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7 2007-01-11   1645

[역사기행] 사회복지 역사기행 연재를 마치며

복지동향이 마련한 역사기행 —- ⑮



사회복지 역사기행 연재를 마치며





남창섭




 지난 2005년 4월 첫 글을 실은 이래 모두 열 네 개의 원고를 싣고 이번 호로서 사회복지 역사기행을 마치게 되었다. 복지동향에서 사회복지 역사에 관한 글을 기획특집 같은 형태로 싣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아마 2005년 1월인가의 복지동향 편집위원회 회의에서였던 것 같다. 필자는 사실 복지동향 편집위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회의 자리에 있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역사에 관한 글을 싣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하였다. 그런 제의의 결과로 역사기행은 필자에게 그 몫이 돌아오게 되었다. 사실 한국 사회복지 역사에 관한 글을 연재형태로 싣는다는 것은 필자에게는 과분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복지 역사에 관해서는 필자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과 더 높은 통찰력을 가진 분들이 계신데 아직 공부도 일천하고 재주도 없는 필자 같은 사람이 공개되는 글의 형태로 역사에 관한 글을 쓰는 데 대해 부담스러운 마음과 함께 내가 과연 자격이 있는가 하는 마음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또한 연재형태의 글을 처음 써보는지라 이것이 주는 스트레스도 상당하였다. 매달 원고 마감일 한 일주일 쯤 전부터는 무언가 무거운 돌덩이 같은 것이 머리와 가슴을 짓누르는듯 하였고 그러면서도 원고가 금방 손에 잡히지 않기도 하여 새삼 연재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매달 실었던 원고가 그리 길지도 않은 것이었고 내용도 특별히 어렵거나 한 것이 아닌데 매달 그 원고를 쓸 당시에는 왜 그리 힘들었던지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마도 그 모든 것은 필자의 능력 부족에서 온 탓일 것이다. 특히 지난 2006년 8월에 발간된 역사기행 13호에서 1980년대에 관한 글을 시작하고는 필자의 사정으로 5개월만에 다시 글을 쓰면서 마치는 글을 쓰게 되어 독자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연재를 처음 시작하면서 가졌던 의도, 즉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한국의 사회복지제도는 어디에서 연원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며 앞으로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에 관한 통찰력을 얻고자 했던 의도가 어느 정도나 실현되었는지는 독자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고자 한다(그리고 일제시대를 다루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후일을 기약하며 죄송함과 함께 아쉬운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역사기행을 마치면서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글을 쓰는 동안 필자에게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한국 사회복지 역사에 관한 일관된 역사인식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미군정기와 1950년대, 1960년대, 그리고 1970년대에 관한 글을 쓰면서 각 시기마다 나 자신이 약간씩 다른 각도에서 약간씩 다른 사실(史實)을 강조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시기마다 벌어진 일이 다르고 나타난 결과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각 시기마다 약간씩 다르게 나타나는 강조점의 차이가 그보다 더 큰 차원에서의 일관된 어떤 틀에 의해 포섭되지 않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필자에게는 참으로 당황스러운 점이었다.



