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ㅣ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들어가며: 인권위의 경로 이탈을 경고한 인권단체들
전국 각지의 인권단체가 2023년 12월 8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모였다. 박물관 안 행사장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2023년 인권의 날 기념식이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인권단체들은 행사장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권위가 무력화되고 있으며 한국 사회의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경로를 이탈하고 있는 인권위를 바로잡기 위하여 공동의 행동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행사는 헌법재판소장과 주한유럽대표부 대표 등 내외빈이 참석하는 비중 있는 행사였다.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이 행사장 바로 밖에서 행사 주최기관인 인권위를 비판하면서 인권위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고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이들 인권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가 경로를 이탈하고 있다고 경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인권단체들이 이렇게 강도 높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일까.
문제 상황 1. 무자격 인권위원의 막말과 직장 내 괴롭힘
현재 인권위 문제의 핵심에는 김용원과 이충상 두 상임위원이 자리하고 있다. 인권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11인의 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관이며, 이 중 상임위원은 3인으로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에 해당한다. 김용원과 이충상 두 상임위원은 국민의힘 및 대통령의 지명 혹은 추천으로 임명된 인물들이다.
문제는 상임위원이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인권 관련 경험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인물들이 정치적 인연을 바탕으로 낙하산식으로 임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충상 위원은 윤석열 대통령 후보 캠프의 사법개혁위원장을 지낸 바 있고, 김용원 위원은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 부산본부’의 상임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윤석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들은 판사나 검사로서 인권 관련 경력을 내세우지만, 임명 배경이 정치적 보은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러한 문제는 과거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을 맡았던 유영하 국회의원이 상임위원으로 재직했던 사례에서 보여주듯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그 양상 이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고 전문성이 결여된 인물들이 인권위원이 되어 인권침해 진정 사안을 다루니 인권위의 기능 저하가 곧바로 나타난다. 인권 보호를 기관의 목적으로 하는 인권위에서는 물론이고, 일반적인 공공기관의 회의 석상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언행이 난무한다. 공식 회의에서 인권단체를 ‘인권 장사치’로 폄하하거나 기자를 ‘기레기’라 칭하는 발언이 이어졌으며,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이 스스로 놀기 위해 너무 많이 모여 참사가 났다.”라는 발언을 하며 구조적 원인을 부정했다. 이러한 막말뿐만 아니라, 이들은 ‘노란봉투법’ 제정에 반대하고 ‘윤석열차’ 사건 및 ‘채상병’ 사건에서 친정부적, 친기업적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사형제나 국가보안법 폐지 등 인권위가 20년 동안 유지해 온 기본 입장을 뒤집으려는 시도도 하였다.
이들은 인권위 내부에서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자신들과 성향이 맞지 않는다고 일부 인권위 직원들을 몰아세우고, 공개적으로 징계 운운하며 위협하여 압박하였다. 이충상 위원은 직원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특별감사를 받았고 그 결과 권한 남용과 부당한 요구 지시를 한 사실이 인정되기도 하였다. 이충상 위원으로부터 신분상 불이익을 줄 것 같은 문자를 받은 직원은 사직서를 내기도 했다. 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받은 일부 직원은 스트레스로 병가를 내기도 하였다.
문제 상황 2. 위법한 위원회 운영과 합의제 정신의 훼손
<문제 상황 1>이 인권위원 개인의 일탈 문제라면 합의제 기관의 심의의결권에 대한 운영이 위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어찌보면 더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는 이른바 국가인권위원회 의결의 근간이 되어온 합의제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인권위에는 장애인, 차별, 아동, 자유권 등 분야로 5개의 소위원회가 존재한다. 법에 따르면 소위원회는 3인 이상 5인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상임위원이 맡는다. 여기서 핵심은 소위원회의 의사 및 의결정족수다. 현행법에 따르면, 소위원회는 구성 위원 3인 이상의 출석과 3인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현재 소위원회는 모두 3인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20여 년 간 소위원회의 관행은 전원 찬성(3인 모두 찬성)일 경우에만 의결할 수 있었으며, 의견이 갈려 3인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 해당 진정 사건을 전원위원회로 회부해 11인의 위원이 토론을 거쳐 결정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관행에 대해 김용원, 이충상 상임위원 등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소위원회의 심의 결과 3인의 전원 찬성이 아닌 경우(예: 2인 찬성, 1인 반대) 위원장이 기각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원 위원은 소위원회의 다른 위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소위원회에서 정의기억연대가 제기한 인권침해 진정을 기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진정기각결정은 법원에서 위법한 것으로 판명되었다(서울행정법원 2023구합82360). 법원은 “소위원회가 진정을 기각하는 경우에도 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법이 소위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적어도 3인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는 것은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도모하는데 만전을 기하고 전원위원회 의결에 준하는 실체적·절차적 정당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볼 수 있다.”라고 판단하면서 김용원, 이충상 상임위원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음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위는 최근 ‘소위원회에서 의견 불일치일 때의 처리’ 안건을 통과시켰다. 의결된 사항은 기존 3인으로 구성되던 소위원회를 4인으로 확대하며, 의견이 2:2로 동률일 경우 소위 원장이 “부결 선언과 함께 진정을 기각 또는 각하할 수 있다.”라는 것인데, 결국 그 핵심은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상임위원에게 진정 사건의 기각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충상, 김용원 상임위원에게 기각결정의 권한을 주는 셈이다.
