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민ㅣ국립창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세계인권선언 제25조는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실업, 장애, 배우자 사망, 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결핍 시 보장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은 여전히 ‘선언’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더해, 빈곤, 불평등, 양극화, 기후위기 등 다양한 사회적 위험이 인권을 위협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으며, 내란 사태 등으로 인해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리고 인권이 침해되는 위기도 경험했다. 최근에는 AI 기반 디지털복지로의 빠른 전환 과정에서 당사자의 존엄성과 권리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 또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인권을 사회적 위험과 변화의 맥락 속에서 재조명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인권을 위협하는 다양한 사회적 변화와 이에 대응하는 복지정책의 방향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논의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복지동향> 12월호에서는 사회적 위험과 사회 변화를 인권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 민주주의 위협과 불안정 주거 등 복합적인 사회적 위험 속에서 주목해야 하는 인권의 중요성과 복지적 대응을 고민하였다.
먼저 기후정의동맹, 인권운동사랑방의 해미 활동가는 기후위기를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취약한 이들의 삶을 먼저 무너뜨리는 사회적·인권 문제로 바라본다. 이에 이윤 중심 체제가 재난을 심화시키는 만큼 에너지·주거·먹거리 등을 공공의 권리로 재구성하고, 노동자와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공공성과 권리 체계를 세우는 기후정의는 사회구성원의 연대를 통해 실현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글이다.
다음으로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는 사회보장제도의 디지털화가 빈곤층의 권리를 보장하기보다 감시와 통제의 강화를 넘어 까다로운 기준과 자동화된 결정 구조로 인해 지원에서 배제되는 문제를 심화시킬 것임을 지적한다. 복잡하고 엄격한 선정기준을 비롯하여 입증 책임을 수급자에게 지우는 현재 방식을 개선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디지털화는 ‘디지털을 통한 불평등을 재생산’할 것임을 경고한다. 더불어 빈곤층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디지털 전환이 아닌, 인권과 권리를 중심에 둔 사회 원칙의 전환임을 강조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서채완 사무차장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상호의존적 가치이자 시민적·정치적 권리임을 강조하며, 12.3 내란과 비상계엄 사태를 우리 사회에 누적된 민주주의와 인권 위기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로 평가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빈곤, 격차, 차별, 인권기구의 퇴행, 인권 입법의 반복적 좌절 등 지속적인 인권 후퇴를 겪어 왔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권을 중심으로 한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며, 사회권 보장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라는 점에서 이러한 개혁이야말로 진정한 내란 청산이자 민주주의 회복의 핵심 과제임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불평등 물어가는 범청년행동의 이한솔 위원장은 주거권에서 지속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현실을 문제제기한다. 실제로 공공임대주택제도는 표면적으로는 ‘모든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하지만, 정상성 규범·가부장제·국가주의에 기반해 여러 집단을 구조적으로 배제한다. 이로 인해 장애인,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비혼 동거 가구, 외국인은 제도 설계에서 고려되지 않거나 권리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상성 규범을 답습하고 시민의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하는 관행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적 인권인 주거권 보장은 요원할 것이다.
이처럼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 민주주의 후퇴, 주거 불안정 등은 서로 다른 영역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모두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인권 의제들이다. 사회적 위험이 심화될수록 인권은 더욱 취약해지고, 인권이 흔들릴수록 민주주의와 복지도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선언적 차원의 인권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권리를 재구성하고 제도를 개혁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인권이다. 인권을 중심에 둔 복지체계와 사회적 대응을 통해서만 사회적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25년 12월호(제3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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