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떼려야 뗄 수 없는 좌파 정당과 복지국가의 관계
좌파 정당과 복지국가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현대 사회의 상식이다. 좌파 정당의 불모지인 한국에서도 지난 20여 년간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이 펼친 활동 덕분에 뒤늦게나마 이런 연관성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비록 보수파인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기에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를 표어로 삼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표어에 그쳐 버렸다. 그 결과, 복지국가가 (보수파가 아닌) 진보파의 목표라는 생각이 오히려 더 굳어졌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복지국가가 좌파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유럽에서 복지국가 전성기를 이끈 양대 세력은 사회민주주의와 기독교 민주주의였다. 좌파 정당과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회와 그에 기반을 둔 우파정당(대표적으로, 독일연방공화국의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 또한 나름대로 복지국가 건설에 앞장섰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복지국가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윤리적 토대로서 ‘연대’의 가치와 문화가 뿌리내리는 데에도 사회민주주의와 더불어 기독교 전통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케인스주의 정책을 통해 복지국가 건설과 운영의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는 또 다른 우파, 즉 자유주의 성향 우파 역시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런 진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복지국가와 관련하여 좌파 정당이 선도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복지국가의 역사 속에서 이 점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자.
우선, 복지국가는 좌파 정당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일관되게 그 강령과 정책의 중요한 일부였다. 세계 최초의 좌파 정당인 독일 사회민주당(초기 명칭은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1891년 에르푸르트에서 열린 당대회를 통해 당의 이념과 노선을 정연하게 정리한 강령을 채택했다. 이 강령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혁명을 궁극의 목표로 제시했다. 사회적 소유와 사회적 생산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가 파국에 이를 미래 시점의 과제였으며, 당장은 대중의 권리를 부분적으로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그런 당면 과제 중에는 “공립 초등학교의 무상교육, 학용품의 무상 지급, 무상급식” 그리고 “조산을 포함한 의료의 무상화, 의약품의 무상 지급”이 있었다. 또한 “모든 사회보험을 전국적으로 관리할 것과 노동자가 사회보험 운영에 참여할 것”도 명기되었다. ‘에르푸르트 강령’은 이런 복지 정책을 뒷받침할 재정 정책으로 “누진 소득세, 재산세, 누진 상속세 도입”을 제창했다. 이런 내용은 19세기 초에 사회주의 이념-운동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그 필수 구성요소였던 적극적 빈곤-불평등 대책(가령 생시몽이 ‘기독교 국가’라는 이름으로 제안한 국가 주도 빈민 구제책)의 계승이면서 동시에 현대 복지국가의 예고편이었다. 이후 세계 곳곳에 등장한 좌파 정당들은 독일 사회민주당과 마찬가지로 필수 재화-서비스에 대한 즉각적인 사회주의(탈자본주의) 원칙 실현, 즉 공적 복지정책을 핵심 당면 과제로 제시했다.
