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6년 01-02월 2025-12-31   75355

[특별 기고] 내란 너머의 위기에 대해 말하기

2025년 12월 8일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라운드 테이블 '내란 너머의 정치' 현수막 사진.
ⓒ권동원

[라운드테이블] 내란 너머의 정치

  • 일시: 12/8(월) 오후 2시 30분
  • 장소: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 패널
    •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진행)
    • 구세진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박선경 고려대 글로벌한국융합학부 교수
    • 이태호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 지주형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내란 너머의 위기에 대해 말하기

12.3계엄은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 헌정질서를 외파하려는 명백한 친위쿠데타다. 그리고 그것의 일차적·직접적 책임은 윤석열과 내란에 가담했던 정치엘리트에게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말머리에 적은 것은 ‘윤석열 너머’를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엄은 하나의 사건이었고 사건의 직접적인 피의자 또한, 명확하다. 그러나 사건은 언제나 사회적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 사건의 경우, 다양한 시간대가 교차하는 가운데 정세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이유로 내란에 대해 말한다는 건 불가피하게 윤석열을 초과한다.

우리는 내란을 스스로 ‘제왕’이라 착각했던 윤석열 개인과 정치엘리트들의 욕망이 벌인 자기파괴적 행위로 이해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 정치에 내재한 어떤 고유한 문제들을 통해 살펴봐야 한다. 사건을 행위자 차원으로 좁혀볼 수도 있지만 사회적인 맥락을 통해 확장해 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 즉, ‘윤석열 너머’를 말한다는 것이 곧장 ‘윤석열들’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결단’의 불가피성을 간접적으로 규명해 준다고 받아들여지면 곤란하다.

행위자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건 형사사법적 관점이고, 양자를 교차 결합하는 것은 사회운동적 접근일 것이다. 우리는 행위자 차원을 바탕에 깔고 후자로 나아가고자 한다. 내란 1년이 지난 현시점, 라운드테이블 〈내란 너머의 정치: 적대와 교착을 넘어서기 위한 민주주의자들의 고민들〉은 이러한 고민에서 준비됐다.

적대와 교착으로 드러나는 위기 구조

라운드테이블의 부제인 ʻ적대와 교착’은 내란 사건의 중핵을 이루는 개념이면서 동시에 우리 정치가 처해있는 불행한 현실을 드러낸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비민주적 견제로서 적대와 ‘일방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비타협적 정치라는 교착이 반복되는 현실 말이다. 주지하듯 계엄 직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우리 정치의 극단적 교착과 적대는 ‘심리적 내전’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거세지고 있었다. 정당정치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우리 헌정의 원칙을 당파적 이익을 앞세우고 강성지지자들을 동원하며 훼손해 왔다. 그리하여 견제는 적대가 되고 균형은 교착이 되었다. 거부권과 탄핵, 시행령통치 등은 권한의 자제 규범을 정치 스스로가 파괴한 대표적인 정치 실패의 사례들이다.

“정치적 교착이 너무 심해지면 어떤 사람들은 물리적 수단을 통해 타파해야겠다는 유혹을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다”(지주형). 다시 말하지만, 이 말은 계엄의 불가피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계엄을 둘러싼 구조적 조건을 규명하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적대적 교착’은 왜 발생하는가?

답을 찾기 위해선 내란을 ‘위로부터의 위기’ 즉, 정치엘리트에 의해 촉발된 사건으로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선경 교수는 정치엘리트의 질적 측면의 하락을 핵심적인 원인으로 꼽는다. 특히 ‘국민의힘’의 ‘타락’을 살펴봐야 하는데, 보수정당 내 유능한 정치인, 대화가 가능한 정치인이 지난 세 번의 총선을 거치면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단순다수대표제와 지역주의가 결합하면서 만들어낸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다수 선거구 문제와 얽혀있다. 정치인들이 선거시기에만 지지자들을 도구적으로 동원하고 당내에서 눈에 띄기 위한 극단적 언행을 택하는 부정적 인센티브 구조가 자리 잡은 것도 심각한 문제라는 구세진 교수의 진단도 궤를 같이 한다. 경선과 당선을 위한 동원과 경쟁만 과열되는 상황은 가뜩이나 허약한 정당체제를 안팎에서 무너뜨린다.

지주형 교수는 좀 더 구조적인 측면에서 대표의 측면에서의 불균형을 지적한다. 정치의 노동이나 소수자, 청년여성들의 배제 경향과 더불어 최근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 등은 체제의 불안정을 초래하는 요소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우위의 정책이 지속되는 가운데 계층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중산층의 불안감이 상당한 것도 불안요인이다. 그러나 고착화된 양당제가 초래하는 대표의 불균형 상태는 적대를 동원하면서 과열구조를 강화할 뿐이다. 유권자는 어쩔 수 없이 두 당 중 하나에 투표하지만 이마저도 상대가 싫어서 다른 정당에 투표하는 행태로 나타난다. 어느 정치세력도 확고한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채 벌어지는 정당 간 갈등과 경쟁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교착가능성을 높인다.

