌파구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는 미국의 뉴딜정책을 공유하며 복지국가를 지향하게 된다. 서로 나눔으로써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안정과 평화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복지국가 조세제도는 세계대전과 경제공황의 산물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과정에서 기존의 조세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면 조세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좀더 분명해 진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전비조달을 목적으로 소득세 최고세율을 77%까지 올렸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미국의 재무장관 앤드류 멜론은 최고세율을 24%로 떨어뜨린다. 이는 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에 맞게 전후 시장과 정부의 기능을 되돌려 놓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929년 세계는 경제대공황을 맞이한다. 이전에도 공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공황은 그 규모가 전례 없는 것이었다. 1300만 명의 실업자와 마비상태의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하여 소득세 최고세율은 다시 55%까지 치솟았고,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뉴딜정책이 추진된다.

대자본가들이 뉴딜정책의 지속적 추진에 반대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부유한 사람들을 더욱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의 기준이다”라는 말로 뉴딜정책의 방향을 분명히 하였다. 케인즈의 이론에 따라 자유방임적 경제주의를 포기하고 정부가 일정 부분 통제를 가하는 수정자본주의 모델을 채택하여 경제운용의 기본 틀로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한편 경제 대공황으로 다급해진 미국이 유럽에 빌려준 돈을 회수해 가자 유럽도 공황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나라는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겨우 경제가 회생 기미를 보이던 독일이었다. 이때 히틀러가 등장했고 그가 제시한 전체주의를 위기의 돌파구로 받아들인 독일 국민들은 광적인 지지를 보내게 된다. 히틀러는 가망 없는 경제위기를 전쟁으로 해결하려 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고율의 소득세제를 위주로 한 미국의 조세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보장정책을 확대 실시하여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고, 마셜플랜이라는 유럽부흥계획을 만들어 다른 나라의 경제적 안정을 도모했다.

미국인들의 조세부담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정책들은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에서 나온 실천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가진 자가 무한정 베푸는 것이 아니라 가진 자도 사회도 함께 성장하기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것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

사회적 비용이 확대되더라도 사회구성원들이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보장된다면, 그들이 다시 기업의 건전한 소비자가 됨으로써 광범위한 소비계층을 기반으로 기업들이 안정적인 영업활동을 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한 레이건의 감세정책

혹자는 공급주의 경제학의 조세정책 틀이 감세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레이건 대통령이 채택한 공급주의 경제이론은 감세를 하고 정부지출을 줄임으로서 저축증가와 이자율이 낮아지면 궁극적으로는 투자의욕이 살아나 경제 활력을 준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감세는 주로 자본가나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수요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케인즈식의 감세와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공급주의 경제학은 인플레이션으로 점차 과도한 세부담을 지게 된 개인들의 불만이 원동력이 됐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명목소득이 올라가자 미국인들이 내는 소득세는 가만히 앉아서도 늘어만 갔다. 1970년대의 미국 의회는 실질소득에 근거하여 세부담의 형평을 추구하지 못하고 그 혜택을 기업이나 특정산업에 돌려주기에 급급했다. 이에 반발하여 레이건은 1981년부터 3년에 걸쳐 소득세를 23% 삭감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 정책 또한 강한 미국을 표방하며 군비지출을 삭감하지 못하여 재정적자를 확대시킴으로서 경제정책이 아닌 인기영합정책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는 감세와 재정지출의 확대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정책을 동시에 취하였기 때문이다. 레이건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레이건이 제시한 달콤한 사창발림 정책의 유혹은 뿌리치기 어렵다. 세금을 적게 내고도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유혹의 말이다.

그러다 보니 조세정책의 수정을 요구하는 압력은 수시로 분출하고 있고 이에 대한 해법으로 각 국 정부의 자본에 대한 의존도는 지나치게 확대되고 실정이다. 그 해법이 수정자본주의 틀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임은 지난 전쟁과 경제공황을 통해 충분히 학습한 바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세계는 정부통제를 벗어난 자본이 득세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부유세가 지지 받는 이유 고민해야

지난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은 당 조세정책의 핵심을 부유세로 집약해 공약화했다. 복잡하고 예외 규정이 많아 이해하기 어려운 조세제도를 지극히 단순화하여 이해하기 쉽게 ‘부자에게 세금을’이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 슬로건은 또한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간결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시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 문제란 세계대공황 이전에 나타났던 시장의 실패징후가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10가구 중 3가구는 빛 얻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한국의 빈곤층 비율이 OECD국가 중 2위이며, 개인파산자 수가 작년대비 5배나 증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투기 등 불로소득을 통한 부의 축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좌절시키고 있다.

게다가 투기소득을 얻은 이들은 불로소득의 꿀맛을 좀더 오래 누리기 위하여 과세형평을 도모하려는 노력을 온갖 논리를 동원하여 저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바로 잡으려는 정부의 노력은 자본의 위협 앞에 맥을 못 추고 있다.

빈부격차 완화를 위한 조세개혁 절실

이렇듯 시장의 실패를 보여주는 징후는 국민들을 점점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확산속도로 보아 정부마저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빠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조세를 통한 사회적 불평등 해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이다.

날로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조세개혁은 개별세목의 개선으로 접근하여서는 달성하기 어렵다. 연관성 있는 개혁과제를 묶어 패키지로 추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본다.

개혁의 방향은 첫째, 재산에 대해 터무니없이 낮게 과세되고 있는 특혜를 폐지하고 재산과세의 형평을 도모하는 것이다.

둘째 사업소득의 탈세수준에 맞추어 광범위하게 허용되었던 소득 저과세를 개혁하여 소득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재산 관련 소득에 대한 과세 형평을 제고하기 위하여 보유세 현실화와 종합부동산세의 도입, 양도소득세 비과세제도의 소득공제 방식으로 전환, 상장주식 양도차익의 과세 실시, 금융소득종합과세의 현실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사업소득의 탈세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영자소득파악의 제2기 과제를 실행하여야 하며 근로소득에 대한 면세점을 낮추어 근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현실화하고 이로 확보된 재원으로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현실화해야 한다. 즉 근로소득세액환급제도를 조기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노당의 부유세는 점점 극심해지는 사회적 양극화에 대처하는 조세정책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다만 복잡한 자산구성에 대한 과세를 부유세라는 단일 세목의 도입에 국한시켜 이야기하기보다, 빈부격차시정을 위한 총체적인 패키지 조세개혁의 틀 속에서 부유세를 함께 논의하는 것이 좀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세덤핑 방지를 위한 다자간 협약 필요

개별국가들의 빈부차별 시정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화가 빈곤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으며,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본은 오히려 개별 정부와 지자체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 조세덤핑을 요구하는 자본의 집요한 경쟁심은 언젠가는 자체 정화기능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각 나라들은 더 늦기 전에 국가간 조세문제를 이중과세방지를 위한 쌍무적인 협약 수준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다자간 협약을 통해 사회통합을 위한 조세의 소중한 기능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진지한 노력이 요구된다. 다자간 협약 이전에라도 조세덤핑에 맞설 수 있는 내국법 체계의 정비가 필수적이라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최영태 (회계사, 조세개혁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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