둘째, 역사상 복지국가 건설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 대중 집단인 노동계급이 형성되는 데 좌파 정당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노동계급은 산업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이미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처음에 노동계급은,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생계비에 못 미치는 임금만 받으며 빈민으로 전락하는 모래알 같은 개인들에 더 가까웠다. 이런 노동계급이 자본가와 지배 엘리트에게 공포로 다가오는 하나의 사회집단으로 처음 성장한 것은 노동조합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좌파 정당은 이 집단을 공통의 세계관과 이상, 규율을 갖춘 정치 세력으로까지 성장시켰다. 복지국가의 초기 형성 과정에서 바로 이 세력이 복지정책 확대를 지속적으로 열렬히 지지하는 핵심 지지층이 되었다. 이런 강력한 사회 세력의 지지 덕분에 여러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20세기 중반에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역으로 만약 좌파 정당이라는 변수를 통해 노동계급이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다면,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자체에서 비롯되는 긴박한 필요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셋째, 복지국가의 모태가 되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좌파 정당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복지국가의 다른 표현은 사회국가다. 사회국가는 복지국가의 핵심 과제가 사회권 보장임을 선명히 보여준다. 사회권은 보통 선거제도를 통해 참정권을 획득한 대중이 제기하는 생존권 요구에 자본주의 국가가 내놓은 잠정적 처방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보편적 참정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가 전제되어야만 현실에서 복지국가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복지국가가 등장할 수 없다. 이런 상관관계는 세계 최초로 사회보험제도를 전면 실시한 1890년대 독일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독일은 남성 보통 선거제도를 선구적으로 도입한 나라였다. 새롭게 참정권을 획득한 노동 대중은 이 참정권을 무기 삼아 국가를 압박했고, 국가는 복지정책으로 이에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관관계에 주목한 사회주의자, 노동운동가들에 의해 제1차 세계대전 무렵까지 서유럽 곳곳에서는 노동자, 여성을 중심으로 보통 선거권 쟁취 투쟁이 전개됐다. 좌파 정당이 이 투쟁을 이끌었고,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 비로소 보통 선거제도가 실현되었을 때 예외 없이 제1당의 지위를 거머쥔 것은 민주화 투쟁을 이끈 좌파 정당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좌파 정당은 각 나라에서, 오늘날 복지국가와 가장 친화적인 정치제도로 평가받는 전면적 비례대표 선거제도의 도입을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 끝에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실제로 전면적 비례대표제에 바탕을 둔 의회제가 정착됐다. 이렇게 좌파 정당은 복지국가의 정치적 전제이자 토대인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넷째, 복지국가 탄생에 꼭 필요했던 경제 정책 기조의 변화에 좌파 정당이 앞장섰다. 보통선거제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가 정착했다고 하여 복지국가가 순탄하게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보통 선거제도를 통해 좌파 정당이 제1당이 되어 좌파 주도 연립정부를 이끌게 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다. 그것은 국가의 역할을 시장을 보조하는 기능 정도로 제한하던 고전 자유주의의 경제 정책 기조였다. 안타깝게도 자본가나 우파 정당만 이런 정책 기조를 금과옥조로 떠받든 게 아니라, 좌파 정당 역시 그것 외에 집권 시에 펼칠만한 정책이 없다고 믿었다. 이런 정통 교리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시장 교란이라는 측면에서 디플레이션(불황)보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더 커다란 사회악이라는 것이었고, 그래서 대공황이 닥쳤을 때 우파 정부든, 좌파 정부든 모두 자칫 인플레이션을 낳을 수 있는(실은, 낳을 수 있다고 ‘믿은’) 통화 팽창은 최대한 피했다. 이런 긴축 기조로 인해 대공황은 더욱 파국적인 양상으로 치달았고, 독일에서는 이런 상황이 나치당의 급속한 성장과 사회민주당의 비극적 붕괴를 몰고 왔다. 하지만 교착 상태를 돌파한 좌파 정당도 있었다. 바로, 스웨덴 사회민주당이었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대공황 해결을 위한 과감한 국가 개입을 약속하며 1932년 집권했고, 집권한 뒤에는 균형 재정 도그마를 깨고 적극적인 재정 운용을 통해 경기를 회복시켰다. J. M. 케인스가 케인스주의를 채 정립하기도 전에 (미국에서 뉴딜이 무르익기도 전에)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케인스주의를 실행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스웨덴 사회민주당뿐만 아니라 모든 좌파 정당이 케인스주의를 받아들였고, 이로써 케인스주의가 한동안 자본주의 세계의 표준적 정책으로 부상했다. 이렇게 시장지상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진 좌파 정당들은 진보적 조세 정책뿐만 아니라 적극적 재정 정책을 함께 활용함으로써 복지국가를 원활하게 건설, 운영할 수 있었다. 적어도 1970년대에 신자유주의의 역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국의 경우 – 과연 복지동맹은 존재하는가?