반복되는 실패의 원인과 섬세한 접근의 필요성

앞선 진단이 옳다면 우리 사회는 정당정치의 개선이나 대표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정치개혁을 시급한 과제로 삼아야 하겠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태호 위원장은 제도 형성의 역사적 특성에 주목한다. 군부독재나 보수정치 세력이 장악한 권력자원에 맞서 민주주의 정치세력의 전략은 ‘선거혁명’이었다. 해방 이후 자원을 독점해 온 이들에 맞서 선거를 통한 ‘한 판 뒤집기’를 주요한 투쟁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제도개혁 논의 대신 기존의 제도를 활용하여 상대를 정치의 장 바깥으로 몰아내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선거 패배 시에는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승리 시엔 자연스럽게 기존 제도를 유지 존속시켰다. 특히나 역사적으로 한국은 반공 안보 국가였던 탓에 민주주의 세력은 다양한 분열 공작에 맞서기 위해서도 힘의 집중 즉, 단결이 필요했고 그런 이유로 지금의 대통령제, 단순다수제·소선거구제와 같은 승자독식 규칙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적대적 교착은 표면적으로는 의회 권력과 대통령 권력 간 충돌을 뜻한다. 이에 다수의 전문가들은 우리 정치체제에 깃든 두 권력간 이원적 정통성을 적대적 교착의 구조적 원인으로 거론한다. 양자 간 갈등은 분점정부 상황에서 특히 심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계엄 직전까지 다수 야당이었던 민주당과 소수 여당이었던 국민의힘 간 극한 대결이 정치의 복판에서 벌어졌다.

그렇다면 대통령제가 문제인가? 아니면 혹자들이 주장하듯 ‘제왕적’ 성격이 문제인가? 진단에 따라 개선의 방향도 달라질 것이다. 박선경 교수는 정치엘리트와 대중이 가진 대통령에 대한 과한 기대가 낳는 착시와 오인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제도적으로도 한국의 대통령은 제왕적이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박정희 모델은 대통령을 제왕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역사적 시원이 된다.

실제로 제왕적이었던 박정희처럼 무엇이든 바꿀 수 있는 전능한 대통령에 거는 기대가 정치적 경쟁을 대통령을 향한 투쟁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대통령을 둘러싼 권력자원의 배치가 대통령을 제왕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좋은 식으로든 나쁜 식으로든 승자독식의 유인이 대통령에게 가장 강력히 발동되는 것이다. 이원적 정통성 문제도 적대적 교착의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에선 대표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당이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의회권력을 통해 대표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함으로써 다양성 측면을 보완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한다면 대통령 권한의 축소는 조금 더 섬세하게 접근할 문제가 된다.

구세진 교수는 우선 현재 대통령과 의회 간 권력불균형 문제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의제설정 권한이 대통령에게 치우쳐 있기 때문에 정책·재정·예산·감사에 대한 충분한 통제권과 견제수단이 의회에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대통령 영향력 아래 있는 광범위한 임명권한의 축소도 필요하다.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과 레임덕 대통령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실제로 제왕적이지 않은 대통령의 권한을 과도하게 축소했을 때, 외려 무리수를 둘 가능성은 커지게 된다는 우려도 크다. 의회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나 의회를 우회하는 시행령 통치, 법적 권한의 남용 유인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박선경 교수의 지적처럼 대통령이 의회권력에 행사하는 과도한 권한을 당정문제로 접근하면 대통령과 여당 간 관계의 정상화를 통해 일정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입법교착 문제도 정치행태나 규범을 통한 설득과 타협 등의 정치과정으로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은 맞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정치의 복원을 통해 조정해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잠복한 위기와 해소할 유일한 힘

우리 정치를 수년간 휘감고 있던 적대적 교착 문제는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듯 보인다. 민주주의는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으나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으로 위기는 봉합되었다. 단점정부를 형성한 여당과 대통령 지지율도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해소되었다기보다 잠복한 상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주형 교수는 정치세력 간 타협과 조정이 부재한 현재의 균형상태가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경제적 위기요인들이 정권의 지지율 유지에 점차 영향을 줄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태호 위원장은 전쟁의 시대로 접어드는 국제정세 아래에서 여전히 평화체제를 수립하지 못한 우리 현실이 극우 발호의 유리한 환경임을 거듭 강조한다. 극단적 대립이 파시즘으로 분출할 수도 있는 정세에서 시민들의 연합전선을 비롯한 전략적인 논의가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더해 구세진 교수는 불로소득을 맹신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물질주의적 경향의 심화를 위기의 토대로 지목한다. 이러한 전망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적대적 교착 문제를 제도개혁으로만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내란은 계엄의 방식으로 한 차례 벌어졌지만, 잠복한 위기의 구조는 또 다른 방식의 내란 즉, 극단적 대립의 분출과 적대적 분열로 격화될 수 있다는 불행한 전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여러나라들에서 목격되는 헌정위기는 계엄과 같은 외파 보다 민주적 수단을 통한 잠식을 통해 벌어진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를 믿는 시민들이 여전히 더 많다. 과열되는 정치적 대립을 거부하는 시민들도 많다. 강성지지층에 포획된 정치인들의 부적절한 언행을 예리한 눈으로 살피는 시민들, 당파적 이익을 공동체의 이익으로 포장하는 반정치적 선전을 단호히 거부하는 시민들, 힘의 논리 대신 지난하지만 협상과 설득의 힘을 믿는 시민들 모두 여전히 우리 공동체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내란을 종식한다는 건 즉, 내란 너머의 위기구조를 파훼한다는 건 이러한 시민들의 힘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팀장의 프로필 사진.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팀장

돌아볼수록 나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의지의 낙관보다는 객관적 인식과 우연한 마주침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