 사회복지 역사는 아직 우리가 발굴하지 못한 숱한 역사적 사실들을 찾아내어 해석하는 작업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미 있는 해석 역시 사전에 어떤 해석 틀이 있어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물론 해석 틀을 구축하는 작업과 아직 해석 틀이 완전하게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해석은 동시에 일어나며 양자는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에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의 역사적 사실에 관한 의미 있는 해석 틀을 구축하는 작업은 종국에는 사회복지 역사의 전개가 위치하고 움직이는 한국 사회의 역사 자체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역사인식이 사회복지 역사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역사인식이 적절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사회복지의 역사에 관한 해석도 진정한 의미에서 의미 있는 해석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1990년대 이후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변동과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1997년 이후 급속한 확대를 경험한 한국의 복지국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관해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필자는 1970년대까지의 글에서는 이른 바 ‘미국의 범위’라는 개념을 차용하고 거기에 기대어 한국 사회의 큰 변동방향을 정리하였고, 대체로 이에 의거하여 사회복지제도의 전개과정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1980년대에 관한 글을 처음 시작할 때에도 이 미국의 범위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볼 때 1980년대는 1970년대와 세계화라는 바람이 분 1990년대의 중간시기로서 의미를 갖는 시기이며, 따라서 필자가 은연 중에 차용한 미국의 범위라는 개념과 관련해서는 그것이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어떤 내용으로 그리고 어떤 축으로 어떻게 변화하였는가를 규명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의 범위라는 개념이 갖는 함의 자체는 필자의 생각으로는 지금도 유효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성격은 1970년대와 분명히 달라졌다. 막연히 생각해도 지금의 경우에 미국의 범위라는 개념을 적용한다면 거기에는 1970년대와 달리 경제적 의미가 훨씬 강하게 녹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사회복지 ‘제도’ 자체의 전개과정은 서술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를 사회 전반의 변화과정에 맞추어 의미 있게 해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점에서 1980년대 한국의 사회복지는 197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필요도 있지만 1990년대의 세계화 흐름의 관점에서도 해석될 필요가 있다. 특히 1987년 이후 사회복지의 전개과정은 그 이전 시기 및 그 이후 시기의 관점 모두로부터 해석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위한 매우 초보적인 시도로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복지 역사의 전개과정을 시기구분한다면 그것은 ① 구호행정기/60년대 체제기/생산적 복지기의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여기서 구호행정기는 다시 미군정기와 1950년대의 재건기로 세분할 수 있을 것이며, 60년대 체제기와 생산적 복지기의 사이에는 과도기 혹은 전환기를 넣을 수도 있을 것인데 이 과도기 혹은 전환기는 대체로 1980년대 후반부터 국민의 정부 출범 전까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호행정기는 해방 직후부터 1950년대까지의 기간을 말하는데, 이 기간의 특징은 전쟁의 흔적(미군정기간은 제2차 대전의 흔적이며 1950년대는 한국전쟁의 흔적)을 처리하기 위한 일환으로 사회복지제도를 활용하였지만 국가 자체가 형성되는 과정 중에 있었기 때문에 공적(公的) 제도로 나타난 사회복지제도가 전쟁의 흔적을 처리함에 있어서 보인 효과성은 크지 않은 편이었다. 그리고 이 당시 전쟁의 흔적을 처리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상당부분 외원기관에 의해 수행되었다. 전쟁의 흔적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사회에서 외원기관은 민간기관으로 외화(外化)하여 있지만 그것이 수행한 역할은 정부의 역할과 다름없었다. 이 구호행정기의 말기에 민간부문의 일부 전문가들이 등장하여 사회보험제도의 도입에 매우 선구자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사회보험제도 도입 주장은 비단 구호행정기 말기에만 제기된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구호행정기는 오늘날 사회복지서비스라고 부르는 부문에서는 외원기관에 의한 사실상의 정부역할이 주를 이루었고 이것이 이처럼 외원기관에 의해 가능했으므로 실제 정부가 운영한 제도는 군경원호 관련 제도에 치중된 편이었고 전문가들이나 일부 노동조합은 이러한 정부 역할을 사회보험제도로 대표되는 말하자면 소득보장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형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구가 구호행정기 말기에 일단의 선구적인 전문가들에 의해 매우 구체적인 제도화 시도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들의 노력은 민주당 정권기에 빛을 보는가 했으나 그 때에는 실현되지 못하였고 실제로는 군사정권 하에서 실제의 제도로 실현되었다. 그 당시 선구적인 전문가들의 노력을 오늘날 말하는 시민운동이라 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당시 수준에서는 있을 수 있었던 일종의 시민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렇게 본다면 구호행정기 말기에 나타난 시민적 노력은 군사정권의 또 다른 정치적 필요에 의해 여과되어 제도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소득보장의 주체는 국가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기구의 성격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던 당시의 시민적 노력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60년대 체제기는 그 앞의 시기를 가리키는 구호행정기라는 용어와 그리 조화로운 것은 아니지만 군사정권기에 형성된 사회복지제도의 모습이 하나의 체제로 형성되었음을 말하기 위해 택한 용어이다. 이 시기는 전쟁의 흔적을 처리하기 위한 것으로서의 사회복지제도의 역할설정이 매우 확연하게 정해진 시기이며 동시에 전쟁의 흔적 처리에 직접 관계되지 않는 사회복지제도와 관련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경제개발에 확실하게 종속되어 간 시기이다. 전자의 사회복지제도는 곧 군사원호 관련 제도를 말하는데, 역사기행 7호(2005년 10월)에서 언급한 것처럼 군사정권은 군사원호에 관련된 법령의 제정과 정비에 매우 신속하게 대응하여 쿠데타 발발 2년이 되기 전에 거의 제도 완비를 종료하게 된다. 이는 군사정권이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이 불완전하게 형성한 반공국가를 확실하게 형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원을 동원하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을 경제개발에 종속시킨 것 역시 크게는 반공국가 형성의 일환이었지만 여기에는 구호행정기 말기에 나타난 전문가들의 노력과 경제개발을 통한 실질적 반공국가 수립이라는 군사정권의 목표가 일정하게 혼합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주지하다시피 산재보상보험의 도입과 임의 의료보험의 도입으로 나타났다. 또한, 1950년대 내내 주장되었던 실업보험 도입 논의가 자취를 감추고 국토건설단 등으로 나타난 것도 이러한 예의 하나라 볼 수 있다. 60년대 체제기는 복지제도가 실질적 반공국가 건설과 경제개발의 목적에 확실하게 종속됨을 특징으로 한다. 이 특징은 기본적으로 그 다음 기간까지 변화하지 않았다. 1980년대 초 제5공화국 시기에 몇 가지 법률이 제정되고 생활보호법이 전부개정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60년대 체제기의 특징 내에서 일어난 일이고, 구호행정기에서 60년대 체제기로 전환하는 것과 같은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또한, 60년대 체제기에는 사회복지서비스 공급과 관련하여서도 기본적으로 구호행정기와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구호행정기에 사회복지서비스는 사실상 정부의 역할을 하는 민간기관으로서의 외원기관에 의해 수행되었는데, 60년대 체제기(특히 1970년대부터)에는 외원기관이 민간 사회복지법인으로 형식이 바뀌었을 뿐 사실상 정부의 역할을 하는 민간기관이 사회복지서비스를 수행하는 구도는 변함이 없었다.



