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비정규직 2025-11-12   81302

[논평] 새벽배송 최소화로 노동자의 건강권과 사회적 기준을 다시 세워야

소비자 선택권 배제된 구조적 과로시스템, ‘새벽배송 기본값’ 중단돼야
필수노동 아닌 새벽배송, ‘발암 위험’ 야간노동 축소는 세계적 흐름
야간노동 규제·휴식권 보장 위해 쿠팡은 책임있는 답변 내놓아야

최근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이하 쿠팡)가 참여한 3차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심야·휴일 배송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지면서, 새벽배송을 둘러싼 논란이 첨예하다. 일각에서는 ‘노동자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며 문제를 축소하거나 소비자의 편의를 내세워 현재의 구조를 정당화하려 하지만, 새벽배송은 개인의 선택이나 시장의 수요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과 사회적 기준’의 문제다. 쿠팡의 새벽배송은 시민의 안전이나 국가 기능을 위해 불가피한 노동이 아니라 기업 간 속도 경쟁과 이윤 추구가 만들어낸 구조적 과로시스템이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며 우리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새벽배송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옮겨져야 한다. 참여연대는 소비자의 편의가 노동자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속도 경쟁이 아닌 생명을 기준으로 사회적 기준을 다시 세울 것을 촉구한다. 이를 위해 새벽배송은 ‘제한적 서비스’로 전환되어야 하며, 쿠팡 등 기업과 정부는 야간노동 규제와 휴식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야간노동은 결코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 낮 시간대 안정적인 일자리가 부족하고, 비정규직·특수고용 형태가 일반화된 현실에서 야간노동은 생존을 위한 강요된 선택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통·배송 노동자와 대형 물류창고 일용직은 노동시간 제한의 적용을 받지 못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연속적 고정 야간노동’이라는 유례없는 형태에 노출되어 있다. 쿠팡의 새벽배송은 이러한 구조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속도’의 이름으로 노동자를 혹사시키고, 늘어나는 산업재해의 고통과 비용은 노동자와 시민이 떠안지만 그 이익은 오롯이 쿠팡이 독점한다. 쿠팡의 과로시스템은 심야배송 확대를 전제로 한 인력운용·실적압박, 교대제 부재, 물량 단가 중심의 계약, 이른바 ‘클렌징’ 등 일방적 물량·영업지역 조정, 과도한 수행률·프레시백 회수율 강요가 결합해 과로와 심야노동을 고착시킨 결과다. 새벽배송이 초래한 과로·산재·심야노동은 노동자의 선택이 아니라 기업이 설계한 구조적 착취의 산물이다.

의료나 치안처럼 공동체의 안전과 직결된 필수노동이 아닌 이상, 야간노동은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 새벽배송은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지난해 조사에서 쿠팡 주요 이용자의 58%가 “새벽배송이 중단돼도 불편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서는 64.1%가 “새벽배송이 중단·축소되면 불편하다”고 응답해 새벽배송이 이미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소비자의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쿠팡이 새벽배송을 기본값으로 설정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가로막은 결과다. 소비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도 자동으로 새벽배송을 이용하게 되고, 선택의 주체가 아닌 쿠팡이 설계한 서비스 구조에 수동적으로 끌려간다. 편리함이 사회의 기본값이 되면, 소비자와 노동자는 그 편리함을 유지하기 위해 더 빠른 속도와 더 큰 피로를 감당하게 된다. 결국, ‘편의’는 곧 ‘속도의 압박’으로 바뀐다. 게다가 소비자의 편의 또한 노동의 지속가능성과 건강권이 지켜질 때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속도 경쟁이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면,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현재 불거진 논란의 핵심은 정작 쿠팡이 아무런 문제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쿠팡은 자신이 만든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노동자와 소비자, 노동자와 노동자 간의 대립 구조를 조장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지금도 쿠팡은 “2,000만 소비자가 원한다”, “노동자도 원한다”는 식으로 논점을 흐리며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 전형적인 ‘약자 대 약자’의 대결 구도를 만드는 행태이다. 이로 인해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지는 동안 쿠팡은 막대한 영업이익을 쌓으며 구조적 문제의 중심에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나아가 “허위보도다”, “맹목적 비난이다”라며 문제제기를 폄하하고, 구조적 과로시스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과로사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비극 앞에서도, 쿠팡은 여전히 이윤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쿠팡은 새벽배송의 구조적 문제를 인정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사회적 대화에 임해야 한다.

의학적 근거도 분명하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07년에 이미 야간노동을 2A군 발암요인으로 분류했다. 야간노동은 단순한 피로를 넘어 수면 장애, 심혈관 질환, 당뇨, 우울증 등 다양한 만성 건강 문제를 유발하는 위험 요인인 것이다. 게다가 야간노동 제한은 이미 국제적 추세다. 일본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2019년부터 연간 초과근무를 360시간으로 제한하고, 2024년 4월부터는 운송업에 연간 960시간의 상한을 적용했다. 프랑스는 “야간노동은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고 명문화하고, 독일은 야간노동에 25~30%의 추가수당을 지급하고, 일요일과 공휴일 근로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유럽연합(EU)의 노동시간 지침은 자정부터 새벽 5시 사이 3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를 야간노동자로 규정해 하루 8시간 초과 근무를 금지한다. 싱가포르는 올해 시행된 플랫폼노동자법을 통해 배달·운송 종사자에게 산업재해 보상과 사회보험 적용을 확대하며 이들의 안전과 건강권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주요국들은 ‘더 빠름’이 아니라 ‘더 건강한 노동’을 택하고 있다.

지금처럼 ‘새벽배송이 기본값’으로 작동하는 구조는 바꿔야 한다. 새벽배송은 소비자가 명시적으로 선택하고 꼭 필요한 품목에만 운영되도록 하며, 노동자에게는 합당한 보상과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쿠팡 등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한 경쟁 대신 적정 단가와 물량 기준을 마련하고, 안전장치와 교대제 도입을 통해 저단가·고강도 노동구조를 줄여야 한다. 정부는 야간노동 상한제와 휴식권 보장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새벽배송 축소는 택배기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물류센터·하청포장·운송 등 유통 전반의 노동강도를 완화하고 노동시간 재편의 시작이 될 것이다. 소비자의 편의는 중요하지만,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은 결코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새벽배송은 국가의 필수 기능이 아니라 생활편의서비스이며, 그 편의가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사회는 ‘더 빨리’가 아니라 ’더 안전하게, 지속가능하게’라는 원칙을 세우고 사회적 합의에 나서야 한다. 새벽배송 논의는 노동자의 자유가 아니라 노동의 존엄과 사회적 기준의 문제이며, 새벽배송의 최소화는 과로사 없는 사회로 가는 합리적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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