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5-10   57304

[기획2] 지역 의료격차 실태와 건강권의 길

박건희ㅣ평창군 보건의료원장

들어가며: 어디서 사느냐가 얼마나 오래 사느냐를 결정한다

2025년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는 안타까운 숫자가 담겨 있다. 시군구 사이의 기대수명 격차가 6.56년에 달한다는 것이다. 같은 나라, 같은 건강보험 아래 살고 있지만,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평균 수명이 6년 이상 달라진다.

여기에 소득수준까지 고려하면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 사이의 기대수명 격차가 가장 큰 곳은 강원 철원군(12.52년), 충북 음성군(12.47년), 전남 장흥군(12.33년)등 모두 농촌 지역이다. 농촌은 평균 수명도 짧은 데다, 소득에 따른 내부 격차까지 심한 ‘이중 불평등’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지역 의료격차의 현실을 수치로 들여다보고, 왜 이런 격차가 만들어지는지 구조적 원인을 짚은 뒤, 건강권을 보편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정책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필자는 인구 4만 명이 채 안 되는 강원도 평창군에서 4년째 지역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책임자로서, 현장의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한다.

1. 숫자로 보는 의료격차

치료가능사망률과 기대수명

의료격차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지표 중 하나가 ‘치료가능사망률’이다. 이는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막을 수 있었을 사망을 뜻한다. 2023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치료가능사망자 수는 서울이 39.55명이지만, 충청북도는 49.94명에 달한다(김명희, 2025).

단순해 보이는 이 숫자 차이를 충북 인구에 대입하면, 연간 약 165명이 지역에 따라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는 셈이다. 기대수명 격차는 소득과 지역이 겹칠 때 더 심각해진다. 수도권 상위 소득층과 농촌 하위 소득층 사이의 기대수명 격차는 17년을 넘는 경우도 있다. 출생 직후부터 이미 기대수명이 17년 이상 차이 나는 두 아이가 같은 나라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접근성 격차

2021년 기준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90분 이내에 닿을 수 없는 인구 비율이 강원도에서는 25.1%에 달하고, 응급실까지 30분 안에 갈 수 없는 인구 비율은 전남에서 35.9%나 된다(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 2022). 수도권의 해당 수치는 사실상 0%에 가깝다. 이 수치는 다소 시간이 지난 것이나, 보건복지부 고시(제2024-261호, 2024.12.)에 따르면 현재도 전국 98개 시군구가 응급의료취약지로 지정되어 있어 구조적 격차가 해소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의료 인력의 편중

인구 1,000명당 필수의료 전문의(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 등 8개 과목) 수는 수도권 평균 1.86명인데 비해 비수도권은 0.46명, 약 4배의 격차를 보인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5). 서울과 경기를 제외한 모든 시도에서 인구 1,000명당 필수의료 전문의가 1명도 되지 않는다.

표1 지역 의료격차 주요 지표.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표로 정리.

2. 지역 의료격차의 구조적 원인

지역 의료격차는 개인의 선택이나 지역 특성의 우연한 차이가 아니다. 구조적 메커니즘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낸 결과이다.

행위별 수가제: 농촌에 불리한 지불 구조

한국 의료의 지불보상 방식은 의료인이 행위를 많이 할수록, 환자를 많이 볼수록 수익이 올라가는 구조다. 행위별 수가제(Fee for Service)라 불리는 이 방식은 환자가 적은 농촌·취약지의 의료기관을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는다.
또한, 예방이나 건강 증진 같은 활동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여, 만성질환 관리, 방문 진료, 다학제 팀 접근과 같이 농촌의 고령 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들은 현행 수가 체계에서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아픈 사람을 많이 치료하는 곳’에 돈을 주는 구조가, ‘인구 적은 농촌에서 필수의료를 지키는 것’을 경제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셈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악순환

지방은 인구가 줄어들면서 수익성을 맞추지 못한 민간 의료기관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민간 의원이 사라진 자리를 공공의료기관이 메워야 하는데, 그 공공의료기관마저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게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실이 사라지면 젊은 가족들이 그 지역에 정착하기가 더 어렵게 된다.

이는 다시 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남아 있는 고령 주민들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점점 더 먼 곳까지 이동해야 한다. 필자가 일하는 평창군은 인구 약 4만 명에 고령화율이 37%를 훌쩍 넘는다. 서울의 2.4배 정도 되는 1,464km2의 넓은 면적에 흩어져 사는 주민들 중 상당수는 차를 운전하지도 못하고 동거 가족도 없어 혼자 의료기관을 가는 것 자체가 하루 종일의 일이다.

