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헌
인하대 박사수료
일반적으로 노르딕 복지국가 모델은 ‘여성친화적 복지국가’의 대명사가 되어왔다. 가족정책 특히 아동돌봄에 있어서도 다른 복지레짐 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젠더 평등적 사회권과 사회정의를 보장하는 ‘복지국가의 천국(Nirvana)’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범주화(categorization)의 오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노르웨이의 예외성에 대한 관심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노르웨이의 가족정책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랜드와 어떤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현재 어떠한 변화 과정에 있는 것일까?
1. “무엇”이 다른가?
첫째, 부모휴가제이다. 부모휴가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통합하고 부모가 휴가를 공유할 수 있는 제도로 노르딕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부모휴가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1956년 유급 출산휴가제를 도입한 후 1970년대에 젠더 평등을 향상시키기 위해 부모휴가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시행 목적이 무색할 정도로 1980년대까지 주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또한 부(父)가 휴가프로그램을 이용할 때에도 부(父)의 자격과 급여수준은 모(母)의 자격에 의존하게 되어 있어서 그 이용률도 저조하였다(예를 들어 어머니의 고용 상태가 비정규직의 파트타임이라면 아버지의 급여수준에도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Sainsbury, 2001). 이러한 점진적인 발달은 가족정책이 정치적 아젠더로 대두되지 못한 결과이기도하다. 노동당의 정책 강령(platform)에서 젠더 문제, 기혼여성의 고용 문제와 아동돌봄의 문제는 크게 언급되지 않았다. 1973년에 와서야 비로소 6개월로의 휴가기간 연장과 1989년 52주의 휴가 기간을 요구하는 주장이 노동당 강령에 등장할 뿐이었다.
둘째, 공적보육시설의 이용률이다. 일하는 모(母)에게 있어서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은 “양육”의 문제이다. 우리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존재하다면 노동시장에 진입한 여성의 걱정과 부담은 일정부분이나마 해소될 것이고 양육으로 인한 노동시장과의 단절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노르딕 국가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은 바로 공적보육시설이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공적보육시설의 이용률이 저조한데 그 이유는 이용을 원하는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973년 후반에 0~6세 아동을 둔 일하는 엄마들 중의 단지 11%만이 공적보육시설을 이용하였으며, 51%는 가정돌봄시설, 나머지 37%는 보모, 친척, 친구, 이웃 등의 비공식적 돌봄에 의존하였다. 1975년에는 공적보육시설 공급계획을 지방정부 차원에서 수립하도록 법률적으로 명시한 ‘주간돌봄법(Day Care Act)’이 통과되어 공적보육시설의 확대를 위한 강제적이고 법률적인 근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주로 5~6세를 대상으로 하고 지방정부의 자율성이 강조되는 등 제약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어 정책 효과는 미미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90년대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가 1980년~90년대에 이미 100%의 공급률을 달성한 것에 비해 노르웨이는 1985년 28%, 1995년 44%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2. “왜” 다른가?
이러한 더딘 발전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분석은 2차대전 후 실시된 경제 정책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1945년에 전쟁 기간 동안 파괴된 북 노르웨이를 재건 할 목적 하에 1951년에 제도화된 NNP(North Norway Plan)를 기초로 1950년대와 1960년대 주로 농업과 지역에 직접적이고 장기적인 대규모의 지역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지역에 대해서 세금 공제와 대대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는데 이러한 지역투자 정책은 1961년과 1967년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노르웨이의 지역투자 정책의 핵심은 지방의 높은 실업률과 저생산성의 문제를 각 지방의 특화산업인 농업과 어업을 자극함으로써 지방으로 자본이 이동하고 고용율과 산업률이 상승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역정책, 농업정책은 전통적인 젠더이데올로기(부는 산업현장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모는 가정에서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는)가 유지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낮은 여성 고용률에도 영향을 미쳤다(노르웨이의 여성고용률은 65년 37%, 스웨덴은 54%, 70년에는 각각 39%, 60%, 75년에는 53%, 68%이다). 공적보육시설과 같은 가족정책의 요구는 일부 대도시의 취업여성들의 요구에 불과하였으며 노동당(DNA)은 지방의 투표율과 지지 기반 형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젠더 평등적 가족정책을 실질적으로 마련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못지 않게 종교정당의 영향력도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종교 정당(confessional parties)은 전통가족적 사회 규범과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현금 급여 제공과 세금 공제를 정책 수단으로 삼는다. 1933년에 창당된 노르웨이의 기독인민당은 1945년에서 90년까지 매 선거에서 1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으면서 중도-우파 연립 내각 구성에도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이는 1964년에 창당된 스웨덴의 기독민주당이 매 선거때 마다 1~2%의 낮은 득표율을 보이는 것과 비교해 본다면 노르웨이 가족정책의 형성과 변화에 의미있는 영향력을 행사했었을 것으로 보인다(Sörensen, 2004).
