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1년 01-02월 2021-01-01   1075

[읽자] 시간에 떠밀리지 않고 한 해를 시작하는 방법

시간에 떠밀리지 않고
한 해를 시작하는 방법

 

해가 바뀌면 달라지는 게 한둘이 아닌데, 정작 중요한 ‘나’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2021년을 2020년이라 적는 실수만 떠올려 봐도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나를 알 수 있으니, 별다르지 않아도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울 게 없어도 새해를 계획하는 노력은 어쩌면 시간의 흐름에 호흡을 맞추려는 최소한의 노력 아닐까 싶다. 

 

그런데 기왕 애쓰는 김에 지난 한 해가 아니라 지난 삶 전체를, 눈앞에 다가온 새해가 아니라 남은 모든 삶을 함께 그려보는 건 어떨까? 그만큼 기운을 쏟아야겠지만 조금 덜 급하게, 조금 더 여유롭게 한 해를 시작하는 방법 아닐까 싶다.

 

언젠가, 더는 함께할 수 없을 이들

내 삶의 끝을 그려보면 무엇을 어떻게 살아냈느냐 못지않게, 함께 살아온 이들에게 내가 어떻게 기억될지도 자못 궁금해진다. 현명한 선택과 지혜로운 관계를 이루는 데 도움 되는 상상일 텐데, 이 책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나에게 도착한 다른 이들의 삶과 죽음을 기억한다. 

 

가족, 친구, 친구의 친구를 지나 내 쪽에서만 알고 지낸 작가와 유명인까지, 구체적인 이름을 공개하는 대신 ‘동창생’, ‘나의 조언자’, ‘그들의 엄마’, ‘자발적 운동가’, ‘스쿼시 선수’로 호명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죽음이라는 무게에 눌려 자칫 빛을 잃기 쉬운 생생한 살아있음을, 그리고 살아있는 이들과의 여전한 연결을 발견한다. 자신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예술가, 20대의 직장에서 만나 ‘유난히 다정했던’ 상사, 여섯 살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 장인을 떠나보내고 그에게 물려받은 모직 코트를 입고 있는 모습. 이렇듯 삶 이후를 그려보며 새해를 맞는다면, 별다르지 않은 한 해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호 (통권 282호)

  

안녕은 단정하게 – 티모어 부고 에세이 | 글 매리언 위닉 | 구픽 

여든 살이 되면, 많은 것들로부터 멀어진다. 힘든 결정들, 어려운 시기, 후회, 이 모든 게 이제는 멀리 떨어져 있다. 정원에서 머무는 그의 모습, 우리의 어린 딸들을 데리고 물에서 놀던 그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가 일생 동안 기다려 온 게 결국은 그런 순간들이 아닐까 싶었을 것이다. 몸이 많이 그을리고 약간은 구부정해진 나이 든 유대인 남자가 청록색 수영 팬츠를 입고 흰색 테리 직물의 챙 모자를 쓴 채 물가에 서 있는 모습. 확신컨대 그는 다시 되돌릴 기회가 주어진대도 다시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날에 겹쳐질 오늘

동화작가로 널리 알려진 정채봉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라 한다. 그의 20주기를 맞아 나온 산문집의 제목은 『첫 마음』이다. 어디에서 나온 제목인가 싶어 차례를 펼치니 ‘마침표와 첫 마음’이란 글이 눈에 들어온다.

 

“수도자들에게 늘 강조되는 것이 ‘첫 마음’이라고 나는 들었습니다. 수도에 막 입문하던 날의 그 열렬한 마음이 지속되지 않고서는 험난한 세파에 쉬 휩쓸리게 되듯 첫 마음의 온전함이 아닌 한순간의 방심한 헛눈팖으로 우리의 생이 금방 끝나게 될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첫날이니 조금 여유를 갖고, 아직 한 해가 많이 남았으니 며칠은 쉬고, 라며 따뜻한 방바닥에 들러붙는 마음에 일침을 놓는다. 물론 작가는 우리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저 바다 가운데 서 있는 바위섬에 파도 자국이 없을 수 없듯이 이 세상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중에 빗금 하나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바라기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저 바위처럼 아린 상처나 덧나지 않게 소금물에 씻으며 살 수밖에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되, 결과가 여의치 않더라도 최선을 다할 다음 하루를 기약하는 마음이라면, 한 해를 시작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싶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호 (통권 282호)

 

첫 마음 | 글 정채봉 | 샘터사

당신의 그 일상을 다시 짚어 보라. 일을 한다기보다는 일에 늘 쫓겨 다니고, 내가 한 약속도 나는 상대의 맞은편일 뿐, 늘 바쁘기만 하다가 ‘아차’ 하는 순간들의 연속인 오늘. 이런 ‘오늘’이 쌓여서 결국 허망한 세월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당신에게 오늘이란 어제의 다음 날이 아니다. 내일의 전날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오늘의 그리움은 ‘오늘치’이지, 어제의 나머지가 아니다. 내일로 넘겨질 몫이란 아예 없는 것이다.

 

언젠가, 만나게 될 생명

한 해의 시작을 앞에 두고 지난해와 올해가 아니라 삶 전체를 바탕으로 성찰과 계획에 나서보자고 했는데, 어쩐지 삶의 끝보다는 삶의 시작이 나중에야 떠올랐다. 지난 일을 당연히 여기기 십상이기도 하겠으나,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황제펭귄, 붉은캥거루, 대왕고래 같은 여러 동물이 어떻게 태어나 성장하는지를 반투명 종이 위에 그린 그림으로 하나둘 포개어 보여준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쌓이고 쌓여 오늘에 이른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탄생 이후 모두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까지, 자신을 알아보고 나 아닌 것들을 감각하기까지, 스스로 돌보고 세상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치기까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생을 마치는 날까지 해나갈 일들이겠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태어난 순간이 아니라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속해온 것들이겠고, 이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지나치지 않고 늘 감각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겠다. 

 

자,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시작이다. 모두의 삶을 응원하며 우선 1년 후를 기약한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호 (통권 282호)

 

우리가 태어났을 때 | 글 아나 가요 | 그림 아이네 베스타드 | 노란상상 

모든 생명은 특별하고 가치 있어, 생명 그 자체만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채 살아가니까. 자, 그럼 삶의 시작으로 향하는 이 멋진 여행에 함께해 볼래? / 너는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또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앞으로 펼쳐질 신비하고 멋진 삶의 여행을 기대해도 좋아.


글. 박태근 알라딘MD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MD로 일했습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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