고속철도 원정 진료와 지역의료 자생력의 붕괴

지역의료에 대한 불신은 지역 주민을 고속철도에 오르게 만든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5)에 따르면 지방 환자가 서울 원정 진료를 위해 지출하는 교통·숙박비·진료비 등의 사회적 비용이 연간 4조 6,270억 원에 달한다. 지역의료 자금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지역 병원은 환자가 없어 더 쇠퇴하고, 그럴수록 더 많은 환자가 서울로 가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지자체의 책무성 부재

대한민국의 의료 재정은 주로 중앙 단위의 건강보험을 통해 운영된다. 광역·기초 지자체는 건강보험 운영에 대한 책임감을 체감하기 어렵고, 지역 보건의료 정책을 기획할 재정 권한과 인력 조정 권한도 충분하지 않다. 각 지자체에서 지역 보건의료계획을 수립하고 있지만, 계획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 GDP 대비 보건의료비는 8%를 넘어섰음에도, 각 지자체의 보건의료 예산은 전체의 1~2%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코로나19 3년간 사망자(약 3만 7천 명)보다 같은 기간 자살 사망자(약 3만 9천 명)가 더 많았음에도, 지자체가 감염병에 쏟았던 것과 같은 긴장감과 투자를 정신건강·만성질환·고령 주민 건강에 기울이지 않는 현실은 지자체 책무성의 구조적 공백을 보여준다.

3. 평창의 노력: ‘큰 병원’이 아니라 ‘촘촘한 연결’

노쇠예방관리사업: 예방이 치료보다 훨씬 저렴하다

2014년부터 평창군 보건의료원은 노쇠예방관리사업을 자체적으로 시작했다.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신체 기능, 영양 상태, 인지, 우울 등을 종합 평가하고, ‘전(前)노쇠’ 단계에 단백질 영양 보충, 근력 운동, 다제약물 관리 등 집중 개입하는 프로그램이다.

결과는 뚜렷했다. 건강보험 자료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을 유지하는 데 드는 연간 의료비는 약 50만 원이지만, 만성질환으로 악화되면 200만 원, 합병증으로 자리에 눕게 되면 2,000만 원이 넘는다. 평창군 노쇠예방관리사업을 통해 전노쇠 단계에 100만 원을 투자해 약 900만 원의 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거뒀다. 이 결과는 2025년 JAMA Network Open에 게재되어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농촌의 작은 보건의료원에서 시작된 예방 중심 일차의료가 세계 수준의 근거를 만들어 낸 것이다.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건물이 아닌 연결의 구조

평창군은 지방에 큰 병원 한 채를 유치하는 것보다 지역 주민의 삶 속에 스며드는 일차의료팀이 예방과 연결의 허브가 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논리로, 지역의료체계를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보건의료원이 중심 허브가 되어 다학제 팀 진료, 만성질환 관리, 재택의료, 상급병원 의뢰를 담당하고, 읍·면 단위의 보건지소와 오지의 보건진료소가 스포크로서 주민 곁에 붙어 있는 구조다.

허브에는 의사와 함께 간호 코디네이터, 사회복지사, 건강운동관리사, 영양사가 함께 일하며, 환자가 필요한 서비스를 한자리에서 연결받을 수 있도록 한다. 여기에 스마트폰 앱과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디지털 만성질환 관리를 더해, 거동이 불편한 오지 주민들의 건강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개입하고 있다. 또한, 2024년에는 조직을 권역별 팀제로 개편하여, 사업 중심이 아닌 사람(주민) 중심의 서비스 제공 구조를 갖추었다. 이 모형이 전국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4. 건강권이 지역에 따라 위협을 받지 않으려면

일차의료를 지역 의료의 핵심으로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 의원급 의료기관은 단독 개원 형태이다. 이런 형태로는 다학제 일차의료 팀 서비스 제공이 구조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의사·간호사·영양사·운동처방사가 함께 일하는 ‘공공 종합의원(폴리클리닉)’형태의 기관을 군(郡) 단위 의료취약지에 공공이 직접 설립하거나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미 존재하는 보건의료원·보건지소 체계를 이 모형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의과 공중보건의사 수가 줄어드는 현재의 위기는, 보건지소 체계를 혁신할 기회이기도 하다. 전문간호사(보건진료 전담공무원)가 스포크 역할을 하고, 의사 2~4명이 근무하는 허브 기관이 이들을 지원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의료취약지의 민간 일차의료기관이 더욱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일차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성과에 기반한 가치 기반 수가제 형태로 전환하고, 의료취약지 의료서비스 제공에 가산을 부여하는 방식 등이 추진되어야 한다.

