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참여연대 청년복지학교 참가자 오유림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 아래에서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여 더 큰 부를 만들었다. 이에 반해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인간다운 생활을 충분히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이러한 근대 자유주의 국가의 한계와 사회적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위험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확대되었고, 복지국가와 현대적 의미의 사회복지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전쟁 이후 급속한 산업화로 자본주의를 경제체제로써 안착시키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위험과 제도적 공백이 생겼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체의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이 급격하게 바뀌며 기존 사회적 제도가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사회적 위험들이 부각됐다. 부실한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헌법 제34조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등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 놓인 것이었다.
‘인권은 하늘에서 내려온 권리이며, 불가침성을 가진다.’
우리에게 내려진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헌법이란 법전 속에서 ‘기본권’이라는 명칭 아래, 글로써 명시되어 보장되곤 한다. 기본권과 사회복지에서 말하는 인간의 욕구는 서로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학은 개인의 욕구와 사회적 위험에 주목하고,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사회적·공공적 개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사회복지는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 장치이며, 헌법상 기본권이 실제 삶 속에서 실현되는 과정과도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대두된 사회복지란 학문은 국가 전반적인 분야와 연결된다. 특히 이번에 황영민 변호사님은 한국의 여러 법적인 판례와 복지를 연결하여 소개해 주셨다. 앞서 언급된 ‘기본권’의 내용도 헌법 속에 명문화된 내용으로 머무는 것이 아닌, 법률 또는 판례의 형태로 국민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특히 판례 중 황영민 변호사님께서 강조해 주시기도 했고,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은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된 대법원판결(대법원 2024. 7. 18. 선고 2023두36800 판결)이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며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판결에서 대법원은 이성 사실혼 배우자에게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동성 동반자에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이루어진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또는 앞으로 나아갈 사회에서 가족과 가구 구성원의 범위는 더더욱 다양해지고 넓어질 것이다. 이는 이성 간의 혼인과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가족 형태만을 전제로 제도를 설계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1인 가구의 증가, 비혼이란 가치관에 따른 성애적인 관계에 기반하지 않은 동거, 이성 또는 동성 동반자 간의 동거 등. 이처럼 다양한 가구와 생활공동체가 기존 가족관계의 법이나 사회보장제도에서 충분히 포괄되지 못할 경우, 구성원들이 필요한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 가구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제도가 이를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사람들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이는 앞으로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는 ‘돌봄’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며, 사회구조의 변화와 제도 사이의 간극을 넓힐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법’의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할 가능성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헌법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제도가 포괄해야 한다고 할 때, 과연 국가는 어느 정도까지 이를 보장해야 하는 것일까.
강의에서 변호사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회권의 특성과 그 한계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구체적인 수준은 해당하는 사회의 여러 환경적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사회권의 특성은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다. 헌법에 사회권이 명시되어 있다고 해서 국가가 언제나 ‘가장 적정한 수준’의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헌재에서는 국가가 ‘적정 수준으로 개입했는가?’가 아닌, ‘최소한의 보장 조치를 취했는가?’를 기준으로 보장 의무를 심사한다. 이러한 설명은 헌법에 명시된 권리가 존재하는 것과 그 권리가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보장되는지는 별개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권리의 존재’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실제 삶에서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지에 주목하는 것이지 않을까.

결국 인권은 ‘하늘에서 내려온 권리’라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늘에서 내려온 권리가 모든 사람의 삶 속에서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사람들의 삶과 관계의 형태를 제도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담아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 나은 미래,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단한 변화만을 생각하기보다, 지금의 제도가 미처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강의는 기본권과 복지가 서로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서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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