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살이에서 시간은 언제나 현재의 시점을 맴돕니다. 독일의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에 의하면 경험은 기억될 수 있는 현재적 과거이며, 기대는 경험되지 않은 것, 단지 해명될 수 있는 것으로 현재화된 미래일 따름입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는 과거의 경험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경험에서 근거 지어져야 합니다. 현재는 그러한 기대지평과 경험획득이 상호 대화하는 일종의 정치적 행동공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참여연대의 바로 그 공간들을 〈월간참여사회〉 창립 30주년 기념호가 지금 이 자리에 펼쳐보고자 합니다.
참여연대의 본래 이름은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였습니다. 창립 당시 “새로운 사회의 지향점을 ‘참여’와 ‘인권’을 두 개의 축으로 하는 희망의 공동체 건설”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걸은 30년’은 이런 활동의 경험들을 되새겨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두 우리의 것이어야 하기에 우리는 더불어 고민하고 숙의하며 행동해 왔습니다. 과거는 전승된 현재입니다. 혹은 현재가 배신하며 떠나보낸 우리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과거는 현재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기에 참여연대의 30년은 지금 여기의 우리 일상이기도 할 것입니다. 1994년 참여연대의 창립선언문 첫 문장에서 우리의 현재를 “시대적 전환기”로 명명하였던 바로 그 과거가 현재 우리의 다짐으로 되먹임되는 이유입니다.
이지현 사무처장의 글, 다시 내디뎌야 할 ‘새로운 발걸음’은 여전히 변화가 절실한 전환기의 현재를 그려냅니다. 그곳 또한 전승과 배신(공교롭게도 서양에서는 두 단어는 어원이 같습니다)의 윤리가 함께합니다. 우리의 삶에 민주주의를 잇는 수많은 기대와 전망의 지평들이 활동 사진처럼 혹은 신기루처럼 나타나고 또 사라집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발걸음은 여전히 오늘 이 자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내디뎌야 하는 것임은 분명하고, 그 길은 참여와 연대로써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발걸음은 온전히 새로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내딛는, 과거에 이미 경험했던 발걸음일 따름입니다. 새로움은 무엇을 전승하고 무엇을 내치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성찰과 고통의 다짐이 있기에 우리의 행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뚜렷한 윤리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이승원 박사는 참여연대라는 이름이 찬란하고도 무겁다고 합니다. 정치·경제·안보 권력을 감시하고 민주와 민생, 평화·인권을 주된 사업목표로 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세상을 향해 이런 시대윤리를 말하며 실천을 위한 연대의 전략을 도모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나 디지털자본주의와 같이 인간 존재를 지워나가는 초거대권력 앞에서 또다시 전환을 외치며 단호한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당위의 압박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속가능한 참여연대’라는 명제는 그래서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모두를 아우를 때 참여연대의 현재가 만들어지며, 비로소 세상의 윤리는 그 찬란함을 내보일 수 있을 터입니다.
〈월간참여사회〉는 이 모든 이야기를 이번 창립 30주년 기념호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모든 시민이 참여연대의 이런 당찬 역사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창구이자 매개의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참여연대의 숙의와 다짐, 그 속에 스며든 참여연대 구성원들의 의지와 행동, 참여연대와 더불어 세상에 나섰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희망, 그 모든 것을 이 조그만 책자에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하여 여기 실린 글들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들을 저 찬란하고도 힘겨운 참여연대의 세상으로 이끌기 위한 유인에 다름 아닙니다. 혹은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손을 잡으며 평화와 다양성이 충만한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참여연대,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AI·빅테크의 감시에 전력하는 참여연대와 함께하자는 약속의 서두이기도 합니다. 혹은 이 책자의 빈자리를 여러분의 목소리로 채워내고 여러분의 시선으로 메꾸어 달라는 야심 찬 요청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참여연대의 한 세대가 지나갑니다. 더불어 참여연대의 또 한 세대가 우리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월간참여사회〉는 그 변화와 연결의 역사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다 같이 참여하고 연대하는, 그래서 우리 어울리는 기쁨을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글 한상희 참여사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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