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예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활동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 퐁니 마을 응우옌티탄(Nguyễn Thị Thanh, 이하 ‘퐁니 탄’)과 하미마을 응우옌티탄(동명이인, 이하 ‘하미 탄’)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매일 법원, 국회, 대통령실을 오가며 진실규명과 사과를 요청했다. 그리고 방한 네 번째 날, 조금 다른 행사가 있었다. 21일 토요일 영등포 사랑의 힘 꿈이룸소극장에서 진행된 <베트남전 피해 생존자, 참전군인, 시민이 함께하는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다.
이 행사는 생존자와 참전군인의 피해와 가해 구도를 벗어나, 전쟁 이후 현재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었다. 두 응우옌티탄과 그의 통역사 응우옌 응옥 뚜옌(한국 이름 시내), 베트남전 참전군인 김영만과 류진성(관객) 그리고 시민들은 현재의 시간에 집중하며, 57년 전의 학살과 오늘을 연결 짓는 이야기를 나눴다.

퐁니 마을과 하미 마을 두 응우옌티탄의 오늘
이번의 방한은 퐁니 탄에게는 5번째, 하미 탄에게는 4번째다. 현재 두 사람은 모두 한국에서 소송(퐁니 탄, 하미 탄)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방한의 첫째날, 두 사람은 대법원과 행정법원으로 향했다. 대법원에 퐁니 탄의 의견서를 제출하고, 행정법원에선 변론기일에 참석해 하미 탄의 목소리를 재판부에 전달했다.
법정 공방이 길어지고 있다. 퐁니 탄은 처음 1심 승소 소식을 들었을 땐 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법원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긴 투쟁에 두 사람이 지치지는 않았을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대법원판결이 어떻게 될것 같냐는 질문에, 승소할 것이라 확신한다며 웃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은 130여 개 마을에서 발생했고, 1만 여명의 피해자가 있다. 퐁니 탄은 그 중 국가배상 소송을 치르고 있는 단 한 명의 사람이다. 그는 그 사실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소송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소송해야한다.”라고 여러 번 말했다.
퐁니 마을 사건이 국가배상 소송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25년간 극적으로 발견되고 쌓여온 증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미 탄도 국가배상소송을 하고자 했지만, 하미 마을 학살에 대해 발견된 증거가 충분치 않아 진화위에 사건 조사 요청만 한 것이다. 사회자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 이하 ‘임재성’)는 “증거의 유무는 결코 피해자의 책임이 아니”라며 아쉬운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 조사마저 거부한 진화위와 그것을 용인한 행정법원이 야속하지 않을 리없다. 하미 탄은 진실을 밝히는 데에 왜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속상함을 표했다. 퐁니 탄의 승소 소식을 들었을 때도, 무척 기뻤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운하고 아쉽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해가 되었다. 하미마을의 학살은 결코 퐁니 마을의 사례보다 작거나 덜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미마을은 잊혀도 되는 마을이 아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 김영만의 오늘
김영만은 베트남전 참전군인이자 시민운동가다. 그는 이 자리에 초대를 받고, 괴로웠다고 한다. 학살 피해 생존자 앞에서 자신의 고통을 말할 낯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피해 생존자들이 무엇보다도 참전군인의 사과를 원한다는 얘기를 듣고서 참석했다. 공개 행사 전 짧게 가진 비공개 만남에서, 두 탄이 학살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참전군인을 보는 것에 만족해하는 것을 보며 그는 참석하길 잘 했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소식이 막 알려지기 시작한 2000년, 그는 한겨례21에 <‘진정한 명예’를 위한 긴급제안!>이라는 글 하나를 실었다. 한겨레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보도에 반발한 참전군인들이 신문사 건물을 점거하며 항의하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그가 한겨레 사에 보낸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전우’들에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쟁으로 증오와 복수심에 휩싸이게 된 ‘우리’가 민간인을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자고 말한다. 짜빈동 전투에서 잃은 전우 오 일병의 말 “우리 비겁하게 싸우다가 용감하게 귀국합시다”를 전하고 자신의 연락처를 말미에 남기며 글을 마쳤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는 시민운동, 반전 평화운동을 해왔다.
그는 전쟁 당시 얼굴에 총을 맞았다. 총알에 볼을 지나 코안까지 박혀 들어갔는데, 전쟁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코에서 계속 피비린내가 났다고 했다. 너무 끔찍했던 전쟁의 장면이 쉽게 자신을 떠나지 않았다며 그 괴로움에 대해 말했다. 그 괴로움 때문에 베트남전에 대한 어떤 훈장도 보상도 받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전쟁이 집단광기라고 했다.
“계속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오고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면 며칠 만에 정신이 이상해져요. 돌아버립니다. 엄청난 공포감. 전쟁은 용감함이 아니고 공포감에서 진행되는 겁니다. 그리고 증오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적으로 보이고 그렇게 미칩니다. 그걸 경험한 청년들이 사회에 나오면 알게 아무리 정신을 차린다 해도 알게 모르게 그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하면 안됩니다. 전쟁을 하면 군인보다 민간인이 훨씬 더 많이 죽는다는 것도 제가 봤잖아요. 나중에 가면 몰라요. 내가 죽인게 베트콩(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인지 민간인인지.”
전쟁은 전장에 있던 이에게만 상흔을 남긴 것이 아니다. 김영만은 한 인터뷰에서 “전쟁에 다녀온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려 나간 다리가 자라지 않는 것처럼 잘려 나간 영혼도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상처 이후에도 삶을 계속하기 위해선 그의 아내, 가족 등 주변인의 엄청난 돌봄이 필요했을 것이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은 총 32만 명 정도였다. 이들은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받았지만 적절한 치료나 보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중 대다수는 이제 세상에 없다. 고작 한 명일 뿐인 사람들이 폭력에 동원되고 폭력을 행하고 폭력에 무너졌다. 그에 대한 진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피해와 가해 이분법 너머 학살을 말하는 것은 가능할까
사회자 임재성은 이 자리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고민하는 시민사회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형태의 자리라고 전했다. 가해자의 고통에 대한 증언이 ‘나도 피해자다’라는 선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다른 고통을 같은 자리에서 얘기하는 것이 적절할까? ‘가해자’의 고통 증언이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되지 않을까? 이분법 ‘너머’의 이야기가 정말 가능할까?