그럼, 한국에서 진보정당은 복지 확대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 앞에서 정리한 세계사적 맥락과 한국 사례를 비교해 보면, 민주노동당 이후 진보정당의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한국의 진보정당도 복지국가를 당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복지 확충을 주요 정책이나 공약으로 제시했다. 민주노동당은 강령 전문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이라 천명했다. 그러면서 이를 실현할 구체적 방안을 여러 분야로 나눠 정리했는데, 그 중 ‘사회복지’ 항목에서는 “연대와 평등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복지를 추구”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부유세 도입, 무상의료-무상교육 실현”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호응을 얻었고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원내에 10명의 민주노동당 의원이 포진하던 시기에 노무현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등 공적 복지제도를 일정하게 확대했는데, 여기에는 민주노동당이 불러일으킨 ‘무상의료’에 대한 관심과 지지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민주노동당은 또한 2002년 지방선거로 지방의회에 진출한 뒤에 친환경 무상 학교급식 도입 캠페인에 나섰다. 이 흐름은 몇 년 뒤인 이명박 정부 시기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존폐를 놓고 주민투표를 시행하는 바람에 첨예한 정치 쟁점으로까지 부상했다. 이후 ‘무상급식’은 한국 사회에서 복지국가 지향에 대한 대중적 지지의 상징이 되었다. 이 모든 커다란 사회적 변화의 밑바탕에 바로 진보정당 활동이 있었고, 그 연장선에서 정의당이 2015년에 채택한 강령은 당의 목표를 아예 “정의로운 복지국가”라고 못 박았다. “보육·교육·일자리·주거·의료·노후에 있어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위해 “재정 규모 확대와 증세”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은 세계 좌파 정당 역사의 큰 흐름과 궤를 같이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이후 진보정당이 소수나마 그래도 국회 의석을 확보하고 원내 정당으로 활동했던 지난 20여 년간, 한국에서 복지제도 확충은 그 폭이나 속도가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다. 물론 원내에서 절대다수를 점하며 집권한 세력이 보수우파정당(현 국민의힘과 그 전신들)과 리버럴정당(현 더불어민주당과 그 전신들)이었기 때문에 일차적 책임은 이들에게 있다. 그러나 진보정당이 이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압박해 공적 복지를 보다 획기적으로 확대하지 못했던 것 또한 분명하다. 그리고 이렇게 복지 확충이 지체되는 동안, 한국 사회는 돌봄 위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급속하게 저출산-초고령화의 늪에 빠져들었다.
한국 진보정당의 결정적 실패와 한계는 무엇보다도, 복지국가 건설의 굳건한 지지층 역할을 할 대중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도 앞선 좌파 정당들의 이념, 노선과 역사적 선례에 따라 노동계급을 핵심 지지층으로 설정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이 모색되던 1990년대 말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창 성장해 가던 민주노동조합운동이 절정에 이른 시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 자본주의에 신자유주의가 본격 상륙한 시점이기도 했다. 이후 민주노동조합운동은 정체상태에 빠졌고, 이미 조합원으로 조직돼 있는 노동자의 고용을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한데 기존에 조직돼 있던 노동자는 대개 대기업·정규직·남성 노동자였던 반면에 신자유주의 도입 이후 점점 더 늘어난 노동자, 더 열악한 처지에 놓이게 된 노동자는 중소기업·비정규직·여성 노동자였다. 그 결과, 노동계급 내부에 소득, 고용, 노동조건 등의 양극화가 나타났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노동자층은 노동조합(대개 기업별)의 보호를 받고 정작 노동조합이라는 보호막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노동자층은 노동조합 바깥에 방치되는 역설이 지속되었다. 노동조합을 통해 일차적으로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했어야 할 한국의 노동계급은 오히려 노동조합 접근 가능성의 격차에 따라 여러 계층적-분파적 집단들로 파편화되고 말았다.