재정 분권과 지자체 책무성을 제도화

2026년 2월 국회를 통과한 「지역필수의료법」은 2027년부터 1조 원 규모의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를 출범시킨다. 이 예산이 또다시 병원 건물 짓는 데만 쓰이지 않으려면,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인구 구조를 가장 잘 아는 광역 지자체가 자원 배분에 실질적인 기획 권한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그 권한에 상응하는 책무성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광역 지자체 단위의 Accountable Care Organization(ACO, 책임의료조직) 모델을 도입하여 광역 지자체의 건강보험 재정 운용에 대한 책무성을 강화하는 방안, 의료 인력의 도(道) 단위 일괄 채용·순환 배치, 지역 보건의료 계획의 실행력 평가 의무화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지자체가 단순한 ‘건축주’에서 벗어나 지역의료의 ‘전략 기획자’로 나서야 한다.

의료 인력의 지역 정착을 위한 구조 설계

2027년부터 시행되는 지역의사제는 증원된 의대 정원을 지역·공공의료에 배치하겠다는 제도이다. 첫 입학생이 10년 의무 복무를 마치는 2043년에야 결과를 볼 수 있는 장기 전략이지만, 방향 자체는 옳다. 다만 성패는 의무 복무 규정이 아니라 ‘의사가 지역에 남고 싶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자녀 교육, 문화·여가, 배우자 일자리, 협진 체계, 법적 리스크 경감 등 모든 정주 여건이 함께 바뀌지 않으면, 10년 뒤에도 수도권 쏠림은 재현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앞서 언급한 지자체의 의료 인력 정착에 대한 책무성을 강화하는 것, 그리고 지역의 상급병원이 의료취약지의 의료 인력 채용과 유지에 더욱 적극적 역할을 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사에게 체계적인 수련 기회를 제공하여, 공중보건의사 3년 근무 과정을 ‘지역의료 전문가 과정’으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역의료 경험을 경력으로 인정받고, 성장의 경로를 볼 수 있어야 젊은 의사들이 농촌을 선택할 수 있다.

디지털 헬스를 불평등 완화의 도구로

원격진료·원격협진,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만성질환 모니터링, AI 기반 스마트 의뢰 시스템 등은 취약지 주민의 의료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다. 다만 디지털 기술은 대면 의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도구로 위치지어야 한다.

고령층 중심의 농촌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주민도 많다.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로 인해 새로운 불평등이 생기지 않도록, 인프라 확충과 접근성 보장 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주민이 주체가 되는 건강 공동체

지역의료 활성화와 건강 격차 해소는 정부, 지자체와 의료기관만의 과제가 아니다. WHO는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을 통해 예술 활동, 문화 참여, 지역사회 모임 등을 건강 관리에 통합하는 것을 권장하며, 이것이 만성질환으로 인한 의료 시스템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인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문화예술이 충만하고 이웃이 서로 돌보는 ‘함께 돌보는 공동체’는 건강 불평등 해소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주민이 지역 보건 문제를 직접 진단하고 해결책 설계에 참여하는 ‘주민 참여 건강 거버넌스’ 구축도 필요하다. 정책이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목소리에서 시작될 때 지속 가능한 변화가 만들어진다.

표2 지역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 방향 요약.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표로 정리함.

나가며: ‘지역에서 건강하게 살 권리’를 위한 전환

헌법은 모든 국민이 건강하게 생활할 권리를 보장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건강권은 지역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다. 어느 시군구에서 태어나느냐, 어느 주소지에 사느냐가 기대수명과 치료가능사망률을 결정짓는 오늘의 현실은, 건강권이 여전히 선언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 준다.

변화는 가능하다. 큰 병원 한 채가 아니라 촘촘한 연결망이, 단발성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인 일차의료팀이, 중앙 일괄 배분이 아니라 지역 맞춤형 재정 기획이, 그리고 주민 참여 건강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지역에서 건강하게 살 권리는, 지역에서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와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의료 인프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교육·문화·주거가 어우러진 지역사회 전체의 회복력이 건강 불평등을 줄이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한 입법과 정책의 통합적 접근, 그리고 지속적인 공론화를 촉구한다.

| 참고문헌 |

· 건강보험공단, 「2024년 지역별 기대수명 지표」, 2025.
· 김명희, 필수의료 보장을 위한 지역화와 분권화, 제40회 인구포럼: 지방분권과 기본사회 학술대회 발표자료, 2025.11.20.
·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 「공공보건의료 통계집」, 2022.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국민중심 의료개혁 추진방안에 관한 연구」, 2025.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지역 환자 유출로 인한 비용과 지역 국립대학병원에 대한 국민인식」, 2025.
· 보건복지부 고시 제2024-261호, 응급의료분야 의료취약지 지정, 2024.12.
· Ji S, Lim J, An TJ, et al., Long-Term Health and Cost Outcomes of a 24-Week Multicomponent Frailty Intervention in Older Adults. JAMA Netw Open. 2025;8(11):e2543278. Published 2025 Nov 3.


월간<복지동향> 2026년 5월호(제3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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