 60년대 체제기는 1980년대 중반부터 그 단계 이후에 나타날 새로운 단계를 준비하는 의미 있는 변화를 맞게 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민주화라고 하는 정치적 변화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 또한 그로부터 발생한 시민사회의 활성화로부터 주어진 것이었다. 이 변화는 제도적으로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친 국민연금의 실시, 전국민 의료보험의 달성,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 관련 법률의 제‧개정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제도화와 관련해서는 “복지국가의 태동”이라는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평가는 올바른 평가라고 생각하며 이를 받아들인다면 1987년 이후를 하나의 단계로 설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제도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시기구분한 필자의 기준과 달리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더 중시한다면 1987년 이후의 하나의 단계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1987년 이후의 변화가 갖는 의미를 결코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나, 필자가 보기에 1987년 이후의 변화는 여전히 60년대 체제기가 갖는 특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구에서도 복지국가 비교에 지출수준이라는 양적 비교가 흔히 사용되기는 하는데, 1987년 이후 복지제도 확장을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은 기본적으로 양적 확대에 치중한 것이었다고 본다. 물론 양적 확대가 그야말로 양의 증가만을 노린 것은 아니며 양의 증가를 통한 질적 수준의 담보를 노린 점이라는 바는 분명하지만 국가의 제도로 나타나야 하는 사회복지제도의 특성상 경제우선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정부와 상대하여 제도도입 필요성을 주장해야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해 시민사회의 노력은 일정한 성과(매우 중요한 성과이기는 하다)를 거두었지만 60년대 체제기의 특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시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범위’ 중 반공국가라는 축이 상당정도로 약화하고 이 약화된 부분을 경제우선논리가 더욱 강하게 채운 것처럼 보이므로 60년대 체제기 중 1987년 이후의 기간을 ‘전환기’로 설정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본다.



