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5년 04월 2015-04-02   956

[읽자]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권하는 4월의 책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내리는 판결은 주권자 국민의 삶을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중대히 변화시킨다. 정치적, 사회적 분쟁의 최종 마무리가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강해지는 현실에서 국민은 판결과 그것을 내리는 사람을 더욱 주목하고 감시해야 한다.”
–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판결은 시비를 가려 내린 결론이다. 온전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합당한 절차를 거치고, 혹여나 실수가 생길까 보완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여러 단계로 재판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공들여 내린 판결은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느낌을 주지만,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란 말도 있듯 때로는 상식에 어긋나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전문 지식이 없는 시민이 직접 판결을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판결의 옳고 그름과 판결이 정해지는 논리를 따져 묻고, 판결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는 등 시민이 판결에 참여할 여지는 적지 않다. 물론 준비는 필요하다.

 

참여사회 2015년 4월호 (통권 221호)

사회선생님이 뽑은 우리 사회를 움직인 판결 /  전국사회교사모임 대안사회분과 지음 / 휴머니스트


법과 시민 사이의 거리 좁히기
우선 판결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전국사회교사모임 대안사회분과에서 기획한 『사회 선생님이 뽑은 우리 사회를 움직인 판결』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미치거나 한국사회가 변화하는 데에 징검다리 역할을 한 판례 서른아홉 가지를 다룬다. 양심적 병역 거부, 국가보안법 위헌 논란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나 재판을 거치며 쟁점을 둘러싼 여러 가치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경우도 있고, 낙천·낙선 운동, 수형자 선거권 제한 위헌 판결처럼 그간 잘 알지 못했거나 드러나지 않았던 가치를 일깨운 사례도 있다. 이 책은 사실 관계, 관련 법률 조항, 생각해 보기, 판결문 살펴보기로 구성되어 판결을 읽어내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 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법과 시민 사이의 거리를 좁혀왔는지 살펴볼 수 있어, 시민이 판결에 참여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기에 맞춤하다.

 

참여사회 2015년 4월호 (통권 221호)

올해의 판결 – 2008~2013년 92개 판결 / 한겨레21 올해의 판결 취재팀 지음 / 북콤마


사회를 진전시키는 판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에 적합한 교과서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서 기획하는 『올해의 판결』이다. <한겨레21>은 2008년부터 해마다 올해의 판결을 선정한다. 학계, 법조계,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심사위원단이 국민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가, 종전에 없던 새로운 법리를 제시했는가, 법원이 사회적으로 절실한 문제를 다루면서 형식적인 법 논리만을 따지지 않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는가를 기준으로 선정한다. 2013년에는 성기 성형을 하지 않는 성전환자에게도 성별 정정을 허가한 결정이, 2012년에는 인터넷실명제는 위헌이라는 전원 일치 결정이 해당 년도 최고의 판결로 선정되었다.
  여러 해를 이어온 올해의 판결 결과를 보면 판결이 사회를 뒤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가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선정 과정에서 나온 여러 논의를 살펴보면 법과 사회가 생각보다 훨씬 밀접하게 그리고 빠르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를 소송으로밖에 풀지 못하는 상황이 가슴 아프다.”, “대법원도 헌법재판소도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애매한 판결이 나온다.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 판결을 자꾸 내놓는다.”같은 안타까운 목소리도 나오지만, “우리 사회는 이 판결들의 보폭만큼 진전한 셈”이라는 긍정적 확신이 판결에 참여하는 시민의 발걸음에 힘을 더한다.

 

참여사회 2015년 4월호 (통권 221호)

공평한가? – 그리고 법리는 무엇인가, 판결비평 2005~2014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지음 / 북콤마


광장에 나온 판결, 판결비평

자, 이제 마지막 단계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2005년부터 진행한 판결비평 작업을 모은 『공평한가?』는 “법률 전문가 층에 국한되는 판결 내용을 시민사회 내부로,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 판결의 사회적 의미를 확인하려는 시도”다. 판결을 판결하는 판결비평은 판결을 바라보는 시선 가운데 가장 급진적이며 가장 멀리 나아간 시도라 하겠다. “시민이 수긍할 수 없는 판결은 판결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에서 입법권과 행정권이 주권의 일부인 것처럼 사법권도 시민의 것이기 때문”이라며 “‘판사의 판결’은 ‘시민의 판결’이 되어야 하고 시민이 수긍할 수 있는 판결이 되어야 한다.”고 과감하게 주장하는데, 판결이 전하는 결론보다 결론에 이르는 근거와 논리, 생각의 흐름을 비평하자는 제안이다.
  본문에서는 특히 사회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거나 시민의 법 감정과 차이가 큰 판결, 반인권, 반민주 판결에 주목하는데,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닐뿐더러 노조법상 노동자도 아니라는 판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법 위반에는 해당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는 볼 수 없다는 판결처럼,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지만 비전문가로서 법리를 비판하기는 쉽지 않은 사안을 판결 당시의 사회 상황, 재판의 구체적 과정, 판결의 문제점을 짚어가며 느낌을 논리로 구성하는 데에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 기획으로 비로소 판결이 광장으로 나왔다. 그간 광장 바깥에서 광장에 모인 이들을 가르고 나누던 판결이 광장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잘 알다시피 광장은 모이면 모일수록, 떠들면 떠들수록 넓어지기 마련이다. 새롭게 떠들 이야기가 생겼으니, 속히 모이기 바란다. 아, 두꺼운 법전은 필요하지 않다. 건강한 시민 의식이면 충분하다.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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