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이념’이란 사회와 인간의 본질적인 성격은 무엇이며 현존하는 사회와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가(Sein) 그리고 그에 비추어볼 때 사회와 인간은 장차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Sollen)라는 거시적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입장을 일컫는다. 하지만 이 ‘입장’은 ‘이론’과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이론은 이런저런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한정적인 주장이며, 논리적 혹은 실증적 연구를 통하여 논증 혹은 논파 가능한 형태를 띤 진술이다. 그러나 ‘이념적 입장’이란 세계와 인간 전반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포괄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논증과 논파의 차원 이전에 존재하는 세계관(Weltanschauung)이다. 둘째, 이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순수한 깨달음을 목적으로 삼는 즉 실천(praxis)과 대립되는 의미에서의 ‘이론’(theoria)이 아니라, 오히려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사회 전체가 어떻게 재조직되어야 하는가라는 대단히 구체적인 강령까지 생산해낼 것을 목적으로 삼는 집단적 실천의 일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념은 그 이념의 실현을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삼아 현실변혁 혹은 현상유지를 꾀하는 구체적인 사회세력과 불가분으로 엮여 있는 것이다.
이념이 이렇게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인 고로, 선험적 추상적인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념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지 나쁜지는 다른 이념을 내걸고 그 실현을 꾀하는 여타의 사회세력들과의 정치 토론 및 투쟁의 과정 속에서 결정된다. 이는 단순히 ‘승자가 항상 옳다’라든가 ‘진리는 다수결이다’라는 허무주의적 상대주의적 명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1+1=2라는 수학적 진리가 아닌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라는 정치적 진리는 무엇보다도 그 사회성원 전체가 참여하여 정치적 토론과 투쟁을 거쳐 능동적으로 산출해내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 ty)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을 밝히며 강조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가장 지배적인 힘을 발휘해오는 사고방식의 하나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그렇게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 과연 ‘이념’의 모습으로 자신을 제시하고 그에 합당한 검증과정을 거친 결과인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사회세력들은 과연 명시적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다른 사회세력과 정정당당하게 토론과 경쟁을 벌여 사회 전체에 걸친 폭넓은 공감, 그야말로 그람시가 말하는 ‘동의’를 얻어내는 과제를 수행했던가. 혹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전혀 다른 존재방식과 작동방식으로서 우리 사회를 점령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이 계명된 21세기의 교양 있는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따라야 하며 아예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절대적 지상명령이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우리 사회성원들과 사회 전체의 물질적·정신적 안녕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만한 의제들마저도 민주적인 토론 한번 거치지 않고 일사천리로 현실에 관철시켜온 것이 지난 10여 년간 벌어진 일이 아니었던가.
이 글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부분에서는 20세기 중반만 해도 주변적인 정치사회적 담론에 불과했던 신자유주의가 70년대 이후 지구적 차원의 구조변화의 정치적 역관계에서 어떻게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본다. 두번째 부분에서는 신자유주의 ‘이념’의 내용을 구성하는 몇 개의 요소를 검토하여 어째서 그것이 정치적 토론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특징을 갖게 되는지를 논의할 것이다. 셋째부분에서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의제 몇 가지가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방식에서 그러한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는 사례들을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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