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일보 공동기획> ‘공평과세, 이것이 바뀌어야 한다’ ⑥
(편집자주) 조세일보와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이 공동기획으로 ‘공평과세 이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제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이 연재칼럼은 주 1회 게재될 예정이며 조세일보 사이트(www.joseilbo.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세일보 공동기획-공평과세, 이것이 바뀌어야한다
③ 미룰 수 없는 또 하나의 선택: 과세인프라 확대 (06/11)
④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 : 주식시장에 세금을 물려라(상) (06/17)
⑤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 : 주식시장에 세금을 물려라(하)
중세 이전에는 왕이 백성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마음대로 세금을 거둘 수가 있었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는 법. 왕은 좀 더 화려한 궁궐과 강한 군대를 갖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세금을 요구하였다. 게다가 세금을 거두는 관리들도 자기 뱃속을 채우고자 왕이 요구한 것 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두었다. 가혹한 세금에 참다 못한 백성들은 민란을 일으켰고, 왕에게 멋대로 세금을 거두지 말고 법에 의해 세금을 거둘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세금에 관한 법률을 만들 때 백성들의 대표와 의논할 것도 요구하였다. 이때부터 법으로 정하지 않은 세금은 거둘 수 없게 되었으며, 이로써 탄생한 것이 조세법률주의다.
조세법률주의는 죄형법정주의와 함께 근대 법치국가의 최대 성과물로 평가되고 있다. 필자 역시 조세법률주의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세법률주의가 마치 세법에 있어서 유일한 가치인 것처럼 생각하는 최근 법조계의 경향에 대하여는 심각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조세법률주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또 다른 세법의 대원칙인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크게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 상속증여세법 발전의 최대 공헌자는 삼성이다.’ 어떤 학자가 재벌의 변칙증여앞에서 무기력한 정부를 비꼬며 한 말이다. 삼성의 변칙증여 실태를 시민단체가 폭로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상속증여세법을 개정한 경험이 있는 정부로서는 이에 대하여 크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그동안 상속증여세법은 제한적 포괄주의를 도입하는등 크게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제한적 포괄주의 역시 재벌들의 잔꾀앞에서는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제한적 포괄주의의 근거 규정인 상속증여세법 제42조를 보면, 제33조 내지 제41조의4에서 개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증여의제 외에 위 개별규정에서 정한 방식과 이익이 유사한 경우, 위 개별규정에 준하는 경우 및 위에서 정한 경우 외에도 일정한 요건에 해당되면 증여의제로 보아 과세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제33조 내지 제41조의4와 유사하지 않은 방식과 이익에 대하여는 과세할 수가 없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필자는 상속증여세법 만큼이라도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일부 학자들의 반응은 위헌소지가 있으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조세법률주의와 관련된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볼 때, 완전포괄주의의 위헌소지에 대한 우려가 전혀 근거없는 것 같지는 않다. 여기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제 법조계가 조세법률주의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상속증여세법의 완전포괄주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첫째, 조세법률주의가 태동한 중세기에 세금은 왕과 관료들이 백성을 수탈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세금은 공동체 구성원간의 약속이다. 구성원 모두가 ‘번 만큼, 가진 만큼’ 세금을 내고, 이 세금으로 강하고 살기좋은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약속하에 우리 모두 공동체 구성원이 된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무임승차’한다면 그는 다른 구성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조세법률주의를 단순히 ‘권력자로부터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으로 보는 것은 중세기적 가치관에 불과하다. 현대적 가치관으로서의 조세법률주의는 ‘공동체 구성원간에 적절한 약속을 만들고, 이 약속을 이행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둘째, 조세법률주의는 세법의 또 다른 대원칙인 ‘조세부담의 형평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세금은 누군가 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 만큼 더 내야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조세부담의 형평성이 유난히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세법률주의를 지나치게 엄격히 해석한다면, 세법이 탈세(여기서 탈세는 광의의 의미로서 내야할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앞에 무기력해질 수 있다. 이 경우 조세법률주의가 ‘권력으로 부터의 재산권 보호’면에서는 제 기능을 다 할지 모르지만, ‘소수 비양심적 구성원에 의한 다수 양심적 구성원의 재산권 침해’를 조장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즉, 지나친 조세법률주의에 대한 집착은 또 다른 재산권 침해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에서 상속증여세를 납부하는 인원은 전체의 1%에 불과하다. 이중에서도 특히 증여의제규정을 걱정할만큼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은 손꼽을 정도이다. 따라서, 상속증여세법을 완전포괄주의로 바꿀 경우 대다수 국민의 재산권이 침해되는 것처럼 떠드는 것은 사실상 극소수 부유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엄살에 불과하다. 상속증여세법을 완전포괄주의로 바꿈으로써 재벌의 변칙증여를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면, 이는 오히려 재벌에 의한 대다수 국민의 재산권 침해를 방지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넷째, 세법은 온갖 경제현상과 거래사실을 다루고 규제하는 법이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현상과 거래사실은 빛과 같은 속도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모든 과세요건을 법에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세법을 만들지 말라는 것과 같다. 세법이 구체적인 과세요건의 상당부분을 하위법이나 예규통칙등에 위임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형식적 조세법률주의의 엄격한 적용을 계속 고집한다면, 조세행정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조세법률주의가 오히려 탈세자들의 자기합리화 무기로 이용될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다섯째, 조세법률주의와 죄형법정주의를 동일시 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금은 형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금을 내는 것은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신성한 약속이행이다. 설사, 조세법률주의와 죄형법정주의를 동일시 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과세요건을 법에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사기죄를 규정한 형법 제347조를 보면,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을뿐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가 사기죄에 해당되는지에 대하여 일일이 열거하고 있지 않다. 모든 과세요건을 법에 다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기죄의 구체적인 형태를 법에 일일이 열거해야 사기죄가 성립된다는 억지주장과 같다.
상속증여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이내로 매우 미미하다. 그래서 그런지 정부 역시 상속증여세법의 완전포괄주의 도입에 대하여는 소극적인 것 같다. 그러나, 젊은 재벌2,3세가 세금을 거의 내지 않고 수조원, 수천억원의 재산을 모으는 현실을 보고, 대다수 국민들은 심한 상대적 박탈감과 우리나라 세제세정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을 느끼게 된다. 재벌의 변칙증여의 방지가 단순히 세수확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기강과 관련된 문제임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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