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5 2025-09-01   11097

[편집인의 글] AI, 무한도전이 아닌 유한도전 :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을 위한 새로운 거울

이주하ㅣ편집위원장,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AI는 21세기의 ‘전기’로, 또 우리 사회의 새로운 ‘거울’로 비유된다. 한 번 불이 켜지면 도시 전체의 풍경을 바꾸듯 AI는 사회 전반을 재편할 강력한 동인이고 나아가 생산성의 기적을 약속하지만, 그 거울은 편견, 부조리 및 불평등까지 그대로 비추며 우리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다. Al 시대의 성장은 누구를 살찌우고, 그 사회가 과연 모두에게 공정할까? 더욱이 새 정부 123개 국정과제에서 주요 비전으로 ‘진짜성장’과 ‘AI 3대 강국’이 제시된 현 상황에서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관계는 어떻게 구축되어야 할 것인가?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단순히 정권교체가 아니라 전방위적인 사회대개혁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대두됨에 따라 복지동향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향한 새로운 개혁과제를 5번에 걸친 시리즈로 기획하였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치, 경제, 복지 등을 다룬 5월호(‘망가진 대한민국의 대전환 과제’)를 필두로 건강, 주거, 돌봄이라는 보다 세부적인 핵심 과제를 6~8월호에서 다루었으며, 시리즈의 마지막 9월호에서는 현 정부의 화두(이자 ‘치트키’)이기도 한 AI와 성장에 대해 4편의 기획 글을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먼저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장은 AI가 경제성장, 사회복지 및 기후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실질적인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21세기 25년 동안 디지털 기술들이 초기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처럼, AI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세모글루가 지적하였듯이 GDP 성장률을 크게 높이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대규모 데이터센터 증설로 인한 막대한 전력 소모와 환경 부담은 확실한데, 한국 정부의 정책은 여전히 성장주의에 치우쳐 복지·생태와 조화는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AI 기반 성장’ 중심의 접근에서 벗어나 복지와 생태의 선순환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사회 비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으며, AI는 더 많은 물질 소비를 자극하는 ‘효율성’ 극대화 도구가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고려하고 꼭 필요한 만큼의 소비를 하려는 ‘충분성’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로 활용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이원재 LAB2050 이사장은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진짜성장’ 개념이 기존의 부동산 중심이나 소수 부유층만의 ‘가짜성장’과 달리 기술 기반의 지속가능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포용적인 성장을 지향하는데, 실제로 이를 어떻게 측정·평가할 수 있을까에 천착하였다. 현재 경제 평가의 기준인 GDP는 삶의 다양한 측면 중 시장에서 화폐로 거래되는 부분만 측정하여 환경, 사회적 가치, 불평등, 삶의 질 등 ‘진짜성장’의 핵심 요소들을 놓치고 있다. 1930년대 전쟁과 공황 시대에 만들어진 지표인 GDP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불변의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만큼, 경제뿐만 아니라 일과 여가, 인적자본, 디지털, 환경 등 다섯 영역을 종합적으로 반영하여 우리 사회의 진정한 성장을 측정하는 ‘참성장지표’ 같은 새로운 대안 지표가 필요한 것이다. 소득 격차가 커지더라도 평균소득만 늘어나면 ‘성장했다’라고 보는 GDP와 달리, 참성장지표는 불평등 심화를 성장의 마이너스 요인으로 반영하며, GDP가 놓치고 있는 무급가사노동돌봄의 가치, 인적자본의 가치,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무료 디지털서비스의 가치 등을 성장의 일부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참성장지표처럼 ESG 가치와 디지털 시대에 맞는 지표를 국정과제 평가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기태 박사는 사회보장 행정에서의 인공지능 적용 동향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AI가 활용되는 영역, 순기능 및 역기능, 그리고 안전하고 생산적인 AI 활용을 위한 정책 제언을 체계적으로 요약해서 소개하고 있다. AI는 전 세계적으로 사회보장 행정에서 빠르게 도입되고 있으며, 자격심사, 급여 산정과 지급, 부정수급 탐지, 맞춤형 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는데, 한국도 최근 5년간 36건의 복지기술 사업을 추진하였다. AI는 효율성, 적시성, 정확성, 맞춤형 서비스, 접근성, 정책 평가, 사각지대 해소 제공 등을 통해 복지정책 집행의 질적 전환을 가져올 잠재력이 있지만, 개인정보 침해, 데이터 부정확성, 소유권 문제, 알고리즘 개입, 편향성, 설명 불가능성 등의 심각한 위험도 동반한다. 기실 유럽은 이미 이러한 논란을 경험했으며, 한국 역시 유사한 갈등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여기서 신기술에 대한 규제와 지원을 대립적 모순 관계로 보는 시각을 지양하는 것이 중요하다(“지원의 전제는 규제이고, 규제의 이유는 지원이다”). 시장친화적인 AI 정책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보건복지부에 대한 상세한 지침을 제시한 만큼, 데이터 품질 관리,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 검증, 제도적 거버넌스를 통해 인간 중심적이고 민주적인 통제 하에서만 AI의 사회보장 활용이 정당성, 효과성 및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안은혜 워싱턴대학교 교수는 공공서비스 AI의 경우 민간 부문과 달리 시민에게 다른 선택권이 없고, AI의 오류나 편향이 개인의 기본권 침해와 직결되며, 효율성보다 형평성, 투명성, 책임성 등 공공 가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본질적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에서 AI 활용 시 효율성이 (여타) 공공 가치를 밀어내는 현상, 알고리즘 불투명성으로 인한 권력 불균형, 데이터 편향으로 인한 구조적 배제, 예측 기능이 감시와 통제로 변질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AI 거버넌스는 데이터, 알고리즘, 윤리와 가치, 규제 준수, 책임성이라는 다섯 가지 핵심 요소를 민간 부문과 다르게 적용해야 하며, 공공영역에서 AI를 활용할 때는 기술 전문가뿐만 아니라 현장과 시민 참여를 포함한 협력적 설계가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한국 역시 공공서비스의 고유한 특성과 사회적 맥락에 맞는 AI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한 과제임을 역설하고 있다.

과거 부모 세대에게 성장은 일자리와 호황의 상징이었지만, ‘AI를 쓰지 않는다’라는 말이 ‘전기를 쓰지 않는다’라는 말만큼 비현실적인 시대를 맞이할 청년 세대에게 성장은 AI가 일자리를 빼앗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다가온다. 결국 AI 그리고 디지털 전환시대의 성장은 ‘무한도전’이 아니라 형평성, 책임성, 지속가능성이라는 안전장치가 있는 ‘유한도전’이어야 하며, 한 방에 끝내는 치트키처럼 단순한 해법은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참성장’과 AI 거버넌스의 구축에 있어서도 ‘K-표준’을 만들어 나가길, 그리고 복지와 생태가 주춧돌이 된 성장을 바탕으로 AI가 더 나은 공동체를 비추는 새로운 ‘거울’이 되길 바라본다.

월간<복지동향> 2025년 09월호(제3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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