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미국의 부당한 ICC 제재에도 침묵하는 한국 정부

한국은 ICC 로마규정 성안 과정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한 당사국
지금이라도 ICC 공개 지지 표명하고 부당한 제재에는 반대해야
한국은 국제규범에 근거한 소신있는 외교 펼쳐야

지난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수장인 아카네 도모코 소장 등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것에 더해, 10월 9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ICC 자체에 대한 고강도 제재를 발표했다. 9일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을 포함한 8개국 외무장관은 공동 성명을 발표해 ICC 제재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같은 날 유럽연합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등 21개국으로 이뤄진 ICC 가입국 의장단도 제재에 대한 우려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은 ICC 의장단 전체 명의의 공동 성명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으나, 자체의 공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한국은 ICC 로마규정 당사국이자 ICC 현직 재판관 배출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제재에 대해 한 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처사이다. 한국 정부는 지금이라도 ICC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미국의 부당한 제재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ICC는 전쟁범죄,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및 침략범죄를 심판하는 국제재판소로, 한국은 ICC 로마규정 성안 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당사국이다. 취임 이후 꾸준히 국제평화와 인도주의 원칙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던 이재명 정부가 미국의 ICC 제재에 최소한의 유감표명조차 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은 ICC가 벤자민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 정부 수뇌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을 비난하며 이러한 제재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독립 조사위원회는 2025년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일은 집단학살이라고 판단했다. 2023년 10월 이래 지금까지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는 7만 4천 명이 넘고 그 중 상당수가 여성과 아동 등 민간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ICC가 집단학살의 책임자들에 대한 체포명령을 내린 것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온당한 처사이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미국은 물론 어느 국가도 국제사법기관의 독립성과 국제법치 정신을 존중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다. 또한 미국과 이스라엘, 러시아 등 모든 국가에 국제규범의 보편적 적용은 당연하다. 이에 한국 정부는 미국에 ICC 제재 철회를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국제규범과 질서를 수호하고자 하는 다른 국가들과 함께 제재 철회를 위한 공동 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제재의 대상이 되는 ICC 재판관들을 비롯해 그 영향을 받는 국내 기관·단체·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수단도 검토해야 한다. 국제규범을 지키기 위한 한국 정부의 소신있는 외교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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