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몽테스키외, 토마스 페인, 인구론의 멜서스 그리고 미네르바의 공통점은?

현재 우리가 인터넷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실명 가입을 해야 합니다.
2004년부터 도입한 인터넷실명제는 당시 악플로 인한 명예훼손 등을 방지한다는 명분이었으나 실명제 도입 5년째로 접어드는 지금 많은 조사결과에서 실제로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사실 주변을 돌아보면 지금도 여전히 악플은 존재하지 않나요?
악플의 문제가 실명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이버상의 공간 특성이 공적공간과 사적공간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내용이 쉽게 확산될 수도 있고 또 이로 인해 원튼 원치않든 피해를 보는 경우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실명으로 글을 쓰게 한다는 것이 대안이 될 수있을까요? 익명을 무기삼아 비열한 짓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 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무조건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더 앞서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법률안에 따르면, 현재 21개 실명제 대상 사이트를 대폭 늘려 210개 사이트로 확대한다고 합니다.이는 하루 평균 이용자 수 10만 명 이상인 사이트를 추산한 수인데 이렇게 되면 우리 국민이 이용하는 사이트는 거의 다 포함되는 셈입니다.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또는 술집에서 아니면 버스나 전철 안에서 이름표를 달고 서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도 우리는 친구의 흉을 볼 수도 있고, 현 정권에 불만을 터트릴 수도 있고, 연예인 스캔들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유독 사이버 공간에서만 이름표를 달라고 하는 것은, 사이버상에서 대화하는 네티즌들은 모두 악플러가 될 수 있기 때문이기 주민등록증을 대라고 하는 것이며 이는 우리 모두를 잠재적악플러로 보고 감시하고 통제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익명성이 왜 소수자와 약자의 기본권인지는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당대 현실적 상황에 반하는 사상이나 주장은 늘 기득권자에게 억압받고 핍박받았습니다. 그래서 기댄 것이 익명성이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면서 비판하고 주장하고 싸워야 했기 때문이지요. 안그랬다면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에게 ‘팡세’로 잘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블레이저 파스칼은 1650년대 당시 프랑스 가톨릭교회 신학의 기만을 폭로하고 그 오만불손한 윤리를 공격하는 글들을 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1656년 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8편의 글들을 익명으로 발표하였답니다. 그가 만약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비판하고 공격하는 글을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갈릴레오 갈릴레이처럼 되지 않았을까요?
1748년 겨울 몽테스키외는 20여 년 준비해 왔던 <법의 정신>을 출간합니다. 몽테스키외는 18세기 전제왕권하에서 그 유명한 ‘3권 분립’을 주장한 사람입니다. 이 ‘법의 정신’에서 그는 당시 유럽의 여러 정체를 분석하고 원리를 밝혀내면서 입법권과 사법권 그리고 행정권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추구할 때에라야 정치적 자유권이 최대한 보장된다는 주장을 펼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놀랍고 위대한 지적 유산은 그가 살았던 프랑스에서가 아니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판되었습니다, 그것도 익명으로. 2년 동안 22쇄를 찍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지만, 당시 프랑스는 사상 통제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지요. 1751년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였고 4년 뒤 1755년에 몽테스키외는 세상을 뜨게 됩니다.
미국혁명 직전 미국으로 건너간 토마스 페인은 미국혁명과 나아가 프랑스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던 ‘상식(Commons)’이란 소책자를 1776년 ‘한 영국인’이란 필명으로 발표합니다. 식민지에 독립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페인의 책을 당시 13개 식민지에 사는 250만 명의 사람 중에서 약 50만 명이 구매했다고 하니 5명 중 1명은 구입했을 정도로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책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식량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주장을 폈던 맬서스는 1798년에 “인구론’을 발표하였지요.이 책은 처음에 익명으로 출판되어 열광적인 지지와 가혹한 비판을 함께 받았습니다.그의 논고는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아, 익명으로 글을 또는 다른 어떤 것을 한다는 행위가 비겁하지 않은 이유는 역사가 증명합니다. 늘 당대에 이단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이나 사고는 핍박과 억압을 받았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늘 이들을 억압하기 위해 온갖 힘을 동원합니다.
자신의 표현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마음껏 펼치기 위해서, 익명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면, 과학이, 철학이, 문학이 그리고 민주주의가 오늘날처럼 되었을까요?
현재의 정부와 여당이 왜 인터넷실명제를 더욱 확대하려고 하는 것인지, 이쯤하면 짐작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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