이번의 자리는 그 가능성을 시험해 본 첫 번째 자리였다. 퐁니 탄은 김영만의 고통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하미 탄 또한 김영만 얼굴의 흉터를 보니 그곳에 “풀리지 않은 고민과 상흔”이 있는 것 같다며 그가 사과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어 감사하다 했다. 김영만과 류진성은 피해자를 만나는 것이 본인들에게도 힘든 일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적어도 두 사람에게는 제대로 사과하고 용서받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 느꼈다며, 이들과 함께 계속 말하는 것이 자신의 몫인 것 같다고 했다. 네 사람은 모두 다른 경험이 있으면서도, 모두 공통의 요구를 했다. —한국 정부의 진실 규명과 사과, 그리고 평화.
이 새로운 구도의 대화에서 아슬아슬해 보이는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날 서로를 처음 만난 참전군인 김영만과 류진성은 이야기 내내 서로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전우애와 친밀감을 드러냈다. 그 친밀감 사이 두 탄이 낄 틈은 없어 보였다. 두 탄은 자주 너그럽게 용서하는 여성, 참전군인의 진솔한 고백에 감사하는 피해자의 위치에 놓였다. 네 당사자의 관계 역학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네 사람의 관계는 단지 피해와 가해의 위치뿐만 아니라 성별(여성-남성), 출신 국가(저소득국-고소득국), 현장에서 사용되는 언어(비모국어-모국어) 등에서 비롯된 역학에도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얽히고설켜 있는 여러 이야기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소임
베트남 피해 생존자들은 자신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고, 학살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괴롭지만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소임’이라고 말했다. 퐁니 탄은 국가배상 소송에서 승소한다면 이후에도 “다른 피해자와 함께 계속 싸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자신의 소송만의 승리는 진짜 승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살 피해 생존자도, 참전군인도 이제 모두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이 투쟁을 십 여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퐁니 탄은 “혹시 내가 없더라도 이 운동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했다. 하미 탄도 이번의 방한 일정 동안 여러 번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135명의 넋을 기리는 하미마을 위령비 비문이 연꽃 그림 대리석에 덮여있다고 얘기하며, 그 비문은 후세들이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지를 보여주는 것이니 어서 대리석을 떼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시민들은 ‘살아남은 자의 소임’이 자신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시민들 중 일부는 자신의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가 참전군인이었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시민들은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학살과 전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및 이란 선제공격(행사 다음날, 미국은 이스라엘에 이어 이란을 불법 침공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베트남에 건설 중인 한국기업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초래하는 생태 학살 등.
이야기의 말미에, 퐁니 탄은 “나는 학살로 가족을 잃었고 정말 힘들게 살았다. 한국에 올 때마다 많은 질문을 받고, 많은 말을 하지만, 나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 있는 걸 다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미안하다.” 사회자 임재성과 주변의 활동가 모두는 그렇지 않다고, 늘 퐁니 탄이 하는 이야기에 감탄하고 감사한다고 했다. 탄의 말을 들으며 느낄 수 있었다. 말 너머의 무수한 기억들. 그 일이 일어난 순간 몸에 착 붙어 영원한 기억이 되어버린 어떤 장면들. 도저히 말로 전하기 어려운 감정들. 그것의 무게. 앞으로도 우리는 그 무게를 기억하며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다음의 평화를 위해 끈질기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일시| 2025.6.21.(토) 16~18시
🔴 내용| 퐁니 마을 응우옌티탄, 하미 마을 응우옌티탄, 참전군인&시민운동가 김영만 선생님과의 이야기 나눔
🔴 사회|임재성(법무법인 해마루)
🔴 장소|<사랑의힘> 꿈이룸소극장 (2호선 영등포구청역에서 도보 7분)

🔵 일시|2025.6.20.(금) 19~21시
🔵 내용|1부 베트남 다큐 <평화로 가는 길> 상영회 (1시간)
2부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과의 GV
🔵 사회|손희정(문화평론가/프로젝트38 멤버)
🔵 장소|<사랑의힘> 꿈이룸소극장 (2호선 영등포구청역에서 도보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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