이러한 의결이 법원 판례의 태도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소위원회의 위원수가 3인이든 4인이든 3인 이상이 찬성/기각을 해야 소위원회가 안건을 의결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법해석인데, 이 의결은 2인만 찬성/기각해도 소위원회가 기각을 선언할 수 있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위법 여부를 떠나 인권위가 지난 20년간 이러한 관행을 유지해 온 이유를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인권위는 소위원회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전원위원회에 회부해 논의를 거친 후 결정을 내렸을까? 이는 인권위라는 기관의 목적과 본질에 깊이 뿌리내린 운영 원칙 때문이다. 인권위는 인권 침해에 관한 판단을 내리는 기관으로 주로 교도소나 시설 등 국가기관이 진정의 상대방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인권침해 진정 사안을 기각하거나 각하할 때는 더욱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즉, 소위원회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진정 사안은 전원위원회로 회부되어 더 많은 위원들이 심도 있는 토론을 거친 후 판단함으로써 진정 인의 인권 보호를 한층 강화하려는 취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소위원장인 상임위원에게 기각 결정 권한을 부여할지의 문제가 아니라, 합의제 관행 속에 내재된 인권 보호라는 기관 고유의 목적과 가치를 훼손할 심각한 위험을 내포한 중대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문제 상황 3.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흔들리는 입장
상술한 문제들에 대한 책임은 먼저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표하는 위원장에게 있다. 그러나 안창호 위원장은 이 책임을 다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그는 위원들의 문제가 있는 언행을 제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합의제 정신을 훼손하는 위법적 운영에도 동조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위원장 자체의 자질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점이다. 올해 9월 임명된 안창호 위원장은 성소수자와 차별 문제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진 인물로, 인권위의 설립 목적과 배치되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드러내 왔다. 그는 임명 전 저술과 강연 에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부모-자식 간 성적 행위, 소아성애, 짐승과의 성행위 등이 정당화될 수 있다.”라거나 “차별금지법 제정은 공산주의 혁명으로 이어진다.”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쳤으며,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기관의 수장이 이러한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히니 인권위의 업무 추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은 인권위가 출범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지향해 온 핵심 정체성과 같은 사안이지만, 최근 이를 둘러싼 변화의 조짐이 뚜렷하다. 2025년 업무계획 수립을 위한 국장단 회의 이후 각 부서에 공유된 평등법 관련 회의 결과에서는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이 없고, 인사청문회 및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됨. 평등법 관련 업무 내용을 현 상황을 고려해 정비 요청”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인권위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안창호 위원장은 차별금지법 추진을 포함한 인권위 업무보고 내용에 대해 “자신의 의사와 다르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혀 논란을 키웠다. 이에 따라 고위 간부들이 위원장의 입장에 맞춰 기관의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는 내부 비판도 나오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인권위가 설립 이래 일관되게 지켜온 정체성이자 핵심 목표다. 그러나 현재 위원장의 문제가 있는 입장과 이에 동조하는 고위 간부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인권위의 정체성과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나가며: 인권위가 제자리를 찾기 위한 대안의 모색
지금까지 살펴본 문제들은 인권위원과 인권위원장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권위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운영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에는 인권위원을 탄핵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과 무자격 인권위원 임명을 방지하기 위한 인선 절차의 개선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법안들은 인권운동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있는 만큼, 치열한 논의와 함께 실효성 있는 개선 방안의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인권위의 운영 문제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고소·고발 등 사법적 조치를 포함한 법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물론, 인권위가 제자리를 찾기 위한 노력은 단순히 법률 개정과 외부의 비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인권위 내부에서 퇴행을 막고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동시에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압력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결국, 인권위가 본연의 목적과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과 사법적 조치를 넘어, 인권위 내부와 외부,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협력하는 포괄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이는 단순히 한 기관의 문제를 넘어, 인권을 보장하고 증진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월간 <복지동향> 2024년 12월호(제3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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