이렇게 노동계급 형성이 벽에 부딪힌 탓에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은 지지층을 좀처럼 확대하지 못했다. 특정한 국면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5% 안팎을 오르내린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바람’에 그쳤다. 어떤 정치적 상황이 닥치든 진보정당에 표를 던질 핵심 지지층은 민주노동당 전성기에도 5%를 채 넘지 못했다.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실시하기 때문에 양대 정당 후보가 아니면 사실상 당선될 수 없고 그래서 애초에 표를 얻기도 힘든 지역구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기록한 평균 득표율이 대략 5%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그래도 2004년부터 2024년까지 원내 정당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극히 제한적으로나마 존재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리버럴정당-진보정당 교차 투표층 덕분이었다. 비록 진보정당 핵심 지지층은 한정되어 있었지만, 2004년 총선부터 실시된 정당투표에서는 진보정당들의 득표율 합산이 10% 수준을 오르내렸다. 그리고 그만큼 소수나마 비례대표 의석을 배정받아 원내 정당으로 머물 수 있었다. 정당투표에서 진보정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는, 극소수 핵심 지지층을 제외하면, 대개 대선이나 총선 지역구선거에서 리버럴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바로 리버럴정당-진보정당 교차 투표층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꽤 복잡한 그림과 마주하게 된다. 흔히 복지국가의 건설과 유지를 지지하는 광범한 대중 집단을 ‘복지동맹’이라 일컫는다. 복지정치란 다름 아니라 특정 사회의 역사적-구조적 특성에 맞춰 복지동맹을 구축하는 일이고, 좌파 정당은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동심원적 지지층 확대 전략을 통해 이런 복지동맹 구축에 가장 기여한 정치세력이 되었다. 이 도식에 견줘 보면,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도 나름대로 복지동맹을 구축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서유럽의 경우처럼 좌파 정당과 그 연립정부 결성 대상 정당들의 관계라든가, 노동계급을 중심에 둔 계급동맹의 동심원적 확장 같은 정연한 형태를 취하지는 않았다. 노동계급과 좌파 정당이 구심 역할을 하지 못하는 대신 소수 진보정당-노동조합 진영이 거대 리버럴정당과 그 광범한 지지층에 느슨하게 영향을 끼치는 형태의, ‘동맹 아닌’ 동맹이었다.
복지동맹 ‘아닌’ 복지동맹이라는 기이한 표현을 한 이유는 이것이 ‘복지’동맹이라 하기에도 문제가 있고 복지‘동맹’이라 하기에도 맞지 않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동맹’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구심력이 약하고 파편적이다. 복지보다는 다른 쟁점(가령 검찰개혁, 수구세력 청산 등)에 더 열의를 보이는 리버럴정당과 그 핵심 지지층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며, 막상 복지 확대를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로 여기는 진보정당과 그 핵심 지지층은 소수의 압력 행사 세력으로 결합해 있을 뿐이다. 이렇게 구심력이 뚜렷하지 못하기에 현실 정치의 중요한 순간마다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2016~2017년 촛불 항쟁 직후인 문재인 정부 초기는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지만, 복지동맹의 정치적 대표자인 양 내세웠던 리버럴정당과 그 정부(문재인 정부)는 복지 확대에 주력하지 않았다. 그만큼 복지동맹의 실체가 모호하거나 취약했다.
게다가 과연 복지 확대에 동의하는 정치·사회 세력들의 연합인지도 의문이다. 외관상으로만 보면, 복지 확대에 대한 거대 리버럴정당의 동의 수준은 점진적으로 높아진 것 같다. 비록 공염불에 그쳤지만, 어쨌든 문재인 정부가 대선 선거운동 중에 내건 공약들은 진보정당의 복지 관련 정책들을 대폭 수용한 것이었다. 최근 이재명 대표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은 ‘기본 사회’라는 표어 아래 이런 흐름을 더 진전시키는 모양새다. 그러나 여전히 신뢰를 보내기 힘든 구석이 많다. 제22대 국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유명 국회의원들이 작심하고 꺼낸 쟁점은 종합부동산세 인하와 횡재세 공약 철회였다. 증세를 통한 복지 지출 확대는커녕 감세를 제기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길 거부한 진보 정당들(정의당, 녹색당, 노동당)은 제22대 총선에서 원내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과연 느슨하게나마 복지동맹은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1세기에 복지국가 건설이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복지정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다. 