 1987년 이후의 전환기 기간에 준비된 중요한 변화는 생산적 복지기로 이어진다. 아마도 한국에서 국가가 사회복지를 경제발전과 동등한 수준에 놓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맞추어 복지제도 개혁을 시도한 것은 생산적 복지기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기간에 집권세력 이외의 국가(특히 경제관료들로 대표되는 국가기구)가 집권세력이 말하는 경제발전과 동등한 수준의 사회복지에 전적으로 동의했다는 것은 아니다(또한, 시민사회 역시 생산적 복지로 대표되는 복지정책방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기간에는 경제위기로 인한 일시적 힘의 공백이 원인이든 정권 자체의 성격이 원인이든 어쨌든 국가정책으로 표현되는 복지제도가 그 이전 시기와는 확실히 다른 발전양상을 보였다. 즉, 반공국가 내지 경제발전에 종속된 상태에서의 양적 확대만이 아니라 질적 정비가 실제로 시도되었고 일부는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물론 그 영향에 있어서도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생산적 복지기가 그 이전 시기와 뚜렷이 구분될 수 있는 근거는 이와 같은 질적 전환 시도가 실제로는 공식적‧형식적인 법령개정으로는 이어졌으나 실질적인 질적 전환을 가져오기에는 사회 전반적인 토대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음을 드러냈다는 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생산적 복지기에는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가 거의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과 소득보장의 공평하고 효과적인 운영에 필요한 소득파악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뚜렷이 드러났다. 이로부터 한국 사회에서 사회복지는 정치경제적인 주요 이슈가 되었다. 서구와 달리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복지제도 확대의 토대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가 복지제도 자체에 주어지는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생산적 복지기는 복지의 질적 전환을 시도한 차별적인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40여년간 지속해 온 60년대 체제기에 형성된 경제우선주의로부터 확실하게 탈피하지는 못하였다. 이는 생산적 복지기의 짧은 기간으로 40여년간 쌓여온 구조를 일거에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생산적 복지기와 맞물린 세계화 흐름으로 인해 그리고 집권세력 자체의 일정한 한계로 인해 복지의 질적 전환 시도는 새로운 경제우선주의인 신자유주의 논리에 의해 빠르게 제약 당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작용한 것이었다. 구호행정기 말기에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에 이르는 약 5년의 기간에 걸친 시민적 노력(주로 일부 선구적인 전문가들에 의해 주도된)이 반공국가 형성을 제일의 가치로 삼은 군사정권에 의해 일정한 한계를 가지면서 60년대 체제로 나타났듯이, 민주화 흐름을 배경으로 1987년 이후부터 전개된 매우 활발한 시민운동은 10여년에 걸친 노력과 변화 시도 끝에 정권 교체와 함께 생산적 복지기를 낳았지만 여전히 그것은 신자유주의 논리(60년대 체제기의 경제우선주의를 대체한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경제우선주의)에 의해 제약 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제약은 한국 사회에서 미국의 범위라는 개념은 경제적 개념으로 상당정도 전환되었음을 의미하며, 복지가 경제 전반의 운용형태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지금 논의한 것은 매우 가설적이고 초보적인 형태로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까지의 한국 사회복지 역사의 전개과정을 시기구분한 것이다. 물론 이 시기구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다만 필자 역시 극복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복지 역사를 정권의 매듭을 기준으로 시기구분하는 단계는 이제 넘어설 때가 되었으므로 이와 관련된 논의가 좀 더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역사기행을 마치면서 현재 우리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참여정부에 대해 약간의 언급을 하고자 한다. 앞에서 생산적 복지기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우선논리에 의해 제약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제약에 의해 주어진 생산적 복지기의 한계는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도 극복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생산적 복지를 통해 복지를 경제와 동등한 지위에 자리매김하였다는 점에서 그 이전 시기와 확실히 구분되지만, 그 이후 시기와 연관하여 본다면 경제와 동등한 의미를 갖는 복지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복지가 경제와 동등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동등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치경제적 조건이 필요한지 등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 참여정부는 이처럼 아무 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은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생산적 복지기의 차별적인 단계로서의 구체적인 의미는 참여정부가 채워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부만의 몫이 아니기도 하였다. 한국 사회는 60년대 체제기에서 구축된 유산을 너무나도 강고하게 가지고 있고 이 유산은 신자유주의 논리와 쉽게 친화성을 보였다. 마치 19세기 말 독일의 전통적인 토지귀족들이 그 당시 새롭게 밀려드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물결에 내부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독일민중들보다 더 빠르게 적응하여 자본가로 변신한 것과 유사하다 하겠다. 오히려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더욱 더 천민적으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빠른 속도로 필요한 부분만 체득하여 가는 것 같다. 그 결과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이른 바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구호는 마치 유신시대 경제개발계획과 마찬가지로 일반 국민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대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글로벌 스탠더드는 사회양극화로 인한 삶의 피폐, 그리고 60년대 체제기가 남긴 유산과 맞물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정부개입을 극도로 거부하는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1987년 이후 전환기의 시민적 노력은 정권교체와 재집권이라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지만 이 과정을 통한 10년의 세월은 신자유주의 논리와 빠르게 결합한 60년대 체제기의 유산을 극복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하지만 생산적 복지기의 10년의 경험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끊임없는 시도에 있어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모든 자산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활용할 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산’으로 구실을 할 것이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대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월간 <복지동향> 2007년 01월호(제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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