3. 변화하고 있는 가족정책
앞선 논의를 통해 노르웨이는 다른 노르딕 국가에 비해 가족정책의 발전이 다소 부진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2000년을 전후하여 급속한 가족정책의 변화를 추구한다.
첫째, 부모휴가제의 확대로 휴가 기간은 1993년 48주, 2009년에는 52주로 연장되었다. 휴가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출산 전 10개월 중 6개월 이상의 노동 경력이 요구되지만 노동경력이 부족하여 휴가를 받지 못하는 계층에 대해서는 4,700유로(2007년 기준)의 일시불 비과세 출산수당(a tax-free lump-sum cash payment at birth)을 지급한다(Lappegård, 2010). 부모휴가의 소득대체율은 상당한 수준으로 80% 임금보상율의 56주(2010년 확대되었음)와 100% 임금보상률의 52주 프로그램이 병행되고 있다. 1993년 부모휴가와 관련된 또 다른 혁신은 단연 아버지할당제의 도입이다. 아버지만이 사용할 자격이 있으며 1993년 도입 당시 4주였던 휴가기간은 2005년에 5주, 2006년에 6주로, 2009년에는 10주로 점차 확대되었다. 이는 아버지가 사용하지 않으면 그 권리가 사라지는 일종의 ‘use-or-lose’방식을 취하고 있어 돌봄 노동에 대한 아버지 책임을 현실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구나 아버지할당제를 다른 노르딕 국가에 비해 가족 정책의 발달이 더뎠던 노르웨이에서 처음 입법화되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것으로 정책 개혁에 대한 노르웨이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둘째, 1998년 아동가정양육수당의 도입이다. 이 제도는 1세~2세의 아동을 둔 부모가 공적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전제로 받는 일종의 현금수당으로 보육시설의 종일반 수준인 NOK3,000(약340유로)을 월정액으로 받는다. 만약 반일제로 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부모들은 이용 시간에 비례하여 급여를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데, 예를 들어 주당 8시간을 이용하는 부모라면 약80%의 수준을 주당 25~32시간을 이용하는 부모들은 약20%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셋째, 공적보육시설 비용의 상한제 도입과 이용률의 완전 보장(full coverage)이다. 보육료 상한제는 보육비용의 지역적 차이(대도시와 농촌), 계층별 차이가(고소득층과 저소득층)상당(Lappegård, 2010)했던 것에 대한 대응으로, 상한선을 정하여 공적보육시설을 이용하는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2004년에는 2,750NOK, 2005년에는 2,250NOK로 점진적으로 낮추다가 ‘완전 보장’이 되었을 때는 1,750NOK로 정한다는(Ellingæter&Gulbrandsen, 2007)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였다. 일반적으로 보육료 상한제를 설정해 놓으면 전체적인 보육료는 감소할 것이고 공적보육시설의 이용률은 증가할 것이다.
4. 젠더 평등과 자유 선택을 위하여
최근 노르웨이는 부모휴가제의 확대, 아동가정양육수당의 도입, 공적보육시설의 확대 등 다양한 가족정책을 시도하고 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상이한 대상에 대한 상이한 정책이 공존하고 있음이 발견된다. 즉, 부모휴가제와 공적보육시설은 노동시장 안에 있는 모(母)의 노동권과 연계된 정책이라면 아동가정양육수당은 노동시장 밖의 모성권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인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이는 부모의 ‘자유 선택 보장’과 관련되어 있다. 그동안 미미했던 젠더 평등의 수준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공적보육시설을 이용하든 민간보육시설을 이용하든 혹은 가정에서 자신이 아동돌봄을 행하든, 그것은 부모의 선택이며 부모가 자유로이 돌봄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부모의 권리가 보장되고 제반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점에서 우리가 보다 강조하고 주목해야 할 점은 노르웨이에서는 완전한 자유선택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각 돌봄형태에 대한 광범위한 공적 지원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07년「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개정하고 육아휴직, 보육예산 증액 및 시설 확충과 같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향후 가족정책 방향 설정하는 데 있어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6월호(제140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