일단 20년 만에 진보정당 운동의 본류(필자는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한 이른바 진보정당들은 더 이상 진보정당 운동의 중요한 흐름이라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가 현실 정치에서 완전히 주변으로 밀려났다. 그런가 하면 더불어민주당은 나름대로 복지국가 건설에 우호적인 지도부 아래에서 차기 집권을 노리고 있다. 어떤 요소를 중심에 놓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복지정치가 와해됐다고 비관적인 평가를 내놓을 수도 있고, 정반대로 복지 정치의 커다란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고 낙관적인 평가를 내놓을 수도 있다. 다만, 앞에서 이미 지적한 더불어민주당의 감세정치 기류 등을 놓고 볼 때, 낙관은 금물이라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복지동맹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진보정당-노동조합운동이라는 소수 좌파가 거대 중도파 정당과 그 지지층을 움직이는 모양새였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상기해 봐야 한다. 이런 형세가 흐트러졌다면, 일단 복지 정치의 동력에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복지동맹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아니, 복지동맹이 실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냉정히 돌아본다면 물음을 이렇게 던져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어떻게 실질적인 복지동맹을 새롭게 구축해 나갈 것인가? 이것만 해도 답하기 아주 어려운 물음인데, 지금은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야 할 때다. 왜냐하면 20세기에 복지국가를 만들고 유지하는 배경이 되어주었던 모든 조건이 다변화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는 자본주의의 장기 지속으로 인해 기후급변, 불평등 심화, 돌봄 위기, 인공지능 위협, 미-중 패권 충돌 같은 거대한 위기들이 동시에 닥쳐오는 ‘복합 위기’, ‘다중재난’의 시대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민주주의와 사회권 강화의 방향에서 위기에 대응해야 할 것이고, 이것은 곧 민주국가-사회국가의 지향을 뜻한다. 하지만 복합 위기 시대에 사회국가의 구체적인 모습은 20세기 복지국가 모델과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령 기후급변시대에 20세기식 케인스주의 성장 정책을 그대로 추진할 수는 없다. 불평등이 이토록 심해진 상황에서 20세기 중반과 같은 계급 타협이 과연 쉽게 가능할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 대목에서 곱씹어봐야 할 것은 현실에 의해 추월당한 역사적 과제들의 뒤늦은 해소라는 문제다. 20세기 중반 이후 대한민국은 현대 사회가 반드시 풀고 가야 할 과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내달리곤 했다. 무엇보다도 온전한 국민국가를 수립하지 못한 탓에 여전히 통일이 미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런 미완의 과제들의 목록에 복지국가를 추가하게 되었다. 1987년 이후 민주화의 진전을 복지국가 건설로 연결하지 못한 탓에 복지국가 역시 미래 과제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현실은 복합 위기-다중재난의 시대로 질주해 버렸다.
이렇게 꼬이고 꼬인 역사는 과거에 두고 온 과제들을 뒤늦게 단계별로 완수하겠다는 단순한 태도로는 풀릴 수 없다. 누적된 과제들은 오직 가장 현재적인 첨단 과제들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함께 해결해야 한다. 즉, 이제 우리는 복합 위기-다중재난에 대처하는 생태 전환, 돌봄 전환, 탈자본주의 구조개혁 등을 복지국가 건설과는 다른 별개의 과제로 볼 게 아니라, 복합 위기-다중재난에 맞서는 사회 전환의 노력 속에 한반도 통일이나 복지국가 건설 같은 묵은 과제들의 해결을 융합시켜 함께 추진해가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의당은 작년 당내 토론을 통해 기존 강령의 “정의로운 복지국가” 비전을 대체할 “생태·평등·돌봄 사회국가” 비전을 다듬은 바 있다.
이런 고민과 그에 따른 실천은 십중팔구 기성 양대 정당을 통해서는 이뤄지기 힘들 것이다. 집권 전략을 명분으로 감세 정치 경쟁을 벌이는 정당들에게 기대를 걸기에는 너무 난해한 숙제다. 그들 바깥에 서 상상력을 펼치고 실험과 도전을 감행할 공간이 필요하다. 바로 이 점에서 좌파 정당/진보정당은 ‘여전히’ 필요하다.
월간<복지동향> 2024년 07월호(제3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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