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재벌 혼맥도 공개
유태현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실장
“재벌들이 자기들끼리, 또는 정계, 관계, 언론계 인사들과 혼맥을 형성하는 것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사회의 지도층들이 그 위치에 걸맞는 책임의식과 도덕성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국내 52개 재벌그룹을 중심으로 정계, 재계, 관계, 언론계 등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이 자녀들의 혼인을 통해 일종의 ‘지배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대 혼맥도를 공개한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의 유태현 연구실장은 1일 “상류층들이 사회적 책임은 등한시한 채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하다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재벌 모든자료 DB 구축중
-공개된 재벌 혼맥도는 참여사회연구소가 진행하고 있는 재벌연구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라고 하는데 =2002년 8월부터 참여사회연구소와 인하대 산업경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재벌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재벌의 소유·재무·사업구조는 물론 노사관계, 가계, 혼맥, 경영진 등 한마디로 재벌에 관한 모든 것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하려고 한다. 40여명의 연구진들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오는 2005년 8월까지 3년간 진행할 계획인데, 오는 3월께 2차연도 연구성과를 발표한다.
-재벌연구에 굳이 혼맥을 포함시킨 이유는 =재벌에 관한 모든 것을 자료화하자는 취지였다. 재벌에 관한 총체적 연구를 위해서는 혼맥도 빠뜨릴 수 없다. 정경유착이 지금보다 심했던 시절에는 정부가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할 때는 재벌이 정·관계 유력인사와 맺은 혼맥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겠는가 재벌 혼맥이 소유·사업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번 자료가 도움이 될 것이다.
-재벌 혼맥을 연구하면서 느낀 점은 =연구 전에도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재벌과 정·관계, 언론계의 혼맥이 대단한 것에 새삼 놀랐다.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이 생각보다 훨씬 더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인 권노갑씨가 전두환 전 대통령 집안과 사돈이었다는 점은 상징하는 바가 많다. 김대중,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의 관계로 볼 때 그 혼사는 다분히 정략적이다. (현재는 당사자들의 이혼으로 관계가 끊어짐) 또 조선, 중앙, 동아 등 3개 신문사 사주들이 재벌들과 혼맥으로 연결돼 있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다. 그들이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사회에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정.관계서 재벌끼리 눈돌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재벌들이 정계나 관계와 혼인한 비중이 높았는데, 그 이후로는 재벌간 혼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재벌의 권력화’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재벌의 힘이 세지면서 정·관계와 혼인할 필요성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부침이 심한 정·관계보다는 오히려 같은 재벌끼리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요인은 재벌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다른 계층과는 단절된 채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는 ‘끼리 문화’의 작용이다. 유치원을 시작으로 학교에 함께 다니다가 유학도 같이 가는 것 아닌가 재벌가의 산모들이 원정출산을 가서도 특정 산부인과에서 같이 애를 낳는다고 한다. 또 재벌 안방마님들이 어울리다보면 자녀들 혼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결과적으로 ‘기득권 세습’이 더욱 공고화되는 것이다. 서구처럼 우리사회도 이제 자본가 계급이 새로운 귀족계층, 상류계층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연구에 어려움이 컸을 덴데.
=당사자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보가 될 만한 것을 모두 직접 확인해서 조각 조각 모았다. 인터넷이나 언론사의 인물 데이터베이스, 심지어 부고와 인물동정, 여성지까지 뒤졌다. 확인한 재벌가 혼인사례만 700여쌍에 이르는데, 한 헤어아티스트가 혼사 때 머리를 해 준 재벌가의 신랑, 신부 이름을 인터넷사이트에 올려 놓은 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재벌 혼맥이 부정적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해 당사자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인데 =재벌들의 혼맥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과거 정경유착 등을 통해 그들 스스로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가 재벌들을 비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어느 사회이든 지도층은 존재하는 것이고, 그들끼리 결혼하는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도층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에 맞는 도덕적,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책임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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