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9 2009-07-01   1067

[칼럼] 18,000원의 기적, 전국민 완전 건강보장


 18,000원의 기적, 전국민 완전 건강보장

이진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서울의대)



  튤립과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 원색의 동화 속 이미지와 히딩크 감독 덕택에 우리에겐 더 없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나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의료 분야에서는 속 편하게 그 나라 이름을 부르기 힘들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건강보험 민영화 논란, 그 한 가운데에 ‘네덜란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초, 국민이 외국에 나가 ‘오렌지’를 사먹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인수위원회가 ‘어륀지’를 소리 높여 외치던 시절, 보건복지부는 인수위원회의 한 위원으로부터 우리나라 건강보험을 네덜란드 방식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해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2006년, 네덜란드는 민간보험이 공보험과 동일한 역할을 하며, 상호 경쟁하도록 만드는 건강보험 개혁을 단행했다. 따라서 네덜란드 방식으로의 건강보험 개편은 삼성생명, 교보생명, 현대해상 등의 민간보험회사가 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동일한 역할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경악했다. 많은 이들이 정권 차원에서 건강보험 붕괴 시나리오를 본격 가동한 것으로 이해했고, 작년 촛불시위에서 ‘건강보험 민영화 반대’ 구호가 터져 나왔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시장화된 건강보험체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이 같은 사실은 네덜란드 스스로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보건의료재정의 공공성도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뒤쳐지는 편이다. 보건의료재정의 공공성 척도로 흔히 활용되는 ‘국민의료비 대비 공공보건의료비 비중’이 60%대 중반 수준으로 70%대 중반 수준인 OECD 평균보다 약 10%p가 낮다.
그러나 유럽에서 가장 시장화되었다는 자타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는 우리나라 건강보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혜택을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우리나라 돈으로 약 30만원을 넘지 않는 본인부담 상한이다. 즉, 네덜란드 국민은 아무리 중한 병에 걸려도 연간 본인부담 합계가 30만원을 넘지 않는다. 이를 상회하는 비용은 전액 건강보험에서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보험 서비스’도 거의 없다. 병의원 치료비는 물론이고, 의치, 각종 의료보장구, 구급차와 휠체어 택시, 영양상담 등을 모두 건강보험에서 해결해 주고 있다. ‘비보험 서비스’는 안경, 피임, 대체의학, 일부 정신과 진료 등에 국한된다.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민의료비 대비 공공보건의료비 비중’을 가진 네덜란드가 이 정도일진대, OECD 평균 혹은 이를 상회하는 수치를 가진 다른 국가들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익히 짐작할만하다.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대비 공공보건의료비 비중’은 네덜란드보다도 10%p 가량 낮다. 즉, OECD 평균과 비교하면, 무려 20%p 가량 낮다. 만약,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대비 공공보건의료비 비중’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까?
‘천지개벽’은 이럴 때 쓰라고 생긴 말이다. 미용이나 성형 같이 개인의 선호와 취향에 좌지우지되는 서비스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질병 치료비를 건강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중병에 걸려서 가계가 파탄난다는 이야기도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게 된다. 전적으로 가족에게 의존하고 있는 환자간병도 병원의 기본 서비스로 제공된다. 노인 틀니, 한방, MRI, 초음파 등이 건강보험 급여항목으로 포함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건강보험을 천지개벽하는데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최근에 이루어진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대비 공공보건의료비 비중’을 OECD 평균까지 끌어올리는데 약 19조원의 건강보험재정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국민 일인당으로 계산하면, 현재 부담하고 있는 건강보험료에 18,000원 내외를 추가 부담하는 꼴이다. 가구당으로 계산하면, 약 47,000원 내외를 추가 부담하면 된다(현행 20%인 국고지원율을 30%로 올리면, 추가 부담액은 국민 일인당 15,000원, 가구당 38,000원으로 줄어든다).

  물론, 국민 일인당 18,000원, 가구당 47,000원도 적은 돈은 아니다. 더군다나, 마른 걸레 쥐어짜듯 아껴 써야 할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꽤나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매월 적게는 수 만원에서 많게는 수 십 만원씩 내고 있는 민간의료보험료를 생각해 보라. 민간의료보험료로 꼬박 꼬박 빠져 나가는 돈의 일부만 떼서 내도, 민간의료보험 없이도 치료비 걱정 하지 않아도 되는 전국민 완전 건강보장이 가능하다.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건강보험재정을 늘려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대비 공공보건의료비 비중’을 높이는 것은 소득재분배 측면에서도 매우 훌륭한 방안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정률제 방식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 가입자 상위 10%가 전체 건강보험료 수입의 30%를 부담하는 반면, 하위 10%는 2% 가량만을 부담하고 있다. 게다가 건강보험료 수입이 늘어나면, 정부 지원금도 덩달아 늘어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면, 고소득층, 대기업 그리고 정부가 더 많은 비용 부담을 하게 되어 있다.


  18,000원, 연인과 재미있는 영화를 한 편 볼 수도 있다. 치킨을 곁들여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실 수도 있다. 사랑하는 딸에게 콩순이 인형도 사 줄 수 있다. 그리고 건강보험을 천지개벽시켜 더 이상 그 누구도 질병치료비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18,000원이면 기적을 만들 수 있다.

월간 <복지동향> 2009년 07월호(제1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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